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위기에서 신뢰는 담금질 된다

2022. 12. 2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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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청 LX한국국토정보공사 상임감사

숱한 화제 속 막을 내린 JTBC의 '재벌집 막내아들'로 때아닌 화제가 된 것은 '뉴데이터 테크놀로지'라는 회사였다. 지금의 '신흥재벌'이라는 단어를 만들고 IT 버블의 상징으로 자리한 이 회사는 인터넷 무료 전화라는 '새롬기술'을 모티브로 했다. 지금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기술이지만, 과거엔 분 단위로 전화 통화 비용이 붙었다. 그 결과 인터넷을 이용해 전화를 무료로 사용한다는 신기술에 대한 기대감과 벤처 창업에 대한 열풍으로 시가총액이 한때 3조7500억원에 이르렀다.

하지만 미국의 금리인상과 새롬기술의 경영진 부정이 드러나면서 30만원을 넘던 주가가 5000원대로 곤두박질쳤다. 미국에 상장한 다이얼패드가 파산 위기에 몰리면서 주가가 하락했으나 이를 알고도 임원들이 주식을 매도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실적에 비해 고평가된 주가와 작전세력이 개입하고 있다는 논란 속에 이 회사는 경영진 간 분쟁과 분식회계 수사 등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이처럼 부패는 기업의 흥망성쇠와 함께한다. 부정부패가 기업 이미지 경쟁력을 제고하며, 글로벌 시대에는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까지 저해한다. 한 국가가 부패 국가로 낙인되는 경우 해외자본 유치와 투자가 감소되어 해외시장 진출이 어려워진다. 실제로 부정조사전문가협회(ACFE)가 2020년 전 세계 125개국을 대상으로 2504건의 부정부패 사건을 분석한 결과 사기 및 횡령으로 인한 기업 손실이 연간 매출의 5%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기업의 횡령 사건이 줄지 않고 있다. 오스템 임플란트를 시작으로 우리은행, 아모레퍼시픽까지 대규모 횡령사건이 잇따라 터졌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자금의 유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기업의 내부 통제에 대한 국민 불신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계층적 한국 사회에서 자주 나타나는 갑질·성희롱 이슈도 끊이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세계 경제 10위권 선진국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부설 경제분석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이 발표한 한국의 민주주의 성숙도는 전 세계 167개국 중 16위로 전년보다 7계단이나 상승했다. 반면 국제투명성기구(TI)가 지난달 발표한 '2021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를 보면 한국의 국가청렴도 순위는 세계 180개국 중 32위였다. 역대 최고 성적이지만 홍콩(12위), 일본(18위), 대만(25위) 등 다른 아시아 국가가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

부패인식지수 32위는 세계 10위권 경제력인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에 비춰볼 때 아직 갈 길이 멀다. 반면 스웨덴은 매년 세계 1∼3위에 오를 정도로 청렴도가 높다. 23년간 장기 집권한 총리 타게 엘란데르가 은퇴 후 노후생활을 할 집 한 채 남기지 않았다. 그가 서거한 후 정부 마크가 새겨진 펜을 반납한 총리 부인의 일화는 스웨덴이 얼마나 청렴한 국가인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깨끗해야 강해질까, 강해야 깨끗해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 사회·조직에 대한 신뢰 자본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경제학자들은 한 사회에서 타인에 대한 신뢰도가 10%p 증가하면 경제성장률이 0.8%p 성장한다고 추정했다. 지금보다 신뢰수준이 10%p 증가한다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서도 5만 개의 일자리가 해마다 추가로 생긴다는 뜻이다.

이처럼 신뢰는 거래비용을 줄여서 시장경제의 역동성을 키운다. 이런 이유로 LX한국국토정보공사도 저신뢰에서 고신뢰의 조직문화로 만들기 위해 '청렴확산협의체'를 만들어 다양한 이슈를 공론화했다. 직급에 상관없이 내부의 성역이 되는 문제까지 자유롭게 토론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상명하복식 조직문화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또한 공공기관 최초로 '상호인식 프로그램'을 도입·운영하고 취약지점을 파악해 맞춤형 컨설팅을 제공함으로써 사후 약방문이 아닌 사전 예방에 노력하고 있다. 더 나아가 2023년에는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노·사·감이 합동으로 윤리경영을 선포하고 전사적 공감대를 마련하여 확실한 신뢰자본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한다.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진양철 회장은 손자 진도준에게 자신의 가슴에 욕심, 의심, 변심 세 가지 심보가 있다고 했다. 자본주의에서 성공하려면 욕심이 있어야 하고, 당연한 것도 의심해봐야 하며, 상황에 따라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윤리경영을 통해 신뢰자본을 탄탄히 쌓아야 하는 우리와 같은 입장에서는 세 가지 마음가짐을 강조하고 싶다.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관심, 타인의 행복을 빌어주는 진심, 그리고 소통을 바탕으로 한 협심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조직을 성장시키고 발전시키는 무형의 공장이다. 고난 없이 맑아지는 영혼이 없듯, 신뢰자본은 조직의 위기관리능력에 대한 진단키트나 다름없다.

발전하는 조직은 위기에서 신뢰를 담금질한다. 내년에는 LX공사에서 관심, 진심, 협심을 토대로 한 공동체의 품격을 발견할 수 있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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