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병과 함께하는 친구에게
[세상읽기]
[세상읽기] 황필규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친구’라고 했지만 나보다 스무살 넘게 나이가 많다. 존댓말을 쓰지 않아도 되는 외국인이라 그냥 친구다. 연락해야지 하면서 미루다가 몇년 만에 안부를 묻는 이메일을 보냈다. 곧 장문의 답장이 왔다. 2년 전 ‘초기 단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는 첫 문장과 함께.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0여년 전이다. 미국 한 대학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있던 시절, 그는 그 대학 행정대학원 인권센터 소장이었다. 그가 가르치는 인권 관련 강좌에 청강을 신청했다. ‘다른 수강생들에게는 도움이 될 것 같아 환영이지만 기본적인 내용이라 너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답변을 받았다. 인권적이고 인간적인 따뜻한 인정과 배려, 그에게서 받은 첫 느낌이었다.
청강하며 그에 관해 좀 더 알게 됐다. 카페에서 만나 몇시간 동안 수다를 떠는 기회를 가지기도 했다. 내가 객원연구원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뒤엔, 그가 인권 관련 행사에 초청받아 한국에 올 때마다 만나 근황을 묻고 인권 이슈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런저런 전쟁 혹은 내전에 처음에는 공군 조종사로 나중에는 의사로 참여했던 경험, 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의료인 단체에서 펼쳤던 대인지뢰금지운동 등 여러 활동, 대학에서 인권 연구자이자 교육자로서의 삶. 그의 삶 한조각 한조각,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인권운동과 활동에 대한 그의 고민과 구상의 족적을 읽을 수 있었다. 한국보다 월등히 좋은 대학 내 인권 연구와 교육 여건에도 불구하고, 미국 대학에서도 인권 분야가 결코 주류가 될 수 없음을 그를 통해 확인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그는 한국에 남다른 애정이 있었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꼽으며 수업시간에도 여러차례 언급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에 관해서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한국에 올 때마다 현장을 방문하거나 관계자들을 만나기 위해 노력했다. 마지막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제 자기는 기존 대학에서 떠날 것이고, 한국에서의 초청은 그 대학의 이름값 때문이었기에 앞으로는 초대받아 한국에 오기 어려울 것 같다는 씁쓸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이메일에서 그가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게 된 과정에 관해 소상히 설명했다. 평소에 공간감각이 뛰어난 그였는데, 같은 크기 문짝을 여러개 만드는데 계속 길이를 맞추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했다. 뇌에 이상이 있나 의심이 가서 병원을 찾았고 여러 검사를 거친 결과 ‘초기 단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단다. 훨씬 나쁜 진단을 받았을 수 있었다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경관과 공기가 좋은 해안지역으로 이사했다고 했다. 삶의 전혀 다른 단계에 들어서게 된 순간을 기록하고 기억하고 지인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기억, 특히 단기 기억이 희미해진다고 얘기했다. 내가 얘기했던 ‘재난’이 어떤 항공기 추락 사고인지, 최근 서울에서 있었던 이태원 참사인지, 어린 학생들이 여럿 사망했던 배 침몰 사건인지 불분명하고 그 자세한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뛰어난 단기 기억력은 그를 훌륭한 인권활동가이자 연설가로 만든 중요한 요인이었기에 더욱더 안타까웠다.
다만 증상의 전개가 느려 ‘정신을 잃기’ 전에 사람들에게 해야 할 말을 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병이 자신을 지배하거나 그의 가족의 자원을 고갈시키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며, 조용히 삶을 마감할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이를 어떻게 실행할지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너무 늦지 않은 시점이 언제인가가 문제라는 농담 아닌 농담과 함께. 곱게 늙어가는 것을 넘어 어떻게 떠날 것인가를 담담히 성찰하는 그의 모습은 매 순간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 품격을 유지하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노력과 수양의 결과였으리라.
그가 남기고자 하는 것, 남겨야 하는 것을 듣고 함께 기억하는 사람 중 하나가 되고 싶다. 이 글이 그 시작이다. 한 인터뷰에서 자신을 지탱해주는 힘에 관해 물었을 때 그는 탈무드 한 구절을 인용했다. “세상의 엄청난 슬픔에 굴하지 마라. 바로 지금 자비를 베풀고 겸손하게 행동하고 올바른 일을 해라. 당신은 그 일을 완성할 의무도 없지만 그것을 포기할 자유도 없다.”
국내에서도 친구 먹고 싶은 몇몇 어르신들이 생각나는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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