[4·3 증언] 고만년 할아버지 ‘4·3이 남긴 평생의 고통’

유용두,강재윤 2022. 12. 2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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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제주] [앵커]

4·3의 역사를 기록하는 KBS 연속기획 일흔아홉 번째 순서입니다.

고만년 할아버지는 4·3 당시 아버지가 토벌대에 끌려가 희생되고 큰형도 형무소에서 행방불명 됐는데요.

자신도 토벌대의 창을 맞고 평생 고통 속에 살아왔습니다. 유용두, 강재윤 기자가 만났습니다.

[리포트]

[고만년/4·3 후유장애인 : "우리 집도 크고 밭도 많이 있고 소와 말도 많이 기르고, 말도 가장 많이 길렀어. 12마리나 말을 길렀어. 내가 어릴 때 아버지하고 같이 꼴도 주고 했었는데."]

[고만년/4·3 후유장애인 : "우리 큰형님이 그때 (산으로) 도망가서 (토벌대가) 찾아오라고 하니까 못 찾아오지. 경찰에서 잡아다가 물어보지도 않고 (아버지를) 쏘아 죽여버리니까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 말이야? 우리도 잡아간다고 하니까 어머니가 (나를) 업고 저 산으로 오름, 냇가로 숨어다녔거든. 토벌대들이 (마을에) 사람들 없다고 잡으러 산으로 따라와서 곶자왈 속으로 어머니가 엎드려서 가만히 숨어 있는데 그것을 멀리서 뛰어오다가 봤는지, 이건 뭐야 하면서 (창으로) 찔렀어. 내가 소리 지르면 또 와서 잡아간다고 하면서 어머니가 소리 지르지 말라고 그렇게 참고 (토벌대) 가버린 다음에 조용하니까 어머니가 나를 업고 수풀 속으로 더 가서 피를 좀 흘리니까 옷 찢어서 닦고."]

[고만년/4·3 후유장애인 : "내가 어리니까 소변 받아서, 나뭇잎에 소변 받아서 소독하고 그 이후에도 치료를 그런 식으로만 하다가 당시 얼른 약 살 곳도 없고 약도 없고 계란 까서 솜에 노른자만 거기 발라서 붙였어. 그런저런 고통 받으며 내려오라고 하니까, 삐라인지 뭔지 비행기에서 산에 막 뿌리니까 (내려갔지.)"]

[고만년/4·3 후유장애인 : "(집에)다 불 질러 버리니까 잿더미만 남았어. 그래서 돌아가지 못하고. 촌부락을 만들어줘서 피난민들 거기 살게 해서 법호촌, 법에서 보호한다고 해서 산에서 거기로 내려오라고 했어. 거기 가서 마을회관에 임시 살다가. 그 당시 어머니 매일 아침, 저녁 손 마를 날이 없고 매일 자식 하나 위해서 그런 고생했던 것은 지금도 눈물 나고."]

[고만년/4·3 후유장애인 : "야속했어. 싸우다가 아랫것이 형님, 형님하다 기분 나쁘면 폭도라고 하면. 죽을 정도로 참고 남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해야 같이 어울릴 수 있구나. 그래서 내가 나처럼 약한 사람들, 없는 사람들 모아놓고 (봉사) 활동하면서. 나는 돈 벌려고 이발도 했어. 머리 감기는 것부터 가서 (배우고) 어린이들도 돈이 없었거든. 머리가 옛날에 이만큼 길었어. 그것을 보고 내가 어린이날에 이발권 50장 만들어서 학교 교장 선생님 드리면서 머리 못 깎는 아이들 50명 1년 동안 무료로 이발해 드리겠습니다. 남이 아프면 자기 아픈 줄도 알아라! 말도 못할 정도니까. 그 세월이 억울한 정도가 아니거든."]
https://news.kbs.co.kr/special/danuri/2022/intro.html

유용두 기자 (yyd9212@kbs.co.kr)

강재윤 기자 (jaeyu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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