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과 함께 듣는 말러 교향곡 [조은아의 낮은음자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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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가 모이듯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도 친목을 나눈다.
고양이를 키우며 동참한 모임인데 관련 책을 읽고 정보를 공유하다 급기야 함께 들으면 좋을 음악도 요청받았다.
무덤을 향해 행진하는 이들 옆엔 고양이, 두꺼비, 까마귀가 작은 밴드를 이뤄 음악을 연주한다.
정확히는 고양이 두 마리도 감상회에 동참했는데, 인간 중심의 사고를 비틀어 풍자하는 작곡가 말러의 관점에 모두가 각별히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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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가 모이듯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도 친목을 나눈다. 고양이를 키우며 동참한 모임인데 관련 책을 읽고 정보를 공유하다 급기야 함께 들으면 좋을 음악도 요청받았다. 음악을 전파할 소중한 기회건만 한편으론 난감했다. 클래식 음악 중 동물과 연결된 작품의 상당수는 현저히 인간의 관점에 치우쳐 동물을 다루기 때문이다.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는 기실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의 묘사고, 프로코피예프의 '피터와 늑대'는 자기 집 오리를 잡아먹은 늑대를 향한 복수극이지 않던가. 동물을 인간의 소모품으로나 취급해버리니 동물권의 입장에선 위험하고 씁쓸한 곡들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말러는 달랐다. 인간이 아닌 숲속 동물들의 시각을 음악에 투영했으니 말이다.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들에게 말러 교향곡 1번의 3악장을 자신 있게 소개했다. 이 곡은 1850년에 제작된 모리츠 폰 슈빈트의 목판화와 강한 결속을 갖고 있는데 동물들이 사냥꾼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무덤으로 행진하는 장면을 이렇게 묘사한다. 숲속 동물들이 사냥꾼의 장례식을 치른다. 깃발을 든 토끼가 앞장서고 그 뒤를 사냥꾼의 관을 짊어진 곰, 여우, 사슴, 늑대가 따라간다. 무덤을 향해 행진하는 이들 옆엔 고양이, 두꺼비, 까마귀가 작은 밴드를 이뤄 음악을 연주한다.
말러는 이 장례식을 교향곡 1번의 3악장에 배치해 A-B-A 3부분 형식으로 구성했다. 전반부는 팀파니의 근엄한 공명으로 장례 행렬의 무겁고 느릿한 발걸음을 표현한다. 여기에 콘트라베이스의 긴 솔로가 동행하는데 독일어권에선 마틴 형제(Bruder Martin), 불어권에선 자크 형제(frère Jaque), 영어권에선 Are you sleeping등으로 널리 전파된 동요를 연주한다. 말러는 친근하면서도 간결한 선율을 단조풍의 돌림노래로 변형하는데 이를 선두에서 이끄는 악기는 놀랍게도 '콘트라베이스'이다.
콘트라베이스는 크기로 따지면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거대하지만 극도로 낮은 저음역에 음향이 둔탁한 탓에 좀처럼 존재감을 드러내기 힘든 악기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파트리크 쥐스킨트(Patrick Süskind)는 콘트라베이스 주자의 애환을 동명의 연극에서 이렇게 호소했었다. "나는 손에서 피를 흘리면서까지 왼손으로 네 개의 현을 있는 힘을 다해 꼭 누릅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는 말총으로 만든 활을 잡고, 손이 뻣뻣하게 굳을 때까지 활로 현을 문질러 댑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일종의 소음을 만들어내고 있지요. 독주가 안 되는 악기인데 어마어마하게 큰 덩치라, 악기를 쉽게 안지도 못 하죠." 하지만 말러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낸다. '사냥꾼의 장례식'에서 기나긴 독주를 콘트라베이스에 맡긴 것이다. 바이올린이나 첼로 등 다른 악기에 가려 소외감을 느껴야 했던 콘트라베이스 주자로선 일생일대 주목의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콘트라베이스가 육중하게 이끌던 사냥꾼의 장례식은 보통의 장송 행진곡처럼 슬프고 비통하지만 않다. 행진이 진행될수록 점점 활력을 얻고 중간부에 이르면 느닷없이 보헤미안 집시풍의 춤곡으로 전환되어 유쾌한 난장이 펼쳐진다. 심벌즈와 드럼도 동참해 우스꽝스러운 활력을 북돋운다. 이 곡의 아이러니는 바로 여기에 있다. 장례식은 본디 슬프고 비통해야 하지만 숲속 동물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사냥꾼의 죽음은 곧 동물의 해방과 다름없는 것이다. 겉으론 눈물 흘려도 속으로는 기뻐하는 부조리가 악상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과 이 곡을 공들여 감상했다. 정확히는 고양이 두 마리도 감상회에 동참했는데, 인간 중심의 사고를 비틀어 풍자하는 작곡가 말러의 관점에 모두가 각별히 공감했다. 자연의 생명과 인류의 관계, 그 공존을 두 손 모아 희망했다.
조은아 피아니스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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