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cal Mania] 새로운 콘텐츠, 다시 시작하다
경리단길을 오랜만에 찾았다.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이태원과 그 주변 상권은 폭탄을 맞았다. 상인들은 망연자실했고, 찾은 이들 역시 무거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경리단길 역시 이태원의 ‘그날’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었다.
경리단길은 여러 조건상 ‘뜰 수 없는 곳’이었다. 우선 교통이 불편했다. 가까운 지하철역은 이태원의 녹사평 역으로 특별한 목적이 없다면 선뜻 목적지로 삼기 어려웠다. 남산대림아파트 뒤에 있는 일반 주택가였던 이 길에 활기가 생긴 것은 2011년 장진우라는 젊은 청년에 의해서다. 장진우는 당시 한 인터뷰에서 “24세에 처음 경리단 길에 올 때 세탁소 3개, 책방 1개, 슈퍼 2개가 전부였던 동네”라고 말했다. 번듯한 건물은 필리핀대사관, 알제리대사관, 레바논대사관, 잠비아대사관, 콩고대사관 등이 전부였다. 장진우는 이곳에 개인 서재를 마련하고 사진도 찍고 친구들과 밤새 음악을 들었다. 평소 요리 솜씨가 있던 그는 친구들에게 음식을 해주고 친구들은 라운드 테이블에서 그의 요리를 먹었다. 이렇게 ‘장진우 식당’이 문을 열고 그의 활약이 시작되었다. 재즈를 듣기 위한 그랑블루, 이탈리안 식당 마틸다, 꽃집, 빵집 등 그가 손대는 것들은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언론은 2012년 처음으로 ‘경리단길’을 지면에 올렸다. 장진우의 솜씨가 일명 ‘장진우 거리’를 만들었고 이것이 바로 경리단의 시작이다.
사람들은 핫한 식당을 찾는다. 맛있게 먹고, 뷰를 감상하고 힙한 분위기에 취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 다음에는 뭐하지?’를 찾는다. 경리단길의 전성기에는 이것이 있었다. 밥도, 술도, 소품 가게도, 갤러리도, 또 꼬불꼬불 골목의 이색적인 카페를 찾는 것도 재미였다. 도시개발이나 도시재상 전문가들이 한 동네의 전성기 지속에서 공통적으로 꼽는 것이 ‘다음에 뭐하지’의 존재이다. 그것도 신선하고, 특색 있는 즉 이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행복. 물론 경리단길 역시 코로나19 이후 상권은 당연히 침체되었다. 비단 경리단길만의 문제는 아니다.
낮에 이곳을 천천히 걸었다.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도로 정비 공사가 한창이고 저녁 장사를 준비하는 가게들은 하나둘씩 문을 열었다. 붉은색의 ‘마요’는 반가웠고 메인 길 사이에 자리한 작은 가게들은 여전했다. 활기가 길 건너 해방촌으로 건너갔지만 그래도 터줏대감들은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얏트 호텔에서 내려오는 길, 몇몇 가게나 장소는 호기심을 주지만 지속력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무엇 때문일까. 경리단길을 사랑해 오늘도 문을 연 이들이 멀지 않아 그 이유를 찾을 것이다. 그래서 경리단길이 새로움을 찾게 되는 순간을, 그날을 기다려본다.
글과 사진 장진혁(프리랜서)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61호 (23.1.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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