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서해 피살 첩보 5600여건 삭제···진상 은폐"
감사원 발표보다 대폭 늘어나
"대량 삭제조치 굉장히 이례적
월북시도 아닌 실족 가능성 커"
혐의 놓고 법정 싸움 치열 예고
검찰이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관련 첩보 삭제를 지시한 혐의로 서욱 전 국방부 장관과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을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국방부에서 5600건, 국정원에서 50여 건의 첩보나 보고서가 삭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진상을 은폐하기 위해 첩보를 대량으로 삭제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29일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 이희동)는 국가정보원법 위반, 공용 전자기록 등 손상 혐의로 박 전 원장과 노은채 전 국정원장 비서실장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공용 전자기록 등 손상,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혐의로 서 전 장관도 불구속 기소했다.
박 전 원장과 노 전 비서실장은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 씨가 북한군에 살해된 이튿날인 2020년 9월 23일 국정원 직원들에게 50여 건의 관련 첩보와 보고서를 삭제하게 한 혐의를 받는다. 서 전 장관도 국방부 직원 등에게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의 보안 유지 지시에 따라 관련 첩보 5600건을 삭제하게 한 혐의가 있다. 서 전 장관은 이 씨가 자진 월북했다는 취지로 허위 보고서를 작성하게 하거나 허위 발표 자료를 작성해 배부하게 한 혐의도 받는다.
검찰 관계자는 “이 같은 대량 삭제 조치는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라며 “수사팀은 관련자들 진술과 증거 자료를 종합해 이번 사건을 ‘보안 유지 지시’라는 이름의 ‘진상 은폐’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이 공개한 삭제 건수는 감사원이 올 10월 발표했던 국방부 60건, 국정원 46건에 비해 대폭 증가한 수치다.
검찰은 이 씨가 스스로 월북 시도를 한 것이 아니라 발을 헛디뎌 바다에 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채 자진 월북을 시도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다. 당시 이 씨가 타고 있던 무궁화 10호에는 수영 슈트나 오리발, 개인 방수복 등도 있었지만 이를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 관계자는 “이 씨가 실족한 곳에서 최초 발견된 지점까지는 쉽게 말해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서 경기 일산호수공원까지에 해당하는 거리”라며 “이처럼 먼 거리를 동력을 이용하지 않고 자진 월북했다고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사건 당시 국정원도 ‘월북 가능성은 불명확하다’는 판단을 내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만약 월북 의사가 있었다면 이 씨는 원양어선 간부급 선원으로도 충분히 갈 수 있었다”며 “당시 가족 간 유대 관계도 끈끈했던 데다 북한에 대한 동경이나 관심을 보였던 정황 역시 보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 씨가 27㎞ 떨어진 해역에서 발견된 이유에 대해서는 “해경 수사 당시 실시한 표류 예측 분석 결과에 의하면 조사 기관 4곳 중 2곳은 인위적 노력 없이도 북한으로 표류할 수 있는 사례를 제시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또 “우리나라 사회 통념상 자진 월북을 했다는 것은 범죄행위일 뿐 아니라 남은 가족들에게도 낙인을 찍을 수 있는 일”이라며 “국가가 사법 절차에 준하는 충분한 절차와 신중한 판단, 명확한 근거를 가지지 않고 자진 월북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첩보 삭제를 지시한 의혹을 받는 서 전 실장을 계속 수사할 방침이다. 서 전 실장은 피격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합참 관계자 등에게 보안 유지 조치를 하라고 지시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으로 9일 구속 기소됐다.
한편 관련자들은 모두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치열한 법정 싸움이 예고됐다. 박 전 원장은 이날 “기소에 대한 부당함이 재판 과정에서 밝혀지기를 기대한다”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연말 정국에 저까지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 전 장관은 “보안 유지를 위해 예하 부대까지 내려갔던 첩보의 배포선 조정을 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 전 실장은 “피격 사실을 은폐한 것이 아니라 최초 첩보의 확인 및 분석 작업을 위해 정책적으로 공개를 늦춘 것”이라고 주장했다.
천민아 기자 mina@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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