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안전운임제도 되살린다…野, 법사위 '패싱' 꼼수 쓸까
화물차 기사(차주)에게 지급하는 일종의 최저임금인 안전운임제가 올해를 끝으로 사실상 일몰이 확정된 가운데 야당은 내년에라도 본회의에 바로 부의하는 방식으로 안전운임제 3년 연장안을 처리하겠다고 시사했다. 여당이 법제사법위원회를 틀어쥐고 있으면서도 법안 합의에 나서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여야 합의라는 의회주의 관행을 의석 수를 앞세워 무시한다는 역풍 우려도 나온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야당 간사인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8일 의원총회에서 "올해 일몰은 되지만 법사위에 계류 중인 안전운임제가 다시 국토위로 넘어오게 되면 동의하는 의원들과 함께 힘 합쳐서 본회의에 상정시키겠다"고 했다. 이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남는 건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할지 말지) 선택하는 것 뿐"이라고 했다.
앞서 국토위는 지난 9일 야당 단독으로 전체회의를 열고 안전운임제 3년 연장안(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현재 이 법안은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국회법 86조에 따르면 법사위 계류 60일이 지난 법안은 해당 상임위로 다시 돌아온 뒤 본회의에 직회부할 수 있다. 단, 해당 상임위 재적인원 5분의3이 동의해야 가능하다.
이 같은 방법으로 실제 야당 의원들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부의 쌀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직회부하는 안을 단독 의결했다. 이 법안 역시 지난 10월 법사위에 회부된 이후 심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농해수위는 총 19명으로 이 중 민주당이 11명이지만 무소속 윤미향 의원까지 더하면 12명으로 정족수가 충족된다.
국토위도 민주당 17명, 국민의힘 12명, 정의당 1명으로, 심상정 정의당 의원까지 동참하면 야당 단독으로 직회부 의결이 가능하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통화에서 "정부여당의 주장은 말로만 구조개혁일 뿐 목마른 화물 노동자 물바가지를 걷어차는 것"이라며 "당연히 (국토위에서) 가결시켜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의결과 관련해 최인호 의원과도 논의 중"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당이 법사위를 우회하는 방법을 추진하는 이유는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이 법사위원장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법사위 내 단독의결을 위한 정족수인 5분의3 역시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 때문에 불가능하다. 조 의원은 이재명 대표 사퇴를 주장하는 등 민주당에 그리 우호적인 입장이 아니다.
민주당은 여당이 대통령실 지시만 기다리고 있을 뿐 법안 논의에 적극 응하고 있지 않아 이 방법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최 의원은 "여당 간사(김정재 의원)와 3년 연장안을 여야가 합의해 통과시키자고 했는데 다음 날 아침에 갑자기 '(대통령실이) 꿈쩍도 안하더라'고 했다"며 "모든 사안이 그렇지만 안전운임제도 처음부터 끝까지 대통령이 개입해 여야 합의를 휴짓조각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미 양곡관리법 개정안도 단독 추진한 데다 안전운임제까지 강행하는 것은 정치적 부담이 상당할 전망이다. 특히 안전운임제 3년 연장안의 경우 국토위에서 단독 직부의할 경우 이미 법적 효력이 소멸된 법안을 소급 적용해 부활시킨다는 조항까지 추가해야 한다. 단독 의결은 물론 법안 내용까지 야당이 마음대로 날치기 추진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은 통화에서 "여야 합의를 거쳐 의사일정을 잡고 정상적인 방식으로 논의해야 한다"며 "(야당이 단독 의결을 추진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뭉개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안전운임제에 대해서는 "일몰 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도 했다.
한편 국회법에 따라 본회의 부의 요구가 올라온 법안은 여야 원내대표 간 합의를 거쳐 부의해야 한다. 만약 한 달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이후 처음 열리는 본회의에서 무기명 투표로 본회의 부의 여부를 결정한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여야 합의를 강조하는 만큼 이 과정에서 극적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차현아 기자 chacha@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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