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없는 회사' 셀프 연임 안돼…국민연금 입김 세진다

김사무엘 기자 2022. 12. 29.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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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사의 CEO(최고 경영자) 선임에 관한 국민연금의 압박이 거세진다. KT, POSCO홀딩스, KT&G, 금융지주회사 등 이른바 '주인 없는 회사'로 불리는 소유 분산 기업이 타깃이다.

공정하고 투명하지 않은 CEO 선임을 '셀프 연임' '황제 연임'이라며 비판 강도를 높인다. 향후 CEO 선임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입김이 점차 강해질 것이란 관측이다.

지난 28일 국민연금공단은 입장문을 통해 "KT 이사회가 현직 CEO를 대표이사로 최종 확정한 것에 대해 기금이사(기금운용본부장)는 'CEO 후보 결정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경선의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입장"이라며 "앞으로 의결권행사 등 수탁자책임활동 이행과정에서 이러한 사항을 충분히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KT 이사회가 구현모 대표이사의 연임을 결정하자 이례적으로 즉각 입장문을 내고 반대 의견을 표명한 것이다. 김태현 국민연금 이사장, 서원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기금이사)의 최근 발언과 맥락을 같이 한다.

전날 서원주 기금이사는 임명된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KT, 포스코, 금융지주 등 소유분산기업들이 CEO 선임을 할 때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절차를 따라야 불공정 경쟁, 셀프 연임, 황제 연임 같은 우려들이 해소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정 기업을 콕 집어 언급하면서 '셀프 연임' '황제 연임' 같은 강도 높은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이들 기업의 CEO 선임 과정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인식에서 나온다.

국민연금이 표현한 소유분산기업은 확고한 지배주주가 없는 기업을 의미한다. 일명 '주인 없는 기업'이라고 불리지만 소유가 고르게 분산돼 있다는 측면에서 '국민 기업'으로도 인식된다. 특정 누군가의 소유가 아닌 '주주'가 주인인 회사임에도 별다른 이유 없이 특정인이 장기간 회장으로 집권한다면 문제라는 지적이다.

김 이사장도 지난 8일 기자간담회에서 "소유분산기업이 회장 등을 중심으로 지배구조를 고착화하고 후계자를 양성하지 않는다든지, 회장 선임 과정에서 현직자 우선 심사와 같은 내부인 차별과 외부인사 허용 문제를 두고 쟁점이 되고 있는 건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연금 이사장과 기금의 운용을 총 책임지는 기금이사가 최근 연이어 소유분산기업의 CEO 선임 과정에 대해 강도 높은 발언을 이어온 만큼 앞으로 이들 기업의 CEO 선임 과정도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특히 소유분산기업들은 국민연금이 최대주주 혹은 주요주주라는 점에서 국민연금과의 표대결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현재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이거나 주요주주인 소유분산기업은 △KT(10.74%, 이하 올해 3분기말 기준 국민연금 지분율) △POSCO홀딩스(8.5%) △KT&G(7.44%) △KB금융(7.97%) △신한지주(8.22%) △하나금융지주(8.4%) △우리금융지주(7.86%) 등이다.

우선 KT는 내년 3월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과 표대결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KT 이사회가 구 대표의 연임을 강행한다면 국민연금은 반대표를 던질 것으로 예상된다. KT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의결권 사전공시를 통해 구 대표 연임안에 반대한다면 주요 기관투자자 역시 이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박종욱 KT 각자대표의 경우 올해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국민연금이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하자 자진 사퇴했다. 국민연금은 '국회의원 쪼개기 후원'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 받은 박 대표에 대해 "기업가치의 훼손 내지 주주권익 침해 이력이 있다"며 반대했다.

우리금융지주도 마찬가지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내년 3월 임기가 끝난다. 연임을 위해선 주주총회를 통해 재신임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앞서 2020년3월 주주총회에서 "손 회장이 기업가치를 훼손하고 주주권익을 침해했다"며 연임에 반대한 전적이 있다. DLF(파생결합펀드) 불완전판매 사태로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최근 손 회장은 금융감독원의 문책 경고 징계를 취소해 달라는 소송에서 대법원 승소를 얻어냈다. 연임을 위한 걸림돌 하나는 해소했지만 국민연금이 이번에도 재차 반대할 경우 부담을 안게 된다.

소유분산기업에서 장기 집권 중인 CEO도 명확한 재임 사유가 없다면 국민연금이 반대에 나설 확률이 높다. 현재 주요 CEO의 재임 기간은 △최정우 포스코홀딩스 회장 4년5개월 △백복인 KT&G 대표 7년2개월 △윤종규 KB금융 회장 8년1개월 △조용병 신한지주 회장 5년9개월 등이다. 이 중 조용병 회장은 3연임을 앞두고 최근 용퇴를 선언했다.

자본시장에서 국민연금의 입김은 갈수록 강해지는 추세다. 2018년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 책임 원칙) 도입 이후 상장사 주총에서 국민연금은 적극적으로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

한국ESG기준원에 따르면 2018년 국민연금의 반대 의결권 행사 비율(경영진의 총 안건에서 국민연금이 반대표시를 한 안건 비율)은 16.61%로 전년(11.47%) 대비 대폭 늘었다. 2019년에도 반대 비율은 17.24%를 기록했다. 주로 이사선임, 이사의 보수 한도에 관한 안건이었다.

2020년과 2021년 국민연금의 반대 비율은 각각 10.33%, 9.19%로 하락했지만 이는 상장사들이 국민연금을 의식하고 미리 문제의 소지가 있는 안건을 최소화한 결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자본시장에서 국민연금의 영향력이 강해진 영향이다.

소유분산기업 역시 국민연금과의 충돌을 피하려면 CEO 선임의 투명성과 객관성을 보다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서 기금이사는 지난 27일 발언을 통해 "셀프 연임 우려가 없도록 (소유분산기업들의) 추천위원회가 보다 명망있고 중립적인 새로운 분들을 중심으로 구성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사무엘 기자 samue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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