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빈에서 발레하는 조선의 왕자… 130년 우정의 시작이었다
궁정 발레단장 한반도 배경으로 작품
1950년대 후반엔 국내서 음악 유학 多
현지 음대생 오케스트라 꾸려 정기연주
올해는 '수교 130주년' 기념무대 활발
빈에 둥지 튼 '한국문화원' 역할 기대
월간객석과 함께하는 문화마당 한·오 수교 문화 교류사
황금빛 음악의 유산을 품은 오스트리아와 동양적 예술의 광물이 풍성했던 조선과의 첫 교류는 18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를 계기로 13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양국의 문화 예술적 교류는 현재 진행형이다. 코로나가 극성을 부린 2020·2021년을 지나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고자 오스트리아의 예술가들이 내한하고, 한국의 예술단체들도 오스트리아를 찾았다. 10월과 11월 풍성했던 현장으로 가본다.
양국 간의 본격적인 교류가 있기 전, 한반도는 신비의 땅으로 알려졌다. '은으로 덮인 언덕 위 도시'라거나 '모든 강과 시냇물에 금과 값어치 있는 금속이 흐른다'는 속설이 오스트리아에 떠돌았다. 이는 동아시아에 대한 유럽의 관심이 고조되던 가운데, 한반도 역시 그들의 레이더에 포착되었음을 암시한다.
19세기 말, 그 관심은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1873년 12월, '비너 차이퉁(Wiener Zeitung)'지에는 두 차례에 걸쳐 조선의 사회·지리·풍습을 소개한 기사가 게재됐다. "이 나라에 대한 기존 자료 파편들을 하나의 생생한 그림으로 엮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후 오스트리아의 함대가 조선 바다에 이따금 모습을 드러냈고, 1892년 조선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우호통상항해조약을 맺기에 이른다. 올해 수교 '130년'의 기점이 되는 사건이다. 고종은 이를 계기로 프란츠 요제프 황제에게 조선 왕실의 갑옷과 투구를 선물했다. 현재 빈미술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이는 기록으로 남아 있는 유일한 조선 왕실 갑주로서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1894년에는 오스트리아 여행가이자 작가인 에른스트 폰 헤세 바르텍이 조선 땅을 밟았다. 당시의 여행기는 이듬해 출판됐다. 한국어 번역본으로도 출간된 '조선 1894년 여름'(2012·출판사 책과함께)은 조선의 제도와 문물을 비롯해 동학농민운동, 갑오개혁, 청일전쟁 등으로 혼란했던 사회상을 담아낸 종합 보고서로서 당대 독일어 여행 전문 문학 분야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했다.
◇발레 추는 조선의 왕자
이 시기의 한반도를 배경으로 한 발레도 등장했다. 오스트리아 궁정 발레단장이던 요제프 바이어(1852~1913)가 작곡하고 요제프 하스라이터와 하인리히 레겔이 공동 집필한 '코레아의 신부(Die Braut von Korea)'다. 초연은 1897년 5월 빈 궁정오페라하우스(현 빈 슈타츠오퍼)에서 이뤄졌다. 이는 각각 일본과 중국을 배경으로 한 오페라 '나비부인'(1904), '투란도트'(1926)보다 앞선 것이었다.
작품은 4막 9장 구성으로, 일본 침략을 받은 조선의 왕자와 그의 연인이 나라를 구하고자 함께 전쟁터로 나간다는 줄거리다. 초연 이후 5년간 궁정 발레의 정식 레퍼토리로 공연되는 등 높은 호응을 얻었고, 1899년 독일 함부르크 시립극장에도 14차례 올랐다.
이후 종적을 감춘 작품은 2012년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클래식 음악 전문 출판사 창고에서 총보가 발견된 것이다. 이어 2014년에는 빈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빈 궁정오페라하우스의 1897년 10월 30일 공연 팸플릿이 나왔다.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작품을 국립발레단이 2013년 되살릴 계획이었으나 제작 여건상 취소됐다. 올해는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작품을 맛볼 기회가 있었다. 5월 빈 심포니 부지휘자 김여진과 한경arte필하모닉이 최초로 전곡을 초연 편성으로 연주했고, 8월 광복 77주년 기념공연으로 세종예술의전당에서도 관련 콘서트가 열렸다.
