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이대준 자진월북 아닌 실족…서훈 지시로 조직적 월북몰이"(종합)

軍삭제 첩보 중복 포함 5600건…삭제 동기 '文 유엔연설' 지목
서훈 추가기소 등 수사 마무리 수순…"文 서면조사 아직" 고심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왼쪽부터)과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및 흉악범죄자 추방 사건 관련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10.27/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서울=뉴스1) 심언기 임세원 기자 = '서해 공무원 피살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고(故) 이대준씨의 자진월북 가능성을 배제하고 실족 가능성에 무게를 두면서 막바지 수사에 집중하고 있다. 남북관계 악화를 우려한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지시 하에 군과 국정원 등의 첩보를 삭제한 '조직적 월북몰이'로 잠정 결론을 냈다.

검찰은 군에서 생성했다 위법하게 삭제된 관련 첩보·자료가 5600여건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중복된 첩보·자료가 상당하다는 점을 감안해도 감사원이 발표한 60여건을 크게 웃도는 규모여서 파장이 예상된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과 서욱 전 국방부장관을 첩보 삭제 혐의로 29일 재판에 넘긴 검찰은 보강수사 후 최고 윗선으로 지목된 서 전 실장 추가기소를 준비 중이다. 다만 문재인 전 대통령 서면조사 등 직접조사에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 "軍첩보 5600건 삭제 이례적…은폐 아닌 월북몰이"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검사 이희동)는 29일 국정원 박지원 전 원장과 노은채 전 비서실장을 국가정보원법위반 및 공용전자기록등 손상 혐의로, 서욱 전 국방장관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공용전자기록등손상·허위공문서작성 및 동행사죄로 각각 불구속 기소했다.

박 전 원장과 노 전 실장은 이씨가 북한군에 피살된 다음 날인 2020년 9월23일 오전 1시 열린 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한 이후 국정원 직원들에게 이씨의 피격·소각 등과 관련된 첩보·보고서를 삭제하게 함으로써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혐의를 받는다.

서 전 장관도 같은 날 직원들에게 서훈 전 실장의 '보안 유지' 지시를 이행하게 하고 이씨의 피격·소각 관련 첩보 등을 삭제하게 함으로써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혐의를 받는다.

서 전 장관은 다음날인 9월24일 이씨가 자진월북한 것이라는 취지로 관련자들에게 허위 보고서를 작성하게 하거나 허위 발표자료 등을 작성해 배부하도록 한 혐의도 있다.

감사원 감사와 국정원 자체조사에서 파악된 첩보 삭제는 밈스(MIMS·군사정보체계)에 탑재된 군 첩보 60건, 국정원 47건이었다. 하지만 강제수사권을 가진 검찰이 파악한 군 삭제 첩보는 5600여건에 달하고 국정원 첩보도 50여건에 달한다. 중복된 첩보·자료가 상당수임을 감안해도 삭제 규모가 광범위하다는 것이 검찰 판단이다.

검찰은 대대적 첩보 삭제가 서 전 실장 지시 하에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제75차 유엔총회 종전선언 연설이 이씨 피살 다음날 예정돼 있어 화해 무드 속 남북관계 악화를 우려한 서 전 실장이 사건 실체의 은폐·왜곡을 총지휘했다는 결론에 근접했다.

검찰 관계자는 군과 국정원의 첩보·자료 삭제 정황과 관련해 "수사팀이 파악하기로는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라면서 "수사팀은 (피살 은폐 보다) 월북몰이에 더 방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서해 피격 공무원의 친형 이래진 씨(왼쪽)와 김기윤 변호사가 서울중앙지검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 고소장 제출에 앞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2.12.14/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 故이대준 실족에 무게두며 서훈 추가기소 예고…文 최종처분 '장고'

검찰은 전 정부의 '이대준씨 자진월북' 결론도 뒤집었다. 이씨가 북한군에 발견될 당시 입고 있던 구명조끼는 탑승했던 배(무궁화 10호)에 실려있지 않았던 조끼이며 개인 방수복이나 오리발 등 월북에 필요한 장비를 챙기지 않은 것이 자진월북 배제 판단의 근거가 됐다.

아울러 이씨가 △평소 북한에 대한 동경이나 관심을 보인 정황이 전무하고 △북한군에 적극적 생존 의지를 보였으며 △해경의 표류 예측 분석 의뢰 결과 조사기관 4곳 중 2곳이 북한해역 표류 가능성을 내놓았고 △가족 유대관계가 끈끈했으며 △공무원으로 신분이 안정적인 점 등 제반 상황도 자진월북이 아니라는 결론에 힘을 실었다.

국정원 등이 당시 보고한 첩보 속에서 이씨의 자진월북이 아니라는 보고가 다수 포함된 점도 자진월북 가능성 배제로 기울게 된 요인으로 꼽힌다.

다만 이씨의 표류가 실족, 납치, 극단선택 시도 등 나머지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직 명쾌하게 결론짓지는 않았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여러 가능성을 종합해 볼 때 실족 가능성에 더 방점을 두고 있다"며 "수사팀이 규명해야 할 실체는 북측 해역까지 어떤 경위로 갔느냐가 아니라 당시 국가기관의 조치가 헌법과 법률이 정한 시스템에 부합하는지에 있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이날 박 전 원장 등을 기소하며 최고 윗선으로 지목한 서 전 실장은 추가 기소하지 않았다. 조만간 서 전 실장 등 나머지 관계자들을 재판에 넘기며 수사를 매듭지을 것으로 전망된다.

아직까지 직접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문 전 대통령에 대해선 최종 처분결과를 두고 고심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문 전 대통령)서면조사는 하지 않았다"며 "그런 것(조사 의향 문의 등)도 없었고 그런 상황도 아니다"고 말을 아꼈다.

eonki@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