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칼럼] 국민연금, 아직도 文정부 저승사자인가
지난 28일 구현모 KT 대표가 이사회에서 차기 최고경영자(CEO) 최종 후보로 낙점됐다.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의 승인을 받으면 연임이 확정된다. KT 이사회 측은 “구 대표는 재임 기간 서비스 매출 16조원 이상을 달성했고 주가를 90% 상승시키는 등 주주가치 제고에 탁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며 “성장형 포트폴리오, 변화와 혁신 리더십 등으로 지속 성장을 이끌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구 대표의 후보 확정을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국민연금은 현재 KT의 지분 10.34%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국민연금은 입장문을 발표해 “KT 대표이사 최종 후보 결정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경선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못했다”며 “앞으로 의결권행사 등 수탁자 책임활동 이행과정에서 이러한 사항을 충분히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반대표를 행사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구 대표는 지난 13일 이사회로부터 연임 적격 판단을 받았지만, 자진해 다른 후보들과 함께 경선을 치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후 이사회는 외부 전문기관 추천과 내부 부사장급 이상 등 총 26명의 후보와 함께 구 대표를 심사했다. 결국 구 대표는 27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최종 후보로 낙점됐다.
이러한 내부 규약과 의사 절차를 거쳤음에도 국민연금은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발표하는 등 노골적으로 KT 인사에 개입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이 민간 기업의 경영 활동에 과도하게 개입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기업의 경영과 주주들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민연금은 지난 3월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경계현 DS부문장·박학규 DX부문 경영지원실장의 사내이사 선임, 김한조 전 하나금융공익재단 이사장·김종훈 키스위모바일 회장의 감사위원 재선임 안건에 반대표를 던졌다. 하지만 주총에서 이들의 이사 선임 안건은 압도적인 찬성률로 통과됐다. 의결권 행사 기준이 모호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날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진 김종훈 회장의 경우, 지난해 국민연금은 찬성표를 행사했다.
이처럼 국민연금은 기업의 주총과 안건에 주주로 참여하면서 반대 의결권 행사 비중을 2020년 이후로 높이고 있다. 국민연금이 안건에 반대표를 행사한 건수는 2019년 625건(19.07%), 2020년 535건(15.75%), 2021년 549건(16.25%), 2022년 7월 기준 787건(23.87%)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고도 부결된 안건은 2019년 21건, 2020년 19건, 2021년 10건 2022년 7월 기준 10건으로 총 60건밖에 되지 않아 반대표를 행사한 2496건의 2.4%밖에 안건이 부결되지 않았다. 국민연금의 반대 의결권 행사가 늘어났음에도 실제 부결된 건수와 심한 차이가 나는 것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방향이 주주의 가치 제고와 거리가 멀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의 핵심 역할은 ‘기금운용의 안정적 수익제고’에 있다. 즉 국민이 지불한 연금을 좋은 기업에 투자해 수익을 얻고 그 수익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지난 12일 3만7950원이던 KT 주가는 CEO 선임 과정이 지연되면서 보름 만에 3만3900원으로 10.7%나 하락했다. 국내 기업이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내년 사업 전략을 모색하고 있지만, KT의 경영 시계는 멈춰있는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국민연금을 활용한 기업의 의결권 행사가 늘면서 재계에서는 과도한 기업 옥죄기라며, 국민연금을 ‘정부의 저승사자’로 부르곤 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캐치프레이즈는 ‘민간 주도 성장’이다. 경제 성장을 이끌 주체는 정부가 아닌 기업으로 기업이 좋은 환경에서 경영을 펼칠 수 있도록 규제 철폐를 약속했다. 하지만 여전히 국민연금의 의식은 문 정부의 ‘저승사자’에 머물러 있다.
[박성우 통신인터넷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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