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유사입장국(LMG)
한 해를 마무리하며 올해 외교가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한 단어가 뭐였느냐고 묻는다면 '유사 입장국(Likeminded Group·LMG)'을 꼽겠다. 소위 LMG라 불리는 이 나라들은 문자 그대로 비슷한 생각을 가진 국가들의 무리다. 다자무역을 중시하는 국가들 모임인 '오타와 그룹'처럼 거창한 이름을 갖고 활동하는 LMG들도 있지만 올해는 사안별로 그때그때 비슷한 국가들끼리 묶이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한국은 올해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연합(EU)·독일·일본 등 유사 입장국들과 수시로 실무협의를 벌였다. 지난 11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한·미·일 정상이 최초로 내놓은 3국 공동성명에는 '유사 입장국'이란 표현이 적시되기도 했다. 인도·태평양 지역의 경제질서 강화를 위해 "유사 입장국들과 기술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것. 기술 협력이라는 내용(what)보다 누구(who)와 같이하느냐에 방점이 찍혔다. 유사 입장국들의 보이지 않은 힘에 입장을 바꾼 일도 있었다. 이달 초 유엔 총회에서 표결에 부쳐진 우크라이나 인권 결의안. 한국은 한 달 전 기권했다가 최종 표결에선 찬성표를 던졌다. 이 과정에서 유사 입장국들과 조율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LMG는 원래 다자외교의 현장인 국제기구에서 많이 쓰이는 용어였다. 수백 개 회원국이 참여하는 유엔, 세계무역기구(WTO) 등에서 제 목소리를 내려면 비슷한 생각을 가진 나라들이 뭉치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올해는 국제기구가 제 기능을 못하면서 LMG가 더 활발해졌다. 북한의 역대급 미사일 도발에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성명조차 내지 못하자 한·미·일 등 유사 입장국들이 장외 성명으로 북한을 규탄한 게 대표적이다. 내년 윤석열 정부가 가치외교에 속도를 내려 한다면 LMG의 중요성은 더 커질 게 분명하다. 우리와 단합해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LMG를 구성하는 데 가치외교의 성패가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예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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