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공무원, 밤엔 야학교사…제천 부녀 공무원의 훈훈한 이중생활
충북 제천시 부녀 공무원이 낮에는 시청 공무원, 밤에는 야학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아름다운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김창순 제천시 자연치유특구과장(57)과 그의 딸인 김서진 제천시 교통과 주무관(28)이 주인공이다. 제천시 소속 공무원인 두 부녀는 일주일에 한번씩 퇴근 후 시청에서 3km 정도 떨어진 정진야간학교으로 향한다.
정진야학에서 수학 과목을 맡고 있다는 김 과장은 29일 전화인터뷰에서 “학생들 대부분이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된 만학도들이어서 수학을 가르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며 “그동안 수업을 쉬거나 미루고 싶은 적도 많았지만 학생들을 실망하게 하지 않기 위해 24년째 가르침을 이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남현동 주민자치센터 2층에 있는 정진야학은 공무원과 직장인들에 의해 1986년 7월 만들어졌다. 정진야학을 찾는 학생들은 생계를 위해 학업을 포기한 경우가 대부분으로, 이들은 49㎡ 크기의 교실 2곳에서 중·고등학교 검정고시 시험을 준비 중이다. 지금까지 1980여 명의 만학도들이 정진야학을 거쳐 갔다. 이 중 860명이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김 과장은 정진야학에서 매주 목요일 오후 6시30분부터 9시50분까지 중등 과정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친다. “선배 공무원의 권유로 야학교사가 됐다”는 그는 1992년 정진야학과 첫 인연을 맺었다. 94년 부터 야학을 쉬었다가 2002년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2014년부터는 정진야학의 교장으로 부임해 학교 살림도 챙긴다.
김 과장의 딸인 김서진 주무관도 올해 5월부터 정진야학의 교사가 됐다. 그는 올해 제천시청에 부임했다. 김 주무관은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밤에는 교육봉사를 펼치는 아버지가 멋있었고 존경스러워 하루빨리 공무원이 돼 아버지처럼 교육봉사를 하는 것을 꿈꿔왔다”라고 말했다.
대학에서 영문과를 졸업한 김 주무관의 담당 과목은 아이러니하게도 중등 국어다. 그는 “학창 시절 영어보다 국어를 더 좋아했고, 국어성적이 더 뛰어났다”며 웃었다.
그는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만학도들을 위해 기출문제 위주로 수업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가령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 수업을 하는 날이면 해당 작품과 관련된 기출문제를 학생들과 함께 풀어보는 방식이다. 그는 매주 월요일 3~4시간씩 짬을 내 수업을 준비한다고 했다.
김 주무관은 “이론도 중요하지만 시험 대비를 위해선 기출문제로 실전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학생들의 반응도 좋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이 30~70대로 나이가 많다 보니 저를 귀여워해 주신다”고 덧붙였다.
김 과장은 “딸의 수업을 먼발치에서 지켜본 적이 있다”며 “경험이 부족하지만 씩씩하고 수업도 잘 진행해 뿌듯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를 이어 봉사할 수 있어 행복하다”라며 “배움에 뜻이 있는 많은 시민들이 정진야학을 통해 학업의 뜻을 이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삭 기자 isak84@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명태균 변호인 “이준석이 악의 축…윤 대통령 취임식 전날 통화는 이 의원이 촉발”
- “트럼프, 국가안보보좌관에 마이크 왈츠 의원 발탁”…군인 출신 대중·대북 강경론자
- 최동석 ‘성폭행 혐의’ 불입건 종결···박지윤 “필요할 경우 직접 신고”
- ‘채식주의자’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 “한강 노벨상, 문학계가 공정한 시대로 나아간다는 희망
- [속보] “트럼프, 국무장관에 ‘대중국 매파’ 마르코 루비오 의원 발탁 예정”
- “이과라서 죄송하기 전에 남자라서 죄송”… 유독 눈에 밟히는 연구실의 ‘성별 불평등’ [플
- 이재명 대표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재판부 생중계 안한다
- [속보]국내 첫 백일해 사망자 발생…생후 2개월 미만 영아
- [영상]“유성 아니다”…스타링크 위성 추정 물체 추락에 ‘웅성웅성’
- 보이스피싱 범죄수익 세탁한 상품권업체 대표…잡고보니 전직 경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