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M&A]질주하던 자본시장, 기준 금리에 무릎 꿇다
빗나간 시장 전망…'진도준은 없었다'
가파른 금리 인상에 자본시장 직격탄
제대로 팔지도, 사지도 못하는 시장
'더블' 인수금융 부담 내년에도 여전
자금력 있는 '진짜 가진자' 시장 전망
[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지난해 이맘때쯤 나눴던 대화 얘기를 먼저 해볼까 한다. 한 해를 복기하며 새해에는 어떻게 될지 묻는 게 일상이던 시기다. 당시 만났던 한 자본시장 관계자에게 내년(올해) 시장 전망을 묻자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금리가 오른다지만, 생각보다 시장 열기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겁니다. 정부에서도 자본시장 육성을 내건 상황에서 시장 유동성을 줄인다는 게 부담일 수밖에 없죠. 투자자나 운용사들도 (투자받은) 자금을 집행해야 해서 열기는 이어질 것 같네요.”
불현듯 1년 전 얘기를 꺼낸 이유는 그의 전망이 틀렸다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최근 본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을 떠올리며 ‘아 그가 2회차 인생을 살지는 않았구나’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만큼 시장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출렁였고, 십수년째 자본시장에 몸담고 있던 관계자들 예상조차 빗나간 한 해였다는 것이다.
사실 올해 자본 시장이 이렇게까지 휘청이리라 예상한 이는 없었다. 보수적인 전망이 아예 없진 않았지만, 관계자 대부분의 공통된 의견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게 중론이다. 한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운용사 관계자는 “올해는 사실상 최악이었다”고 말할 정도다.
지난해만 해도 이런 분위기는 상상조차 못했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2021년 국내에서 이뤄진 기업 경영권 인수 거래액(잔금 납입 완료 기준)은 51조7515억원을 기록했다. 코로나19가 휘몰아쳤던 2020년 M&A 거래 금액(26조9612억원)과 비교해 2배 가까이 급증한 수치다. 82조8450억원을 기록했던 2015년 이후 6년 만에 최대치를 찍었다. 2조원을 웃도는 ‘메가 딜(Mega Deal)’이 7건이나 체결되면서 열기를 견인했다.
연기금이나 공제회 등 기관투자자들도 ‘내 돈으로 투자해달라’며 곳간을 열던 시기다. 투자금을 너도나도 가져가는 시기가 열리자 1조원 넘는 초대형 블라인드 펀드(투자 대상을 정하지 않고 목표수익률만 제시한 뒤 투자금을 모으는 펀드)를 만들겠다는 PEF 운용사들도 하나 둘 늘어갔다. 열기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 있게 들렸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윤기 흐르던 자본 시장이 일 년 만에 돌변한 이유는 가파른 기준 금리 인상이다. 시장 관계자들 모두 간과한 사실은 금리가 이 정도로 오를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급기야 일각에서는 ‘올라 봐야 얼마나 오르겠어’라거나 ‘금리가 시장을 좌우하던 시기는 지났다’는 얘기도 있었다. 부풀어난 유동성에 기댄 시장의 자신감이 충만했던 시기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보란듯이 기준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연준은 지난 14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인상하면서 기준금리를 4.25~4.50%로 올렸다. 올해 1월 0.00~0.25%였던 미 기준금리를 7차례 연속으로 올린 결과 2007년 이후 15년 만에 최고 수준까지 차올랐다.
미국의 기준 금리 인상은 국내 자본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국내 기준금리가 따라 오르는 것은 예상된 수순이었다. 현재 3.25%인 국내 기준금리는 연초에 또 오를 가능성이 크다. 무난하게 3.50%를 찍을 가능성이 유력하다는 전망 속, 3% 후반 내지는 4%를 위협할 수 있다는 시각마저 나온다.
국내 자본시장은 예상치 못한 기준금리 급등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남의 자금을 모아 투자해서 수익을 내야 하는 PEF 운용사나 벤처캐피탈(VC)들이 치러야 할 차입금 이자는 10달 만에 ‘두 배’가 됐다. 연초 연 4% 수준이던 인수금융 조달 금리는 최근 연 8~9% 이상으로 치솟았다. 현행 조달 금리를 유지해 달라는 운용사 측 제안을 거절하는가 하면 인수금융 연장 대가로 두자릿수 이자율을 요구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기관투자자들도 투자 시각을 보수적으로 가져가기 시작했다. 최근 균열 조짐을 보이는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등 모험자본 투자 비중을 확 줄이고, 속된 말로 ‘깨지지 않을 자산’만 찾기 시작했다. 기관투자자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초대형 블라인드 펀드를 만들겠다던 PEF 운용사들도 덩달아 자취를 감췄다.
시중에 넘치던 유동성이 마르면서 M&A 시장도 얼어붙었다. 자금 동원에 한계를 느끼는 상황이 연출되자 ‘무리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퍼진 결과다. 실적을 끌어올려 높은 가격에 팔자던 PEF 운용사들의 계획에도 급제동이 걸렸다. 실제로 올해 인수(매각)하기로 계약까지 체결했다가 무산된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예기치 못한 한 해를 보낸 시장의 시선은 내년을 향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반등 기대를 걸어보지만, 생각보다 녹록지 않다. 일각에서는 ‘금리는 결국 내릴 수 밖에 없다’는 전망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금리가 차오를 대로 차오른 상황에서 결국 내린다는 전망은 순진한 ‘희망회로’다.
당장 미 연준이 금리 동결만 외쳐도 ‘이제는 오르지 않는다’며 국내외 증시가 들썩일 가능성이 높다. 앞서 오른 4% 넘는 기준 금리는 잠시 잊은 채 말이다. 설령 금리 인하 구간에 들어서더라도 앞서 오른 인상분을 모조리 반납하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자이언트 스텝 수준의 자이언트 ‘백’스텝이 일어나야만 하는 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관건은 내년부터 8~9%대(어쩌면 10%대) 인수금융을 무릅쓰고 M&A나 지분 투자에 나서는 상황이 조성되느냐다. 누가 봐도 업사이드(상승여력)가 확실하지 않은 이상 높은 이자를 감당하면서 M&A를 하기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최근 금융당국이 주식 25% 이상을 보유하는 최대 주주에게 잔여지분을 공개 매수해야 하는 ‘의무공개매수’ 도입을 검토하면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흐르고 있다.
상황이 이렇자 현금 보유가 넉넉하거나 자체 조달 금액에 여유가 있는 일부 운용사들에게만 제한적인 기회가 열릴 가능성이 크다. 이들 원매자들은 시장에서 이전에 누리지 못했던 영향력을 누릴 수 있다. 진짜 여유있는 자들만 누릴 수 있는 역대급 ‘바이어스 마켓(원매자 우위) 시장’이 펼쳐질 것이란 전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올해 하반기에도 어느 정도 흐름이 보였지만, 상대적으로 가용 금액에 여유가 있는 전략적투자자(SI)와 드라이파우더(블라인드펀드 내 미소진 금액)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초대형 PEF 운용사들이 주도하는 상반기 시장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김성훈 (sk4h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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