◇오스트리아의 한국 음악가
양차 대전 이전까지 오스트리아 주도의 한반도 탐방이 이뤄졌다면, 그 이후로는 한국의 오스트리아 진출이 두드러진다. 1950년대 후반부터 음악·종교·의학 등의 전공으로 한국 유학생이 오스트리아에 이주하기 시작했고, 이어 1963년 빈에 대한민국 대사관이 설립됐다. 2021년 5월 기준 재외동포는 약 2,500명으로 추산된다. 그중 유학생은 750여 명, 대부분이 음악도다.
한국-오스트리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1999년 탄생했다. 오스트리아 내 음대 재학·졸업생으로 구성되는 악단은 2020년을 제외하고 매해 빈 콘체르트하우스, 빈 무지크페어아인 등에서 정기연주회를 개최하고 있다.
단원과 예술감독은 물론 협연자도 양국의 음악가들로 채워진다. 프로그램도 마찬가지. 올해 23회 정기연주회(11.7)에서는 지휘자 김여진·마르틴 하젤뵈크, 소프라노 조수미, 테너 디트마르 커슈바움이 참여해 오종성의 '음탕한 목신의 광란'과 오스트리아 작곡가 슈베르트, 레하르, R. 슈트라우스 등의 작품을 선보였다.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예술단체인 빈 소년 합창단도 한국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고 있다. 2010년 조윤상을 시작으로 2020년까지 열두 명의 한국인 단원이 활동했다. 2014년에는 단체 역사상 최초의 여성, 동양인 상임지휘자로 김보미가 선임돼 3년간 활약했다.
◇더욱 긴밀한 문화 교류를 위하여
올해는 양국에서 서로의 공연예술을 만날 기회가 더욱 풍성했다. 지난 6월 오스트리아의 유럽 최대 야외축제 중 하나로 꼽히는 도나우 잉젤페스트에서는 K팝과 전통연희를 아우른 무대가 펼쳐졌다. 9월 그라츠 무지크페어아인과 빈 콘체르트하우스에는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경기민요, 거문고 산조 등이 울려 퍼졌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오케스트라, 국립심포니와 서울시향도 현지 관객을 찾았다. 특히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한국 작곡가들을 소개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국립심포니는 가야금 산조를 현대 관현악 어법으로 풀어낸 김택수의 '더부산조', 서울시향은 진은숙의 '권두곡(Frontispiece for Orchestra)'과 신동훈의 '카프카의 꿈' 등을 선보였다.
이에 오스트리아 현대음악 전문 단체인 블랙 페이지 오케스트라, 브루크너 오케스트라 린츠 등이 내한 공연으로 화답했다. 특히 1973년 클라우디오 아바도부터 2021년 크리스티안 틸레만까지 열두 번의 내한 공연을 세계적 베테랑 지휘자와 함께 꾸미며 한국에 대한 애정을 과시한 빈 필이 지난 11월 하이라이트를 수놓았다.
양국의 문화 교류는 점점 확장되고 있다. 2012년 수교 120주년을 기념해 빈 도나우 공원에 개관한 '한국문화의 집(Korea Kulturhaus)'은 한국어 강좌를 비롯하여 문학·예술·음식 등을 소개하며 그간 한국문화원의 부재를 채웠다. 지난 9월 마침내 주오스트리아 한국문화원이 임시 개관 소식을 알렸다. 빈 중심지인 슈테판 대성당과 빈 슈타츠오퍼 사이에 둥지를 튼 문화원은 전시실·갤러리·세종학당·공연 공간·도서관 등으로 꾸려져,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양국의 문화 가교역할을 할 예정이다.
기획·총괄=임원빈기자
글=월간객석 박찬미(독일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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