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매화도 백악 목련도, 겨울 깊으니 봄이 그립다
[서울&] [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한양도성 떠받친 4개의 산 올라보니
성곽은 역사 품고서 살아 꿈틀거리고
숲속 나무, 겨울 추위 고스란히 맞으며
“새봄 오면 꽃 피워야지” 꿈을 그린다
조선의 수도 한양도성의 동서남북에 자리 잡은 내사산인 낙산, 인왕산, 남산, 백악산(북악산)을 잇는 한양도성 성곽을 걸으며 그 숲을 보았다. 돌산에 새긴 영조의 마음과 그 돌산을 부순 역사가 남아 있는 낙산에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마애불이 남아 있다. 스무 살 소나무와 고양이를 만났던 인왕산은 해마다 봄이면 남서쪽 산비탈을 산수유꽃에 내주고 사람들을 모이게 한다. 초승달 뜨던 남산, 소나무 고목 두 그루를 보고 산을 넘으면 새봄을 기다리는 지조 높은 매화나무가 있다. 백악산 소나무 보호 군락지를 지나 도착한 청운대에서 경복궁과 세종대로, 서울의 중심을 굽어보는 어린 목련나무를 보았다.
낙산–돌산에 새긴 마음, 돌산을 부순 역사
청계8가 청계천 능수버들은 청계천이 일반에 공개될 때 충남 천안시에서 기증받아 심은 나무다. 낭창거리는 능수버들 가지가 닿을 것 같은 청계천 물가에 청계천에 사람들이 모여 살던 시절 빨래터를 재현한 조형물이 있다. 이 풍경을 보고 출발한 발걸음은 청계천 영도교에 닿았다.
영도교는 조선시대 단종과 그의 비 정순왕후 송씨의 이별 장소라고 알려진 곳이다. 삼촌인 수양대군에게 왕의 자리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 가던 단종과 그를 떠나보내야만 했던 정순왕후 송씨의 이야기는 영도교에서 지금의 숭인근린공원으로 이어진다. 정순왕후 송씨가 영월 청령포에 유배된 단종을 생각하며 기도했다던 곳이 지금의 숭인근린공원이다. 훗날 영조가 단종과 정순왕후 송씨의 생이별 이야기를 알고 가슴 아파하며 숭인근린공원 절벽에 동망봉(동쪽의 영월 청령포에 있는 단종을 그리던 정순왕후 송씨의 마음을 헤아린 이름이라 한다)이라는 글씨를 새기게 했는데, 일제강점기에 그곳에 채석장이 들어서면서 영조의 친필로 새긴 ‘동망봉’ 글씨는 영영 사라지게 됐다고 한다.
채석장은 창신동에도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창신동 채석장에서 캔 돌로 조선총독부 건물 등 현대식 건물들을 지었다고 한다. 폐쇄된 채석장 터에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다. 창신동 채석장 터에 가면 바위절벽 아래 마을과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들어선 집을 볼 수 있다.
낙산에 새겨진 누군가의 마음은 창신동 골목에도 남아 있다. 봉제골목으로 유명한 창신동 골목 한쪽에 있는 작은 절 안양암을 암반바위와 그 위에 놓인 거대한 바위가 품었다. 이른바 두꺼비 바위에 새긴 마애관음보살상은 안양암의 상징이다. 1909년에 한석공이 새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바위에 새긴 대한제국의 마지막 불상일 것이다. 일제에 나라를 강제로 빼앗겼던 격동기에 염원을 담아 거대한 바위에 마애불을 새기던 석공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인왕산–한양도성과 서울이 함께 생동하는 풍경 그리고 새봄 산수유를 기다리는 스무 살 소나무
인왕산을 들고 나는 곳은 여러 곳이다. 그 중 사직공원, 단군성전, 사직근린공원 힐링 숲의 일부와 한양도성탐방로를 지나 한양 도성 외부 순성길로 걸었다. 성을 쌓은 돌의 색과 모양과 크기가 달라 시대별 축성의 역사가 한눈에 보인다. 지형에 따라 구불거리며 이어지는 성곽은 꿈틀거리는 유기체 같았다. 수백 년 역사를 고스란히 품은 성곽의 위용이기도 했다. 소나무숲 계단을 올라 성곽 안으로 들어가 뒤를 돌아봤다. 인왕산 푸른 숲을 구불거리며 내달리는 한양도성 성곽이 도심의 빌딩 숲으로 자취를 감추더니 멀리 남산의 산비탈에서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성곽 밖에는 조선 개국 당시 태조 이성계가 개국의 뜻을 기리고 만세에 조선이 이어지기를 기원하던 인왕사와 수도승을 닮은 거대한 선바위가 있다.
