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희 칼럼] 북의 드론 도발 차라리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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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천안함 피격 이후 이토록 완벽하게 당한 적은 없었다.
'드론봇전투단'을 만들었다고 하나 대응타격 능력과는 무관한 다만 초보적 수준의 정찰 공격용 드론을 시험 운용하는 작은 부대다.
연평도 도발 때처럼 당장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아마 사단 군단 합참 지휘부까지의 판단을 기다리느라 대응 적기를 놓쳤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고 보면 이번 드론 도발은 우리 국방태세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차라리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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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구호에 우리만 망가진 국방체계 확인
대통령 혼자서만 군인 같았던 희극적 상황
본연의 실전형 군 재구축하는 계기 삼아야
2010년 천안함 피격 이후 이토록 완벽하게 당한 적은 없었다. 서해교전이나 연평도 포격전 때는 선제를 당했어도 최소한 적에게 상응하는 이상의 대가를 치르게 했다. 이번에는 아예 농락당한 수준이다. 무인기 네 대가 애먼 곳에 시야를 잡아두고는 다른 한 대가 서울 상공을 거침없이 휘젓고 다녔다. 뻔한 양동작전에 맥없이 당하고도 기만체, 주공체 어느 하나 잡지 못하고 몽땅 돌려보냈다.
혹독한 질타를 받고서야 군 당국이 사과와 함께 방어 실패의 원인을 털어놓았다. 한마디로 북한의 드론 도발에 대한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는 것이다. 워낙 소형이라 탐지가 어렵고 저속침투항공기 대비용인 비룡이나 벌컨 등의 대공화기들로도 한계가 있다는 토로다. 사실상 시각에 의존하는 공격헬기의 기관포도 적합한 대응책이 아니란다.
납득은 해도 생각할수록 한심하고 기가 막힌다. 이미 8년 전부터 여러 차례 북한의 드론 도발에 당한 바다. 더구나 이번 드론도 당시의 조악한 성능에서 나아진 게 없는데도 같은 방식에 또 당했다. 경계가 뚫렸으면 응당 만들었어야 할 대응 매뉴얼도 없던 것 같다. 그러면 그 긴 시간 군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단 말인가. '드론봇전투단'을 만들었다고 하나 대응타격 능력과는 무관한 다만 초보적 수준의 정찰 공격용 드론을 시험 운용하는 작은 부대다. 그래서 민수용에 가까운 소형 회전익 기종이 태반이다. 전 정권의 치적으로 내세울 만한 건 아니다.
이쯤 되면 군사전략에 관한 한 북한이 훨씬 영리하고 창조적이라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능력 안 되는 고비용의 정면승부는 비껴가는 대신 제한된 자원을 핵전력 확보에 집중 투입하고, 드론 장사정포 잠수정 같은 저가 무기를 대량으로 확보 유지하는 방식이다. 조만간 공격형 드론에 무인수상정 같은 저비용 해상무기도 등장할 것이다. 우리가 과시형 전력 증강에 취해 있는 사이 위로는 핵미사일에 멱살 잡히고 아래로는 값싼 원시무기에 무방비로 로우킥 당하는 상황이 됐다. 이러면 주먹 한 번 제대로 뻗어볼 여지도 없다.
덧붙여 중요한 건 군 지휘부의 실전 의지다. 탐지가 어려웠다고 하나 만약 초기에 군사분계선을 넘는 항적을 발견했다 해도 과연 즉각적으로 쏠 수 있었을까. 오랫동안 대북 평화주의에 주눅 들어 정치적 고려까지 해야 하고, 더욱이 북한 심기를 건드릴까 수년간 훈련도 제대로 못 한 상황에서 답은 회의적이다. 연평도 도발 때처럼 당장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아마 사단 군단 합참 지휘부까지의 판단을 기다리느라 대응 적기를 놓쳤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에 군인처럼 행동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군 경험이 없는 대통령뿐이었다. 물론 국가적으로 크게 상황관리를 해야 할 대통령이 비례대응을 넘어 확전불사 의지까지 밝힌 건 너무 나간 게 맞다. 그러나 군이 제 할 일을 못 해 비롯된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군은 관리형 조직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아온 터다.
시간은 촉박하나 이제부터라도 가능한 모든 도발상황을 미리 상정한 전면적이고도 실전적인 국방전략을 재구축해야 한다. 여기저기에서 불쑥불쑥 머리를 내미는 두더지게임처럼 매양 새로운 도발행태를 쫓아다니다 끝내 당하고 마는 행태를 언제까지 거듭할 텐가. 그러고 보면 이번 드론 도발은 우리 국방태세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차라리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전 정권 탓, 현 정권 탓하는 정치공방도 부질없다. 안보는 5년 정권을 넘는 국가영속성 차원의 문제다. 비록 전 정권의 잘못이 크다 해도 이제부턴 오롯이 현 정부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일이다.
이준희 고문 jun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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