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에 봉착한 전력 독점구조 …"판매시장 먼저 개방해야"

송광섭 기자(opess122@mk.co.kr) 2022. 12. 29.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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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위기 국면서 대응 미흡
전력산업 재편론에 힘 더 실려
전기요금 인상은 일시적 현상
가격 경쟁을 통해 낮출수 있어
탄소중립·RE100 실현과 연결
분산에너지 비중도 더 높여야

한국전력이 만성적인 적자 경영에서 벗어나고 전력산업 구조를 재편하기 위해서는 현재 한전이 독점하고 있는 전력 판매시장을 개방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에너지 위기 극복을 넘어 글로벌 각국의 정책 목표인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이 같은 구조개편이 동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전력시장 일각에서는 판매시장을 개방하면 가정용·산업용 전기요금이 현재보다 더 가파르게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전문가들은 "감내해야 할 일시적인 현상"이라며 장기적으로는 가격 경쟁을 통해 더 저렴하게 전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29일 매일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전력산업과 관련된 학계·업계 전문가들은 한전의 구조개편을 본격적으로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에너지 위기에 국내 전력산업의 구조적인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지금까지 한전의 연간 영업손실은 2008년 2조7981억원이 가장 컸다. 그러나 국제 에너지 가격이 오르기 시작한 지난해에는 5조8601억원까지 늘었고 올해는 30조원대를 바라보고 있다. 한전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전력산업 구조가 한계에 직면했다는 의미다. 에너지 위기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언제든 되풀이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전력산업 구조개편에 힘을 싣고 있다.

김대중 정부가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추진할 당시 PwC 고위 임원으로 자문에 참여한 채도선 HC&Sons 컨설팅 대표는 "당시 추진하던 구조개편이 도중에 멈춰서면서 '반쪽 개혁'에 그쳤다"며 "완전한 경쟁체제가 아닌 지금의 어정쩡한 전력산업 구조로는 한전의 적자 문제를 해소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해외 사례와 에너지 시장 변화 등을 고려해 판매시장만이라도 열어야 한다고 말한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관료는 "근본적인 해법은 한전의 독점체제를 바꾸는 것"이라며 "과거처럼 모든 분야가 아니라 판매 등 부분적이고 단계적으로 시장 개방을 추진할 시기가 됐다"고 권고했다.

다만 전력 판매시장을 개방하면 전기요금이 급등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변수로 지목된다. 이에 대해 최철호 전력산업정책연대 의장은 최근 국회 토론회에서 "자본 논리로 시장이 움직이면 기업 이윤은 쌓이겠지만 민영화에 따른 부담은 국민 몫"이라며 "판매시장을 개방할 경우 외국과 민간 투자자본이 유입돼 에너지 자주권을 상실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전문가들은 한전이 적자와 부채를 떠안고 전기를 저렴하게만 공급하는 현재 체제가 미래 세대에 더 큰 부담을 떠안길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익명을 요구한 전력업체 고위 관계자는 "한전이 적자를 쌓아둔다고 해서 전기를 저렴하게 사용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며 "이는 고스란히 미래 세대가 떠안게 되는 부담"이라고 말했다. 또 전기요금을 일괄적으로 저렴하게 유지할 때 전기를 과소비하는 소비자가 더 이득을 보는 형평성 문제도 있다. 즉 에너지 수요 효율화는커녕 전기 과소비 행태만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판매시장 개방은 탄소중립 실현과도 연결된다.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분산에너지 활성화가 필수인데 한전이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제대로 실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분산에너지는 지역 내에서 생산한 전기를 지역 내에서 소비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전남지역에서 태양광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를 인근 기업들이 사다 쓰는 식이다.

정부는 2020년 12.2%에 불과한 분산에너지 비중을 2036년 23.3%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를 위해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 제정도 추진하고 있다.

분산에너지는 RE100과도 맞물려 있다. RE100의 핵심은 제3자 간 직접전력거래(PPA)다. 실제 현대엘리베이터는 RE100 달성을 위해 최근 한 태양광발전과 제3자 PPA 계약을 맺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국내 제조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RE100 참여 시 겪는 애로사항은 △비용 부담(35.0%) △관련 제도·인프라 미흡(23.7%) 순으로 많았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판매 경쟁이 없는 국가는 RE100과 같은 에너지 전환에 대응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전이 판매하는 전기는 화력발전부터 태양광·풍력발전까지 다 섞여 들어와 발전원 구분이 안 된다"며 "삼성·SK 등 대기업들이 재생에너지를 쓰고 싶어도 사용할 수가 없는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송광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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