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피격’ 박지원·서욱 기소…“보안유지 미명하에 진상 은폐”[종합]

검찰 “서훈 전 안보실장 지시 동조해 삭제 지시”
“국정원 50건·국방부 5600건 첩보 삭제” 판단
서 전 실장 기소 안해…수사의뢰 부분 등 계속 수사
“故이대준 씨 자진월북 아닌 실족 가능성에 무게”

박지원 전 국정원장(왼쪽)과 서욱 전 국방부장관. [연합]

[헤럴드경제=안대용 기자]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이 사건 발생 당시 관련 첩보 삭제 혐의와 관련해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과 서욱 전 국방부장관을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검찰이 ‘최고 결정권자’로 규정했던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을 추가 기소하지 않고 ‘계속 수사’ 방침을 밝혀 수사는 결국 해를 넘기게 됐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 이희동)는 29일 국가정보원법 위반, 공용전자기록등손상 혐의로 박 전 원장과 노모 전 국정원장 비서실장을 각각 불구속 기소했다. 서욱 전 국방부장관도 직권남용, 공용전자기록등손상,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혐의로 함께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 "박지원·서욱, 서훈 보안유지 지시에 동조해 첩보 삭제 지시"

검찰에 따르면 박 전 원장 등은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 씨가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이튿날인 2020년 9월 23일 국가정보원 직원들로 하여금 이씨의 피격, 소각 등과 관련된 여러 첩보 및 보고서를 삭제하게 해 의무없는 일을 하도록 한 혐의를 받는다.

서 전 장관은 2020년 9월 23일 관련자들로 하여금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의 보안유지 지시를 이행하게 하고, 이씨의 피격 및 소각 등과 관련된 여러 첩보 등을 삭제하게 해 의무없는 일을 하도록 한 혐의를 받는다. 또 그 다음날 이씨가 자진월북한 것이라는 취지로 관련자들로 하여금 허위 보고서를 작성하게 하거나 허위 발표자료 등을 작성해 배부한 혐의도 적용됐다.

검찰은 박 전 원장과 서 전 장관이 서 전 실장의 보안유지 지시에 동조해 관련 첩보를 삭제하도록 지시했다고 봤다. 검찰은 이씨가 피살된 이후 국가안보실을 중심으로 조직적인 사건 은폐와 왜곡이 있었다고 의심하는데, 특히 2020년 9월 23일 오전 1시 열렸던 관계장관회의에 주목하고 수사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국민적 비난이 예상될 수밖에 없고 남북관계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 예상됐기 때문에 서 전 실장 등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보안유지라는 미명 하에 피격, 소각 등에 대한 진상을 은폐할 필요가 있었다”며 “해수부 공무원이 자진월북 하다가 피격, 소각 사망한 것으로 몰아간 것이라는 게 수사팀 시각”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시 ‘한반도 종전선언을 지지해달라’는 취지의 유엔총회 연설을 앞두고 있던 점도 서 전 실장 등이 은폐에 나선 동기 중 하나로 봤다.

앞서 감사원도 2020년 9월 23일 새벽 국정원에서 총 46건, 국방부와 예하부대 등에서 총 60건의 첩보가 무단 삭제됐다는 감사 결과를 지난 10월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은 수사 결과 국정원에서 약 50여건, 국방부에서 약 5600여건의 첩보 내지 보고서가 삭제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국방부의 경우 감사원 결과와 차이가 나는 이유는 중복된 내용 등이 포함됐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러한 첩보 삭제를 이례적인 일이라고 판단했다.

검찰은 다만 박 전 원장과 서 전 장관 등을 기소하면서 이들에게 지시한 것으로 지목한 서 전 실장의 첩보 삭제 혐의에 대해선 기소하지 않았다. 이 부분을 포함해 감사원 수사 의뢰 부분 등에 대해서 계속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 9일 서 전 실장에 대해 이씨에 대한 피격 사실 은폐와 허위 자료 배포 관련 혐의 부분만 직권남용, 허위공문서작성·행사 혐의를 적용해 구속기소 하고 첩보 삭제 관련 혐의 부분은 적용하지 않았다.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연합]

"자진월북으로 보긴 어려워…실족 가능성에 무게"

검찰은 수사 결과 이씨가 자진월북한 것으로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검찰 관계자는 “실족과 극단적 선택 중 어느 하나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본다”며 “다만 해수부 공무원의 긴밀한 가족 관계나 차가운 바다, 야간 조류 등에도 불구하고 북한 해역 발견 당시 살아 있던 정황 등 여러 증거를 종합할 때 실족 가능성에 더 방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이씨는 2020년 9월 21일 소연평도 해상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에서 근무하다 실종됐는데, 검찰은 이씨가 무궁화 10호에서 이탈될 당시 구명조끼 등을 입지 않았다고 판단해 자진월북 가능성을 배제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해수부 공무원이 발견될 당시 착용하고 있던 구명조끼는 무궁화 10호에 없는 구명조끼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여러 증거 종합하면 개인적으로 구명조끼를 휴대하지도 않았다는 게 확인됐다”고 말했다. 또 자진월북 가능성 배제 판단을 두고선 검찰 수사팀 결론 뿐만 아니라 당시 동일한 자료 정보 근거를 가지고 ‘월북 가능성이 불명확하다’라고 판단한 국가기관이 있었다고도 설명했다.

다만 “수사팀이 수사를 통해 규명해야 할 실체는 이씨가 실족했는지,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 여부가 아니라 당시 국가기관이 자진 월북했다는 취지로 발표한 것을 비롯해 국가안보실 등 국가기관 조치가 헌법과 법률에 부합하는지, 시스템에 위반하는 것인지에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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