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하게 그린 '부활의 증거'…강렬한 빛과 어둠이 만든 '명암대조법'

2022. 12. 29.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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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옥의 명작 유레카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의심하는 도마'
빛·어둠 대조 '테네브리즘' 기법 개발
예수 부활 의심하는 제자 도마의 일화
역동적인 구도 통해 도마 손가락 집중
사실주의 기법으로 생생하게 표현
사도들을 종교화와 달리 노동자 묘사
하층민에게 은총 내린 복음 강조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의심하는 도마’(1602~1603)

17세기 이탈리아 화가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1571~1610)는 가장 혁신적인 예술가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회화의 혁명가로 불리는 그는 미술의 관습, 규범, 사회체제에 도전해 미술사의 흐름을 바꾸는 업적을 남겼다. 미국의 미술사학자 버나드 베런슨은 “이탈리아 화가 가운데 미켈란젤로를 제외하고 카라바조만큼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은 없었다”고 그의 예술세계를 높이 평가했다. 카라바조의 걸작 ‘의심하는 도마’를 감상하면서 혁신의 결과가 미술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이 장면은 성경 요한복음에 나오는 사도 도마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도마는 부활한 그리스도를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지 못할 만큼 의심이 많다. 이에 예수는 다른 두 사도가 지켜보는 가운데 도마의 오른손을 잡고 그의 검지 손가락을 창으로 찔린 상처 속으로 집어넣어 부활의 기적을 직접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치마 다 코넬리아노 ‘의심하는 성 도마’(1502~1504)

의심하는 도마가 믿음의 도마로 거듭나는 이야기는 기독교 미술에서 인기 있는 주제였고 카라바조 이전에도 많은 화가가 기적의 순간을 성화에 담았다. 그러나 카라바조처럼 친숙한 주제를 혁신적 화풍으로 표현한 사례는 없었다. 카라바조는 자신이 개발한 명암법(테네브리즘)을 활용해 익숙한 종교적 주제를 기적의 드라마로 승화시켰다.

테네브리즘은 어둡고 모호하다는 뜻의 이탈리아어 ‘테네브로소’에서 유래한 용어로 빛과 어둠의 뚜렷한 대비가 특징인 회화 표현 기법이다. 이 그림에는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조로 극적인 효과를 더하는 테네브리즘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화면 왼쪽에서 들어오는 강렬한 빛이 예수의 옆구리에 난 상처와 다친 부위를 헤집는 도마의 검지손가락, 긴장된 눈빛으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장면을 응시하는 사도들의 이마와 코에 집중적으로 쏟아진다. 강렬한 인공조명은 신성과 믿음, 생명을, 짙은 어둠은 악과 불신, 죽음을 상징한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예수의 옆구리에 난 상처와 손등의 못 자국, 도마의 검지손가락, 사도들의 주름진 이마와 코에 가상의 선을 그으면 원이 그려진다. 회전하는 원은 역동적인 구도를 이끌어내며 관객의 눈길을 부활의 증거인 예수의 상처를 확인하는 도마의 손가락으로 집중시키는 효과를 발휘한다. 이로 인해 관객은 예수의 상처를 실제로 눈앞에서 목격하고, 벌어진 살 속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집어넣는 것 같은 생생한 느낌을 받게 된다.

카라바조는 혁신적 명암대조법을 활용해 기독교 신앙의 핵심 교리인 육체적 부활의 증거를 감동적으로 전달했다. 그런 한편 성서 이야기를 동시대 일상적인 장면으로 묘사하는 혁신적 사실주의 기법도 이 그림에 선보였다. 성화에 등장한 예수는 당시 로마의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남자의 모습이며, 그의 머리 주위에는 신성과 거룩함, 은총과 영광을 나타내는 후광도 없다. 심지어 예수는 제자 도마의 더러운 손가락을 자신의 벌어진 상처 속으로 집어넣는 파격적인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세 사도들은 가난한 노동자처럼 보인다. 특히 도마는 어깨 부분이 찢어진 낡은 옷을 입은 데다 노동으로 거칠어진 손과 손톱에는 지저분한 때가 끼어 있다. 전통적 종교화에서 예수와 성인들은 경건하고 이상화된 모습으로 그려졌다. 어떤 화가도 신성한 존재를 이런 식으로 사실적 기법을 사용해 동시대 하층민으로 묘사한 적이 없었다.

가장 성스러운 존재를 가장 속되게 묘사해 종교미술의 규범과 규칙을 깬 이 작품은 기존 미술계에 대한 공격이자 도전장이었다. 종교화의 관습을 뒤엎은 카라바조에게 ‘신성 모독, 불경스러운 이단자, 회화의 반역자’라는 보수주의자들의 거센 비난이 쏟아졌다.

카라바조는 왜 그리스도와 성자들을 동시대 하층민의 모습으로 표현했을까?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에게 신의 특별한 은총이 내린다는 복음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카라바조는 현실과 동떨어진 종교화가 아니라 일반인도 성경의 교훈을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인간적인 종교화를 그리려는 의도에서 제작 방식을 혁신했다. 그는 동시대인의 실제 삶에서 영감을 얻었고 로마의 길거리에서 만난 평범한 사람들을 모델로 세워 성경 속 이야기를 일상의 한 장면으로 구현했다.

오늘날 이 그림은 인간의 모습을 한 신성이자 거룩한 세속을 예술로 구현했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치마 다 코넬리아노가 그린 동일 주제의 그림과 비교하면 카라바조의 작품이 얼마나 혁명적인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영국의 미술사학자 앤드루 그레이엄 딕슨은 입체감과 몰입감이 뛰어난 카라바조 화풍에 대해 ‘카라바조는 비할 데 없이 탁월한 드라마 감각과 빛과 어둠의 극단적인 대조를 사용해 유럽 미술의 전통을 결정적으로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카라바조의 혁신기법은 미술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고 그의 혁명적 명암법을 모방하거나 응용한 카라바지스트로 불리는 후계자들이 생겨났다. 렘브란트, 벨라스케스, 라투르 등이 카라바조의 드라마틱한 표현기법을 발전시킨 대가들이다. 카라바조식 명암대조법은 범죄와 폭력세계를 다룬 영화 필름누아르와 공포영화에도 영감을 줬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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