범바위에 오르면 내사산을 잇는 한양도성 성곽의 윤곽, 그 안에 담겼던 한양도성이 한눈에 들어온다. 인왕산 숲의 맥이 어떻게 남산으로 이어지는지, 남산의 지맥이 낙산에 닿는 형국과 낙산과 백악산(북악산) 사이, 그리고 그 품에 안긴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종묘까지 조선의 굵직한 상징물들이 현대의 빌딩 숲과 함께 생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바위에 놓인 계단을 지나 바위 사이에 난 좁은 길에 올라설 무렵 바위 한쪽 공중으로 자란 어린 소나무를 보았다. 스무 살 넘었다는 설명이 붙은 소나무였다. 한파와 폭설에 더 푸르러지는 소나무를 보며 새봄에 피어날 산수유꽃무리를 생각했다. 해마다 봄이면 인왕산 남서쪽 산비탈은 산수유꽃무리가 꽃사태를 이룬다.
남산–초승달 지던 숲의 소나무와 매화나무
남산 위에 초승달이 떴다. 초저녁 낮달이었다. 해와 달이 한 하늘에 담겼다. 노을의 바다 위에 초승달이 조각배처럼 떠다닌다. 내사산에 안긴 서울 도심에서 빌딩을 걷어내고 그 자리에 한양도성을 앉혔다. 그때도 노을은 이렇게 빛났을 것이다. 노을이 지는 공간을 어둠이 채운다. 초승달은 자꾸만 기울어 도심의 어느 빌딩 꼭대기에 떨어진다.
남산을 넘기 위해 다음날 찾은 곳은 국립극장 옆 소나무 숲이었다. 그 소나무 숲에 있는 100년 넘은 소나무와 120년 넘은 소나무 두 그루가 보호수로 지정됐다. 애국가 가사처럼 ‘철갑을 두른’ 소나무, 수백 년 된 소나무는 아니지만, 지금의 남산 소나무숲 역사가 길이 보전되기를 바라며 가파른 성곽 옆 계단길을 오른다. 남산 꼭대기 너른 마당까지 성곽은 이어진다. 남산 꼭대기 여러 전망대를 돌며 사방으로 펼쳐진 서울의 이곳저곳을 확인한다. 영조가 새기게 한 ‘동망봉’ 글씨가 있던 낙산의 채석장도 보이고, 백악산과 인왕산 사이 자하문 고개 언저리도 보인다. 조선시대 여러 궁궐 자리도 확인하고 숭례문 쪽으로 내려가는 길, 일본 한 절의 스님이 임진왜란 때 일본이 빼앗아간 매화나무의 후계목을 사죄의 뜻으로 반환했다는 와룡매가 안중근 의사 기념관 앞마당에서 꽃피는 새봄을 기다리고 있다.
백악산-소나무 보호구역 지나 만난 어린 목련나무 한 그루
말바위전망대로 가는 숲길을 걷는다. 한양도성 성곽을 넘나드는 데크 계단길은 전망대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산 동쪽 풍경을 보고 말바위전망대에서 산 서쪽, 서울의 도심 풍경을 본다. 인왕산과 백악산 산줄기가 서울 도심과 어떻게 어울리는지 한눈에 보았다.
말바위안내소를 지나 한양도성의 북대문인 숙정문에 도착했다. 숙정문부터 곡장전까지 소나무 보호 군락지가 이어진다. 숙정문 옆 아름드리 소나무는 숙정문과 어울려 고풍의 멋을 자아낸다. 한파를 뚫고 그곳에 도착한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들도 같은 감정을 느꼈나보다. 너도나도 그 풍경을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는다.
성곽을 따라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내내 소나무 보호 군락지가 이어진다. 성곽 밖으로 가지를 뻗으며 자라는 소나무도 있다. 소나무 가지 아래 서울이 놓였다.
곡장은 백악산 전망 좋은 곳 중 으뜸이다. 백악산의 한양도성 성곽이 인왕산으로 이어지는 풍경을 본다. 한양의 주산이 왜 백악산인지 확인할 수 있다.
곡장을 지난 성곽은 청운대로 이어진다. 백악산에서 두 번째로 높은 청운대 꼭대기 마당에는 한 그루의 어린 목련나무가 새봄을 기다리며 경복궁과 세종대로, 서울의 중심을 굽어보고 있다. 지난봄 꽃 피운 그 목련나무를 뒤로하고 자하문으로 내려섰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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