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명조끼, 해상 악조건…'공무원 월북' 뒤집은 근거는
국정원·국방부서도 '월북으로 보기 어렵다' 의견
(서울=연합뉴스) 박재현 기자 = '서해 피격 공무원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숨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씨가 자진 월북이 아닌 실족한 것으로 잠정 결론내렸다.
사건 당시 이씨의 구명조끼 착용 여부와 가족 관계, 해상 상황 등을 근거로 들며 문재인 정부가 국민적 비판을 무마하려고 명확한 근거 없이 이씨를 '월북자'로 몰아갔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이희동 부장검사)는 29일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과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을 첩보 삭제 지시 혐의(직권남용 및 공용전자 기록 손상)로 기소하면서 "이씨는 여러 증거를 종합하면 실족 가능성에 방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우선 이씨가 탔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에서 이탈할 당시 구명조끼 등을 입지 않은 점에 주목했다.
이씨가 북한 해역에서 발견됐을 당시 입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한자(漢字)가 적힌 구명조끼가 무궁화 10호에 없었고, 이씨가 개인적으로 구명조끼를 휴대하고 있지도 않았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이씨가 표류 도중 해상에 떠다니던 구명조끼를 우연히 발견해 입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사건 발생 직후 해경 등이 서해를 수색하는 과정에서 이씨가 착용한 것과 같은 구명조끼 2점과 구명환 1점을 발견한 것을 근거로 삼았다.
검찰은 또 무궁화 10호에 수영 수트나 오리발, 개인 방수복 등 수영 장비가 그대로 남아있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자진 월북할 사람이었으면 이런 장비들을 챙겨갔을 것이란 취지다.
검찰은 아울러 당시 해류의 유속(시속 2.92km∼3.51km)이 성인 남성의 수영 속도보다 빨라 원하는 방향으로 헤엄치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며, 수온 역시 22도 정도로 낮아 장시간 바다에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씨가 북한에서 발견된 지점은 무궁화 10호와 최소 27㎞(광화문에서 성남시 분당구까지 직선거리)가량 떨어진 곳으로, 이러한 거리를 동력을 사용하지 않은 채 수영해 가려고 시도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봤다.
검찰은 이씨가 북한 해역에서 발견됐을 당시 삶에 대한 의지도 보였으며, 사건 초반 알려진 것과 달리 가족과의 유대관계도 끈끈하다고 설명했다.
이씨 개인 채무에 대해서는 그가 안정된 공무원 신분이었으며, 필요하면 외항사 간부급 선원으로 취업할 수 있는 경력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월북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봤다.
따라서 이씨가 전 정부의 발표대로 자진 월북한 것으로 보긴 어렵다는 게 검찰의 결론이다.
검찰은 사건 이후 국가정보원에서도 이씨의 월북 가능성은 "불명확하다"는 판단이 있었으며, 국방부 실무진들 역시 자진 월북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고 밝혔다.
당시 해경의 의뢰로 표류 예측 분석을 한 4개 기관 중 2개 기관에서 이씨가 인위적 노력 없이도 북한 해역으로 표류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고도 강조했다.
검찰은 당시 정부가 사건 이후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여론의 비난을 우려해 이씨의 사망 사실을 은폐·왜곡했다고 봤다. 이씨가 북한 해역에서 발견된 뒤 사망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정부가 구조를 위한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국민적인 비판에 휩싸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비판 여론이 당시 종전 선언을 추진하던 정부 대북 정책이나 남북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의도적으로 사건의 진상을 조작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우리 사회에서 '월북자'는 통상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이나 '간첩'으로 인식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국가에 의해 월북자라고 규정되는 것은 당사자 본인과 가족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는 일인 만큼 사법절차에 준하는 신중한 판단을 내려야 하지만, 과거 정부는 빈약한 근거를 토대로 이씨를 월북자로 낙인찍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traum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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