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해빙무드…관광 재개 등 민간교류로 미래관계 물꼬
3년 여 동안 얼어붙었던 한일 관계가 꿈틀대고 있다. 정부의 대일 외교가 우호적으로 전환되고, 일본의 무비자 입국이 재개되면서 관광 수요도 회복하는 모습이다. 현장 전문가들은 “관계 회복 물꼬가 트인 만큼 한일 협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며 “과거사 문제를 현명하게 풀어나가는 동시에 미래를 향한 노력도 멈춰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 이들은 한일 갈등 해법의 시작을 ‘민간교류’로 꼽으며 “시민 간의 두터운 소통이 국가 외교에도 온기를 불어넣을 것”이라고 말했다.
- 징용판결·수출규제 등 갈등 격화
- 코로나로 양국간 문 완전히 닫혀
- 최근 정치권 우호적 분위기 조성
- 여행객 급증 계기로 소통 넓혀야
- 관계 회복 외치면 ‘친일파’ 낙인
- 日 금기시하는 분위기 바꿀 필요
- 치욕적 과거 꼭 기억해야할 문제
- 미래 그리는 일까지 멈춰선 안돼
지난 28일 오전 7시 오랜만에 방문한 김해국제공항 국제선 청사는 코로나19 발생 이전을 방불케할 정도로 북적였다. 코로나19 이후 적막했던 이곳이 연말 해외 여행을 떠나려는 승객으로 가득 들어찬 것이다. 3년 가까이 일상을 제한하던 강도 높은 방역 조치가 완화되고 엔데믹이 도래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한국공항공사에 따르면 김해공항은 지난 21일 기점으로 지방공항 중 가장 먼저 국제선 여객 100만 명을 돌파했다.
폭발적인 국제선 수요를 이끄는 것은 역시 일본 노선이다. 이날만 해도 김해공항에선 도쿄 오사카 삿포로 후쿠오카로 여객기가 출발했다. 어머니 이모와 일본 삿포로 여행을 떠나는 박모(28) 씨는 “코로나 19 이전엔 가족과 일본에 자주 갔지만 그동안 가지 못해 아쉬웠다. 최근 일본 여행이 자유로워진 이후 벳부에 다녀왔고, 이번에 홋카이도 여행을 계획했다”고 들뜬 마음을 드러냈다. 공항에서 만난 일본 여행 가이드 박모(47) 씨는 “홋카이도 3박 4일 상품 가격이 코로나 이전 80만 원 선이었다면, 현재는 130만~150만 원 수준이다. 항공료와 일본 현지 물가가 크게 올랐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 뱃길마저 완전히 정상화되면 예년 수준으로 금세 회복되겠다”고 말했다.
■3년 만에 교류 재개 韓日… 얼어붙은 관계 볕 드나
관광 교류로 시동을 걸고 있는 한일 관계에 봄바람은 불어올까. 사실 양국 관계는 코로나 발생 이전부터 악화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이 일본 기업들에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내린 이후 이듬해인 7월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문제 등 갈등이 잇따르며 관계는 경색 국면에 접어들었다. 국민 감정이 상한 것도 이즈음이다. 일본 수출 제재에 반발해 국내에선 ‘노노재팬’으로 일컫는 대대적인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시작됐고, 여행 또한 급감했다. 2020년 전세계적으로 코로나 팬데믹이 덮치면서 양국의 문은 완전히 닫힌 것과 다름 없었다.
일본 국민의 분위기도 다르지 않다. 사단법인 부산한일문화교류협회 하숙경 상임이사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한국에 대한 일본의 여론은 뜨뜻미지근한 상태다. 2018년 대법원 판결이 일본 국민에겐 국가간의 합의마저 저버리는 나라로 받아들여진 것 같다. 우리로선 당연한 일들이지만, 양국 갈등의 골이 깊어진 분명한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이어 하 이사는 “코로나로 교류마저 잦아들면서 상황이 많이 어려웠다. 정치외교적인 교류 외에도 한국과 일본은 가까운 이웃 나라로 경제 교육 등 민간의 여러 분야에 실핏줄처럼 깊숙이 뻗어 들어가 좋은 영향을 주고 받았다. 지금은 순환이 막혀 경색에 이른 상황”이라며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최근 들어 양국 정치권에서 우호적인 분위기 조성을 위해 노력하는 부분이다. 양국 관계 악화는 서로에게 득보다 실이 많다. 부산의 경우 일본 관광객도 많은 만큼 당장 관광 업계부터 타격을 입는다. 정치나 외교가 움직여야 더욱 빠르게 회복되지 않겠나. 속도를 내기 위한 분위기 조성은 결국 민간에서 만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과거사 기억해야… 미래 단절 안 돼”
일찍부터 일본과 교류를 해온 현장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미래’를 이야기한다. 과거사 문제 해결을 외면해선 안 되지만, 미래를 그리는 일마저 놓아선 안된다는 말이다. 부산국제교류재단 이치우 사무처장은 “한일 관계는 미래를 보고 나아가야 한다”며 “아픈 역사나 치욕적인 과거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는 “다만 미래를 말하는 것조차 금기시되는 분위기는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관계 개선에 대한 논의를 꺼내 들면 ‘친일파’로 낙인찍는 분위기가 많다. 그것이 양국 관계의 현실”이라며 “경제·문화 등 모든 부문에서 교류가 활발했던 만큼 서로를 위한 건강하고 발전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밝혔다. 이 처장 역시 “실마리는 민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일 관계는 3년 여간의 냉각기를 거친 끝에 조금씩 화해 무드가 조성되는 모습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일본 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있고, 지난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2년 9개월 만에 한일 약식 정상회담을 가졌다.
일본과의 관계가 더욱 긴밀했던 부산에선 최근 ‘제36회 한일관광진흥협의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다. 1986년 처음 개최된 이후 매년 한국과 일본에서 교차로 열리며 우호 증진을 다졌던 행사로 한국 문체부를 비롯해 정부와 관광공사, 관광업계가 참석했고 일본에서는 국토교통성 관광청 등 관계자 50여 명이 부산을 찾았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이달 신규부임한 오스카 츠요시 주부산일본총영사를 만나 일본의 4개 자매·우호협력도시들과의 발전적 교류방안을 논의했다.
시는 앞서 2019년 일본 수출규제 이후 한일 갈등이 최고조로 치달을 당시 시가 주관하는 일본 교류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내년부터는 양국간 관계 개선에 시동을 걸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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