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뛰기 실적’ 낸 정유사, 새해 신사업으로 ‘안정’ 찾는다
3분기 정제마진 ‘급락’에 실적도 3분의 1 토막
내년도 시장 불확실성 지속…신사업 영역 확장
석유화학·신재생에너지 등 포트폴리오 다변화
[이데일리 김은경 기자] 국내 정유사들은 올해 실적 면에서 유독 부침이 심한 한 해를 보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고강도 방역 조치와 같은 외부 요인에 따라 불과 한 분기 만에 영업이익이 수천억원씩 급등락하는 등 수익성이 널 뛸 수밖에 없는 사업 구조와 특성 탓이다.
내년에도 시장 불확실성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정유사들은 안정적인 수익 창출과 새로운 성장 동력 마련을 위해 석유화학, 신재생에너지 등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모양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정유 4사(에쓰오일·SK에너지·GS칼텍스·현대오일뱅크)의 올해 상반기 합산 영업이익은 약 12조원에 달한다. 연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한 덕에 역대급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3분기에는 합산 영업이익이 2조3529억원으로 전분기(6조9688억원) 대비 3분의 1 토막 났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과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로 수요 약화 우려가 커지면서 국제유가가 하락한 영향이다. 정유사 수익의 바로미터인 정제마진은 지난 9월 ‘0’ 달러까지 떨어졌다.
정제마진은 원유를 정제해 나온 휘발유·경유 등 다양한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운임·동력비 등을 제외한 이익을 말한다. 통상 정유사들의 손익분기점은 배럴당 4~5달러인데, 마이너스 정제마진은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제품의 가격이 원유 가격보다도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올해 4분기 들어 정제마진이 일부 회복되고 있으나 내년 시장환경도 여전히 불확실성이 높은 상태다.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환경 규제 강화, 에너지 위기 등 상·하방 요인이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외부 환경에 따라 실적이 크게 널뛰는 탓에 정유업계는 석유화학 부문을 늘리고 친환경 사업을 구상하는 등 ‘탈정유’에 시동을 걸고 있다. 종합 에너지 기업으로 변화를 꾀해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에쓰오일(S-OIL(010950))은 사업 다변화를 위해 울산 온산국가산업단지에 세계 최대 규모 정유·석유화학 스팀크래커(기초유분생산설비)를 건설하는 ‘샤힌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17일 무하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방한에 맞춰 이 프로젝트를 최종 의결했다. 에쓰오일은 샤힌 프로젝트를 통해 연간 최대 320만톤(t)의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한다는 목표다.
GS칼텍스는 지난 11일 창사 이래 가장 큰 금액인 2조7000억원을 투자해 전라남도 여수2공장 인근에 올레핀 생산 시설(MFC)을 준공했다. 올레핀은 플라스틱과 합성섬유, 합성고무의 기초 소재로 쓰여 ‘석유화학산업의 쌀’로도 불린다.
MFC는 부가적으로 생산되는 수소의 양이 기존 NCC보다 많은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석유 정제 공정에 필요한 수소를 따로 생산하려면 LNG를 사용해야 하는데, MFC에서 생산되는 수소를 이용하면 액화천연가스(LNG) 사용을 줄일 수 있다. GS칼텍스는 매년 30년생 소나무 1150만 그루가 흡수하는 이산화탄소량인 총 7만6000t의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롯데케미칼과의 합작사인 현대케미칼을 설립하고 지난 10월 충남 서산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에서 중질유 기반 석유화학설비(HPC) 상업 가동을 시작했다. HPC 프로젝트는 3조원을 투자하는 초대형 석유화학 신사업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서산에서만 연간 에틸렌 85만t, 프로필렌 50만t 생산에 나설 계획이다.
SK에너지는 ‘도심형 연료전지 융복합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 한국남부발전·LS일렉트릭·대한그린파워·삼천리자산운용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도심지 곳곳에 친환경 연료전지와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한다는 목표를 내놨다. 연료전지에서 생산된 전력은 인근 배전망에 공급할 예정이다.
SK에너지는 네이버와 함께 ‘도심형 풀필먼트 물류 센터(MFC)’를 구축하는 사업에도 나섰다. SK주유소를 첨단 기술이 집약된 도심 속 물류거점으로 육성한다는 구상이다. 내년 초 서울 일부 지역에서 시범운영한 후 서비스 대상 지역을 점차 늘릴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유사업에 치중된 사업 구조를 다변화해 손익 변동성을 줄이는 것은 정유사들의 오랜 숙제”라며 “내년에는 신사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의 성과가 나타나면서 본격적인 수익 다변화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은경 (abcde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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