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푸틴 러시아인들 "우크라전에 실낱같은 희망마저 잃었다"
(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이 장기화하고 푸틴 정권의 탄압이 강화되면서 러시아 반체제 인사들이 깊은 좌절감에 빠지고 있다고 미국 CNN 방송이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영국 런던에 망명 중인 러시아 탐사보도 기자 안드레이 솔다토프는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명령한 2월 24일 자신이 알던 러시아는 갑자기 종말을 맞았다며 이 전쟁으로 반체제 인사들이 마지막으로 부여잡고 있던 희망마저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독립 언론과 시민사회, 인권단체 등을 언급하며 "푸틴 치하에서 산다는 것은 끔찍했고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어떤 일이 있어도 버텨줄 거라고 여긴 기존 제도는 있었는데 그 모든 게 갑자기 무너져버렸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내에서 거의 증발해버린 독립언론이나 시민사회, 인권단체 등을 겨냥한 말이다.
신변 안전을 우려해 암호화 메시지를 통해 모스크바에서 익명으로 인터뷰에 응한 올가(가명·여) 씨는 2월 24일을 돌아올 수 없는 시점으로 묘사하며 "삶이 깨어날 수 없는 악몽으로 변해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침략자이고 우리를 대신해서, 나를 대신해서 우크라이나에서 끔찍한 학살이 벌어지고 있다"며 "수치심과 절망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CNN은 러시아 국영 언론이 모든 러시아인이 전쟁과 푸틴을 지지하는 것처럼 전하고 진보적이고 교육을 많이 받은 많은 러시아인은 지난 9개월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저지른 폭력에 몸서리쳤다고 전했다.
하지만 푸틴 정권이 전쟁에 대한 반대를 강력히 탄압하면서 반체제 인사들이 선택할 방안은 더욱 제한되고 있다.
인권 감시단체 OVD-인포에 따르면 전쟁에 항의하다 1만9천400명이 구금됐고 전쟁에 대한 거짓 정보 유포를 처벌하는 법으로 매주 수십 명이 기소되고 있다.
모스크바의 한 법원은 이달 초 우크라이나 부차에서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발언을 이유로 정권에 비판적인 비평가 일리야 야신에게 징역 8년 형을 선고했다.
언론 탄압으로 그나마 소수 남아있던 러시아 내 자유 언론은 전쟁 발발 후 완전히 사라졌고 서방 언론과 소셜미디어도 차단됐다.
이에 따라 정부의 탄압을 피해 가상사설망(VPN)으로 인터넷을 하려는 사람이 늘면서 올해 러시아에서 VPN 앱을 내려받은 수가 8천만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탄압과 그로 인한 좌절은 지식인들을 대거 해외로 내몰고 있다.
러시아 정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0월까지 50만 명 이상이 러시아를 떠났다. 이는 지난해 1년간보다 배 이상 많은 수치이며 비공식 출국이 많아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러시아를 떠난 것으로 추정된다.
정치적 이유로 러시아를 떠난 사람이 얼마인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올 상반기 5만 명 이상이 다른 나라에 망명을 신청했고 이는 한해 망명 신청으로는 20여 년 만에 최고 수치다.
러시아를 탈출하는 사람들을 돕는 비영리단체 'OK러시안'은 러시아를 떠나는 사람들은 러시아 일반대중보다 평균적으로 젊고 교육 수준이 높다고 밝혔다.
솔다토프 기자는 "언론인, 대학·학교 종사자, 예술인 등 내가 아는 모스크바의 진보적 지식인들을 예로 들면 70% 정도가 러시아를 떠난 것 같다"고 말했다.
모스크바에 사는 NGO 직원 마리아는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결정한 뒤 친구들이 모두 모스크바를 떠났다며 "전쟁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의 삶은 파괴됐다. 누군가 신고할 수 있기 때문에 불평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역사 전공자로서 반정부 시위에 자주 참여했다는 그는 "전쟁이 터지고 탄압이 강화된 후 시위 참가를 중단했다"면서 "야당 지도자들이 모두 감옥에 있거나 살해당해 푸틴 정권이 이른 시일 내 전복될 가능성은 안 보인다"며 좌절감을 표했다.
미국 싱크탱크 독일마샬펀드의 러시아 전문가 크리스틴 베르지나도 "지도자들이 잘못하면 국민이 즉시 거리로 몰려나와 항의 시위를 하고 정권 교체를 요구할 것이라는 일부 서방의 기대는 러시아 현실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scite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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