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은 승리를 선언하겠지만 잃은 것이 더 많다”···해 넘기는 우크라이나 전쟁 전문가 진단

박은하 기자 2022. 12. 29.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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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남 “전쟁으로 결국 러시아 국력 약화될 것”
양승조 “나토 동진은 전쟁 결정적 요인 아니다”
정재원 “영토 강탈 상태로 종전하면 후과 심각”

지난 2월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은 2022년 세계 질서를 뒤흔들고 전 지구적 적대와 분열의 위기를 가속화했다. 하루속히 전쟁을 멈추자는 입장과 침략으로 인한 영토강탈을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 교차하며 전쟁을 둘러싼 윤리적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경향신문은 러시아 전문가인 박상남 한신대 교수, 양승조 숭실대 교수, 정재원 국민대 교수와 함께 해를 넘기게 된 우크라이나 전쟁의 배경과 향후 전망을 진단했다. 대담자들은 전쟁의 원인을 러시아의 군사적 팽창과 제국주의를 지향하는 ‘푸틴 체제’에서 찾았으며 전쟁이 러시아 사회를 전체주의로 몰아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1990년대 미국의 외교 정책이 푸틴의 권력기반을 강화했다는 사실도 짚었다. 전쟁을 강대국 간의 대리전이 아닌 삶의 터전을 위협받는 이들의 시각으로 바라볼 것을 주문했다. 대담과 인터뷰는 전황에 맞춰 지난 23일까지 수차례 진행됐다.

양승조 숭실대 교수. 우철훈 선임기자

- 전쟁은 지금 어떤 상황인가.

양=러시아 측은 종전협상을 체결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커 보인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에서 요구하는 조건(크름반도를 포함해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완전 철수)에 가깝게 양보할 의사는 아직 크지 않아 보인다. 자국 내 강경파의 욕구를 충족하고 30만명 징집 과정에서 쌓인 국민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서라도 현재 확보한 점령지를 유지하는 것이 집권 세력에게 중요하다. 우크라이나군은 서방의 지원과 거듭된 승전으로 사기가 오른 현시점에서 러시아군에 대한 또 다른 공세를 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박=표면적인 강경한 입장과는 달리 양 진영은 내부적으로는 출구전략을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최근 푸틴이 군 수뇌부를 모아 전쟁의 방향성을 물어본 것도 전쟁을 끝낼 명분 축적용이 아닌가 한다. 만약 양쪽에 명분을 줄 수 있는 협상안이 도출된다면 2023년 상반기에 전쟁이 끝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정=러시아 지도자들은 이번 겨울과 봄에 막대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현재 장악하고 있는 상당 지역을 사수한 상황에서 종전을 이루려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내에서도 전쟁 피로도가 높아지면서 분열이 일어날 수 있고, 서구의 압박이 강화되면서 종전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 러시아군이 졸전을 거듭했다.

박=권위주의 체제의 특징 중의 하나가 불투명성과 부패, 무능이다. 러시아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부패와 비리로 많은 군사장비가 고장이거나 효율적으로 운영되지 못함에도 푸틴에게는 모든 것이 잘 준비된 것처럼 보고되었을 것이다.

양=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1999년 집권한 이후 내내 집중한 핵심 사안 중 하나가 군사 역량 강화다. 군 개혁은 러시아 군부는 물론 강한 러시아로의 회귀를 염원하던 권력 집단과 소련 향수에 젖어 있던 러시아 일반 대중의 숙원이기도 했다. 하지만 독재 권력이 오래 유지되면서 군 개혁의 진행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미비점 등을 분석, 수정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박=푸틴의 착각은 조지아 침공(2008년)과 시리아 내전 개입(2015년) 성공에서 시작됐다. 세계 곳곳에서 러시아의 군사적 개입이 성공하고 있다는 신호를 본 것이다. 하지만 푸틴은 러시아군의 실제 전력이 이렇게 부실한지 몰랐을 것이다.

- 러시아인들은 전쟁을 지지하나.

박=적지 않은 러시아인들이 이번 전쟁을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라는 악에 대한 정당한 전쟁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자식이나 지인을 전쟁터에 보내야 하는 민중들의 여론 흐름은 서서히 달라지고 있다.

