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천재 디자이너, 미술 작가 되다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2022. 12. 29.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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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마르지엘라 개인전
내년 3월까지 롯데뮤지엄
인체에 질문 던지는 작업
데오도란트 [사진 제공=롯데뮤지엄]
거대한 데오드란트가 도심 한복판에 서 있다. 데오도란트는 몸의 체취라는 흔적을 감추는 도구다. 이 일상적 상품을 마틴 마르지엘라(65)는 그림으로 그렸다. 상품에 표기되는 라벨의 성분 표시는 지워지고, 전시에 관한 정보가 대신 새겨졌다. 현대인의 위생에 대한 강박과 위생조차 산업화된 현실을 일깨우는 2020년대 대표작 중 하나다.

몸을 치장하는 외피인 패션을 통해 세계와 소통했던 디자이너는 인간의 신체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30여년간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활동한 천재 패션 디자이너가 미술 작가로 돌아왔다.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의 창립자로 잘 알려진 마틴 마르지엘라의 국내 첫 대규모 개인전이 열린다.

그는 패션계에 해체주의라는 미학을 도입한 슈퍼스타다. 2008년 돌연 패션계를 은퇴한 그의 설치, 조각, 페인팅, 영상 등 총 5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는 ‘예술, 물질과 인체, 시간의 영속성, 젠더, 관객 참여’를 주제로 3월 26일까지 열린다.

전시 공간은 미로처럼 꾸며졌다.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는 복잡한 전시에서 길을 잃지 말라는 배려로 전시장 입구에는 지도를 출력할 수 있는 자판기가 설치됐다. 해체주의 패션을 통해 그는 옷의 구성요소를 파괴하고 재배치해 모호한 의미를 만들어내곤 했다. 박음질의 흔적과 생산과정을 드러내며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는 그가 옷을 만들던 철학이 구현된 작품이 많다.

토르소 시리즈 [사진 제공=롯데뮤지엄]
‘토르소’(2018~2022) 연작은 6개의 미완성 실리콘 조각을 통해 시각과 촉각을 통한 관람을 유도한다. 완벽한 비례의 그리스 조각과 달리 형태와 재질에서 몸의 개념을 파괴하고 확장한다. ‘바니타스’(2019)는 모발로 얼굴 전체를 덮은 실리콘 두상 연작이다. 유년부터 노년까지의 생애를 머리카락의 색상만으로 표현했다. ‘덧 없는 현세의 삶’을 상징하는 ‘바니타스’라는 고전주의 미학을 전복하는 시도다.
바니타스 [사진 제공=롯데뮤지엄]
붉은 손톱을 형상화한 ‘레드 네일즈’(2019)는 매력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상징하던 인조 손톱을 거대한 크기로 전시해 현대사회의 미의 개념을 다시 환기시킨다. 지도 제작법이란 뜻의 ‘카토그래피’는 인간의 두상을 거대한 모발 지도처럼 재현한 작업으로 하루 3회 작품의 위치를 바꾸는 퍼포먼스도 벌인다.
레드 네일즈 [사진 제공=롯데뮤지엄]
전시장 출구에서는 얼굴이 머리카락으로 완전히 뒤덮여 앞뒤를 구분할 수 없는 여인의 웃음소리가 크게 울려 퍼진다. 떠나는 관객의 발길을 붙잡는 기괴한 인사다. 베일에 싸인 디자이너로 불렸던 그의 작품 다수는 하얀 베일에 덮여있어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복잡한 동선부터 당혹스런 감정까지도 모두 작가가 설계한 것이다. 마르지엘라는 말했다. “아름다움이라는 속성은 특정한 상황에서만 분명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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