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 주문하신 분"…스크린에 내 이름이 영화처럼 떠올랐다

양지윤 2022. 12. 29.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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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건축물 열전
경동시장 골목을 바꾼 '스타벅스의 공간 철학'
1960년에 지어진 경동극장
멀티플렉스 시대 열리면서
1990년대 역사 속 사라져
"공간이 가진 DNA 보존"
내리막 계단 따라 좌석 설치
스크린 자리에 음료 제조바
잿빛 벽도 옛 모습 그대로
스타벅스 경동1960점. 옛 경동극장의 경사진 계단식 구조를 그대로 살려 디자인했다. 스타벅스코리아 제공

29일 찾은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경동시장. 비릿한 생선 냄새, 텁텁한 한약재 내음이 흐르는 골목을 헤매다 보니, 녹색 바탕에 흰색 세이렌이 그려진 스타벅스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간판을 따라 들어선 상가에서는 흙냄새가 은은하게 풍겼다. 복도를 따라 인삼을 파는 매장이 모여있는 영향이다. 두리번거리는 낯선 방문객이 익숙하다는 듯, 상인들은 복도 끝 계단을 가리켰다. 상인들이 가리킨 곳을 따라 3층까지 계단을 올랐다. 마스크 속으로 커피 향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폐극장이 ‘핫플’로

낡은 건물과는 다소 이질적인 매끈한 양개문을 열고 들어서면 어느새 극장 한가운데 서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곳은 폐극장인 경동극장을 리모델링해 만든 스타벅스 경동1960점이다.

경동극장은 1960년 지어졌다. 멀티플렉스 시대가 열리면서 1990년대 들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폐관 이후 창고나 촬영용 세트장 등으로 간간이 쓰이긴 했지만, 방치되다시피 한 곳이었다. 천덕꾸러기이던 이곳은 이달 초 스타벅스 경동1960점으로 재탄생하며 ‘핫플레이스’로 부활했다.

스타벅스는 매장 기획 단계부터 공간 DNA를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극장의 계단식 구조를 그대로 살린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스타벅스 경동1960점 내부. 스크린이 있던 자리가 음료를 만드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매장 내 소파 좌석들은 내리막 계단을 따라 층층이 놓여 있다. 가장 아래쪽, 한때 스크린이 있던 자리에는 음료 제조 바가 들어섰다. 소파 좌석은 바 방향을 바라보도록 배치돼 무대를 바라보는 객석을 연상케 한다. 나무와 목재로 만든 레트로한 소파, 소파 사이사이 놓인 유리 갓 스탠드 등도 극장 분위기를 더한다.

거친 질감의 잿빛 벽도 옛 모습 그대로 남겨뒀다. 천장을 올려다보면 목조 트러스 구조가 노출돼 있다. 이 또한 경동극장 시절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계단 맨 위에 있는 영사실은 직원용 회의실로 쓰인다.

스타벅스 경동1960점 출입구.

드라마틱한 공간 효과를 위해 조명에도 신경을 썼다. 국내 유명 조명설계팀과 협업해 음료 바 위쪽에는 연극 세트장이 연상되는 조명기구를 설치했다. 좌석 사이에는 레트로한 조명기구를 들여놨다. 천장 구조를 부각하기 위한 조명도 마련했다.

빔프로젝터를 활용해 음료 주문번호, 고객의 닉네임을 스크린에 띄우는 것도 극장 콘셉트에 충실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일반 모니터를 설치할 경우 매장 콘셉트에 맞지 않는다는 고민이 있었다”며 “극장이라는 콘셉트에서 필름이나 영사기 아이디어가 나왔고, 빔프로젝터로 영화 엔딩크레딧처럼 주문번호나 고객의 닉네임을 띄우자는 의견이 구체화됐다”고 설명했다.

옛 극장의 구조와 콘셉트를 그대로 살린 스타벅스 매장은 세계에서 스타벅스 경동1960점이 유일하다. 전례 없는 매장을 기획하게 된 데는 ‘커피가 아닌 문화를 판다’는 스타벅스의 철학이 녹아 있다. 편안하게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아늑한 공간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지역 사회의 맥락을 반영한 공간을 추구하자는 취지다.

  “지역 특색을 살린다”

스타벅스는 개인사업자가 운영하는 가맹점이 없다. 건물주 등이 공식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는 ‘신규 입점 제의’ 상담을 통해서만 직영 매장 유치를 제안할 수 있다.

입점 상담을 신청하면 스토어개발팀이 이를 검토해 유치 여부를 결정한다. 스타벅스 경동1960점에 대한 기획도 경동시장의 요청으로 시작됐다.

스타벅스는 ‘승인’이 아니라 ‘협의’를 통해 매장을 기획한다고 설명한다. 규격화한 글로벌 스탠더드는 최소한으로 적용하고, 매장이 들어서는 지역의 여건을 우선 고려해 개성을 살리는 데 주안점을 둔다는 얘기다.

한옥의 미(美)를 살린 스타벅스 대구종로고택점.

지역사회의 맥락을 담는다는 스타벅스의 공간 철학이 반영된 특별한 매장은 전국 곳곳에 있다. 100년 된 한옥에 들어선 대구종로고택점은 오랫동안 대구 골목을 지켜온 고택의 구조를 최대한 보존한 매장이다. 지난 10월 오픈 당시 큰 관심을 모았다.

춘천 전경을 품은 스타벅스 춘천구봉산R점.

이 매장은 한옥의 대들보와 기둥, 마루 등을 최대한 남겼다. 대구가 우리나라 고전 음악감상실의 발상지라는 점에 착안해 명품 오디오 브랜드 뱅&올룹슨과 협업해 음악 감상을 위한 공간도 마련했다. 국내 최초로 골프장에 입점한 여주자유CC점은 골프장 그늘집 공간을 리모델링해 만들었다.

한강이 보이는 스타벅스 웨이브아트센터점.

지역의 특색있는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스타벅스 매장들은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입소문을 타고 있다. 강원 춘천의 경치를 내려다볼 수 있는 춘천구봉산R점이 그렇다. 언덕에 자리 잡은 이 매장의 전면은 유리창으로 돼 있어 춘천의 아름다운 산세와 시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서울 한강 선상 카페로 기획된 웨이브아트센터점과 망원한강공원점은 한강뷰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뷰포인트로 유명하다.

양지윤 기자 y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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