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걸 칼럼] 반도체 대하는 태도, 이건 나라가 아니다
1989년 어느날, 학위논문의 주제를 고민하던 내게 월스트리트저널의 1면 톱기사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Here Comes Koreans!"라는 제목의 기사는 현대의 엑셀,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등 전자와 자동차 분야의 한국 기업을 소개하고 있었다. 수개월 전, TV를 사러 갔다가 SONY 등 일본 기업에 밀려 고전하는 LG와 삼성의 조악한 제품을 보며 아쉬워했던 기억이 스쳤다. 학위논문의 주제가 결정된 순간이었다
한국과 대만은 경제발전 과정에서 유사한 사례로 알려졌지만, 반도체산업은 정반대였다. 한국은 초기 국가의 반대를 무릅쓴 기업의 과감한 결단으로 시작했고, 성공 가능성이 보이자 정부가 숟가락을 얹은 형태로 발전했다. 반면, 대만은 처음부터 국가의 설계 하에 TSMC로 대표되는 파운드리형 반도체산업을 발전시켰다. '전략적'이라는 의미는 세계 공급망의 핵심으로 부상해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의 국익을 대만의 미래에 연계시키는 것을 말한다. 나는 1992년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산업정책을 비교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반도체산업은 '산업의 쌀'이라는 표현처럼 다른 모든 산업의 심장 혹은 두뇌와 같다. 1970년대 중반, ㈜한국반도체를 인수한 이건희 회장의 결단 이후 정부에 반도체 진출을 위한 지원을 요청했지만 너무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1982년 12월 이병철 회장이 '삼성그룹 전체의 명운을 걸고 반도체산업에 진출한다'고 선언한 이유다. 꼭 1년 뒤인 1983년 12월, 전자분야 경험이 전무한 현대가 반도체산업에 진출했다. 임원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히자 정주영 회장은 "내가 이 회장을 잘 아는데, 그 양반이 한다면 그건 틀림없는 사업이야"라며 고집했다.
최근 반도체특별법으로 알려진 'K칩스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논란이 된 것은 지난 23일 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안'이다. 국민의힘은 무소속 양향자 의원까지 영입해 2030년까지 현재 각각 6%, 8%, 16%인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의 반도체 시설투자 세액공제를 20%, 25%, 30%로 대폭 높이는 개정안을 제안했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기업에 대한 특혜라며 10%를 주장하다가 결국 내년 법인세수가 2조7000억 가량 줄어들 것을 우려한 기재부의 8%로 결정됐다.
언뜻 보면 수십조 원의 이익을 내는 대기업에 굳이 특혜를 줄 이유가 무언가 의문이 들 수 있지만, 본질은 그게 아니다. 반도체산업은 현재 한국과 대만, 미국이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막대한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산업이지만, 단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수백조 가치의 기업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는 산업이기도 하다. 그래서 세계 각국은 반도체 산업 지원에 사활을 걸고 있다.
대만은 반도체 기업의 연구개발투자 세액공제를 15%에서 25%로 증액하는 법안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 반도체 굴기를 시작한 중국은 사실상 반도체 투자액 전부에 대해 세금 혜택을 주고 있다. 이런 중국의 도약을 걱정하고 있는 미국은 '반도체 과학법'을 만들어 국내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 투자액의 25%를 세금에서 깎아주기로 했다.
그뿐인가, 우리 법인세 최고세율은 24%가 되었는데, 미국은 21% 단일 세율이고, 대만은 20%에 아예 지방세도 없다. 2021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113억과 32억 달러의 법인세를 냈는데, 대만의 TSMC는 24억 달러, 미국의 인텔은 불과 18억 달러의 법인세를 냈다. 또 돈으로 계산하기 쉽지 않은 수많은 규제가 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는 민원으로 송전선 공사를 못해 완공된 공장을 놀리다가 결국 열병합 발전소를 지었고, SK하이닉스도 용인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만들려다 민원에 계획을 연기했다.
경쟁자들은 각종 혜택과 감세로 홀가분하게 경기에 나서는데 우리 선수는 모래주머니와 쇳덩어리를 지고 나서는 격이다. 경쟁에 지고 나면 더 이상 삼성전자 같은 챔피언은 없다. 삼성전자 없는 한국의 경제를 상상해 보았는가. 그런데도 똑똑한 국회의원님들이 부자감세라며 반대한다. 이게 나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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