양=10월 중순까지도 전쟁 지지가 우세했다. 징집을 피하려는 이들도 러시아 정부 주장대로 이번 전쟁을 통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영향력을 확보하고 미국과 대등한 세계적 강국으로 발돋움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런데 12월로 오면서 반전 여론과 푸틴 정권에 대한 비판이 확산하고 있다. 징집병 중 상당수가 제대로 된 무장과 훈련 없이 전선에 투입되고 사망·부상자, 포로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징집병 가족을 중심으로 반정부 활동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전쟁에 대한 공포와 염증이 러시아인에게 확산하고 있다.

- 소수민족 주민들의 동원령에 대한 반발이 거셌다.

정=사회주의 시절 다소 완화됐던 러시아 민족주의가 다시 심화되고 있다. 러시아에서 가난한 지역의 사람들이 군대에 많이 가고 이 지역에 소수민족이 집중적으로 살고 있다. 저임금 노동에도 소수민족이 많이 종사한다. 전쟁 이전부터 소수민족은 계급, 지역, 민족차별과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는데 전쟁에서 그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번 전쟁은 제국주의적인 식민지 동원 양식을 보여준다.

박상남 한신대 교수. 우철훈 선임기자

- 전쟁을 나토와 우크라이나의 대리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양=먼저 나토의 동진이 전쟁의 결정적 요인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2004년 발트 3국의 나토 가입으로 러시아는 이미 나토와 국경을 접했다. 나토 동진만 강조하면 침공이 정당한 것처럼 인식하게 만든다.

정=러시아 입장에서 나토 동진은 위협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전쟁을 일으켜 타국의 영토를 15~20% 차지하는 건 별개의 문제이다. 이 전쟁은 러시아가 나토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잊고 있던 19세기 제국주의 식민주의적 사고가 부활한 것이다. 나토의 동진 못지않게 전쟁의 원인으로 거론된 것이 우크라이나의 친유럽 정책이다. 우크라이나의 친유럽 정책은 자신들의 미래와 관련해 러시아가 대안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그들은 권위주의 체제에 폐쇄적인 러시아보다는 민주주의나 복지국가의 모습이 있는 유럽을 대안으로 판단한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끈질기게 싸운 동력은 무엇일까.

양=이번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미국과 서방의 직간접적 우크라이나 지원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러시아군의 상대적으로 낮은 사기와 우크라이나인의 강인한 의지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돈바스 출신 재한 우크라이나인들과 얘기해보면 “나는 그냥 우크라이나인으로서 내 고향이 침략당하는 것이 싫다. 왜 한국인들은 러시아계면 다 러시아를 지지할 거라고 생각하느냐”고 말했다. 경제적 이유로 한때 러시아 국적을 얻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크라이나 ‘동부는 친러, 서부는 우크라이나 민족’이라는 도식은 맞지 않다.

-러시아 내부 사회는 어떤 상태인가.

정=러시아와 파시즘이라는 용어를 합쳐서 ‘러시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들도 있다. 크름반도 합병 이후 8년 동안 ‘러시아 사회’가 질식상태에 빠졌다. 언론은 철저하게 정권의 선전 선동의 도구가 됐다. 우크라이나는 형제면서도 제국주의, 파시즘 그리고 동성애적인 서구의 조종을 받는 존재이기에 구원해야 한다는 논리가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양=푸틴이 1999년 12월31일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이후 러시아에서는 20년 넘게 푸틴을 중심으로 하는 독재 권력이 확립됐다. 푸틴 정권은 정치적 경쟁 세력을 제거하는 동시에 언론을 국유화 또는 준국유화함으로써 국가 통제 아래 가둬놓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러시아에서는 극소수의 몇몇 언론기관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신문·방송이 국가가 요구하는 정보와 이념을 국민에게 주입하는 체계가 확립됐다. 이번 전쟁이 개시되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비판적 언론도 모두 폐쇄됐다. 현재 러시아 국내에는 독립적이며 비판적인 언론기관이 존재하지 않게 됐다.

-푸틴은 전세가 불리해지면 핵을 사용할까.

양=핵 사용을 합리적 선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푸틴이 정치적으로 극단적 위기에 몰렸을 때 핵 사용 카드에 대한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에서 부정적인 결론을 배제할 수 없다.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존재라면 이번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영토를 잃은 채로 종전할 수 있을까.

박=눈여겨봐야 할 것은 푸틴이 서둘러 동부 영토 병합을 밀어붙이고 핵무기 사용을 자주 시사하고 있는 점이다. 역설적으로 궁지에 몰린 푸틴이 전쟁의 출구를 찾고 있다는 신호라고 본다. 우크라이나와 서방이 러시아의 동부 영토 합병을 인정해주면 푸틴은 승리를 선언하면서 명분 있게 전쟁에서 빠져나오겠다는 것이다. 반면 젤렌스키는 이를 받아들이는 순간 정치적 위기를 맞이할 것이다. 다만 우크라이나가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영토의 일부를 내주고 그토록 원하던 나토 가입이나 이에 준하는 안정보장을 얻어 낸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정=에너지를 비롯해 다양한 부문에서 경제적 위기를 맞고 있는 유럽과 미국은 분명 어느 시점 이상 이 전쟁이 지속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영토 일부를 강탈하는 형태로 종전이 이뤄지면 심각한 후과를 가져올 수 있다. 유럽은 완충지대 없이 러시아와 직접 대립하는 시대를 맞이해 항시적인 안보 위기에 시달릴 것이다.

양=현 상황에서는 즉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군사적으로 밀어내고 있는 현 전쟁 상황 속에서 우크라이나는 자국 영토의 러시아 통합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의 전쟁을 이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박=서방 언론에만 의존하지 않고 사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겠다는 일부 연구자들의 논조가 친러 입장으로 비춰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근본적으로는 한국 지식인들이 국제관계를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 중심으로 인식해왔다. 그래서 이번 전쟁도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수호 중요성보다는 미국과 러시아의 전략경쟁을 중심으로 보려고 한다. 이러한 강대국 중심의 시각은 러시아의 침략전쟁을 정당화시켜주는 논리적 모순을 낳게 되기도 한다.

정=우크라이나 등 중동부 유럽 구소련 국가들의 탈러시아, 친서구 흐름을 ‘미제 앞잡이’ 등으로 매도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러시아는 체제 전환 이후 대안적인 모델을 보여 주지 못했으며, 노골적 제국주의 부활을 시도하고 있다.

정재원 국민대 교수. 우철훈 선임기자

-이르지만 전쟁의 최종 결과를 예상한다면.

박=푸틴은 승리를 선언하겠지만 잘 들여다보면 잃은 게 더 많다. 이번 전쟁으로 러시아의 국력과 영향력은 약화될 것이다. 오히려 단결해 싸웠던 우크라이나는 물리적 피해에도 불구하고 국가 정체성 확립, 러시아의 예속에서 벗어나겠다는 확실한 국민적 결의 확인 등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일부 영토를 상실했지만 무형의 자산을 많이 얻었다고 본다.

양=러시아가 패배한 전쟁이라는 진단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우크라이나 측으로서도 군인과 민간인을 포괄하는 엄청난 수의 인명 피해, 침략군에 의한 인프라 파괴, 약탈, 경제적 피해 등으로 재앙에 가까운 상황에 처했다. 그런 의미에서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쟁이 될 것이고, 침략자와 피해자의 씻을 수 없는 원한의 상처로 남는 사건이 될 것이다.

-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국에 시사하는 바는.

양=동아시아는 세계 그 어느 지역보다도 군비경쟁이 극심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미·중·러의 이해관계가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다. 일종의 ‘무장평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무력대결은 도화선이 되는 사건과 함께 시작되었는데, 동아시아의 경우에는 전쟁을 촉발할 수 있는 대립점들이 지뢰밭처럼 널려 있다. 특히 한국은 대만과 함께 전쟁 위협에 가장 크게 노출돼 있는 국가이다. 주변 국가들과의 능동적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대내적으로는 스스로의 힘으로 침략에 대응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는 어려운 일을 해야 한다.

박=전쟁 결과에 상관없이 러시아는 영토가 가장 큰 세계적인 강국이고 한반도 평화에 중요한 국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전쟁에 대한 비판과 한·러관계의 중요성은 별개의 문제이다. 만약 푸틴이 실각하고 개방적인 정권이 들어선다면 서방과 러시아의 관계는 급진전 될 수 있다. 한국은 보다 높은 가치를 지향하되 자신을 지킬 확고할 힘을 기르는 다차원적 접근이 필요하다. 미국, 중국, 일본과의 관계에만 몰두하지 않는 넓은 시야의 유라시아 전략이 필요하다.

정=무엇보다 러시아의 침략에 동조해서는 안 된다. 러시아 주재 교민과 기업, 향후 관계를 위해 러시아 자체를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되겠지만, 정치인이나 외교 담당자 등 고위 관료가 아닌 이상 학계와 시민사회, 지식인들은 단호하게 반전의 입장에 서야 한다. 전쟁은 고향과 삶의 터전을 빼앗기는 사람들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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