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때 CIA 비밀작전 지원한 몽족 미 정계 진출 활발

강영진 기자 2022. 12. 29.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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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미 전역 몽족 커뮤니티가 자금 대고 선거운동
인구 44만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 시장 당선 등

[서울=뉴시스]동남아 소수민족 몽족이 모여 사는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의 몽족 쇼핑몰 몽 빌리지의 내부. (출처=미네소타 관광청) 2022.12.28.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미국 전역에 흩어져 사는 동남아시아 소수 민족 몽족이 똘똘 뭉쳐서 인구 44만 명의 캘리포니아 도시 오클랜드의 몽족 출신 시장을 당선시켰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 6월 시장 출마자 솅 타오(37)가 위스콘신주의 한 몽족 식당에서 수십 명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지지를 호소했다.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의 시장에 출마한 타오가 수천 ㎞ 떨어진 중서부까지 와 유세를 한 것이다. 위스콘신에 몽족 주민이 가장 많이 모여 살기 때문이다.

타오가 발언하는 동안 종쳉 무아(60)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도 3200㎞ 떨어진 캘리포니아에 산다고 중얼거렸다. 타오의 부모와 마찬가지로 무아는 50년 전 라오스 내전을 피해 태국의 난민수용소에 살았었다. 그와 형제들은 영어도 못하고 교육도 거의 받지 못한 채 무일푼으로 미국에 정착하느라 많은 고생을 했다.

식당 유세 모임을 주선한 사람 중 하나인 무아는 “몽족이 너무 오래도록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솅이 어디 살든 그가 성공하면 우리가 성공하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타오는 지난 달 오클랜드 시의회 동료인 로렌 테일러에 수백표의 근소한 차로 승리했다. 진보단체와 노동조합의 지지와 그의 선거 자금 5분의 1을 기부한 끈끈한 몽족의 지원 덕분이었다.

내년 1월 시장에 취임하는 타오는 최초의 몽족 출신 오클랜드 시장이자 최고위직 미 공직자가 된다. 샌프란시스코 건너편에 있는 오클랜드는 범죄와 홈리스가 많은 도시다.

올해는 타오 외에도 중간선거에서 미국 공직에 당선한 몽족 출신 주민들이 많다. 두 번째로 몽족이 많이 모여 사는 미네소타에서 9명이 주의회 의원이 됐다. 위스콘신과 캘리포니아 중부 지역에서도 많은 몽족 출신자들이 지역 공직자에 당선했다.

타오는 “내가 당선한 것은 오클랜드 시민들과 함께 미국 전역의 몽족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국의 몽족 커뮤니티는 40여년 전 베트남 전쟁의 일환으로 미 중앙정보국(CIA)가 라오스에서 벌인 “비밀 전쟁” 와중에 미국으로 이주한 몇 사람으로 시작했다. 베트남 전쟁 이후 여러 나라에서 몽족 출신이 미국으로 왔지만 대부분 라오스 난민들이다.

미국에 정착한 몽족 이민자들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언어와 문화 장벽에 더해 특별한 기술도 없었던 몽족은 빈민가에 살면서 식품 가공공장이나 섬유공장 등 비숙련 공장 노동자로 일했다.

1세대들은 그렇게 고생하면서 저축해 교외 지역에 집을 샀고 2세대들은 대학을 졸업해 고소득 전문직이 됐다. 그러나 몽족의 평균 소득은 미국내 소수 민족 가운데 여전히 최저수준이다. 2020년 자료에 따르면 몽족 출신 미국인의 60%가 저소득층이며 4명 중 1명이 극빈층이다.

2018년 미네소타 주의회 의원에 처음 당선한 몽족 사만사 뱅은 “우리는 다른 민족보다 빠르게 성장했지만 여전히 어렵다”고 말했다.

미국은 동남아 지역 공산 정권과 싸울 당시 공산군의 보급선 파괴와 실종 미군 조종사 구출을 위해 비밀리에 몽족을 활용했다. 1975년 베트남 전쟁이 끝난 뒤 라오스 공산주의 정부의 표적이 되면서 많은 사람이 태국의 난민 캠프로 탈출했고 다시 미국으로 이주해 미국 미네소타와 밀워키의 트윈시티(미니애폴리스와 세인트폴)와 캘리포니아 프레스노 및 새크라멘토에 정착했다.

출신 배경이 다양한 베트남 난민과는 달리 미국으로 이주한 몽족은 대부분 농민들이었다. 라오스에서의 활동이 비밀 작전이었기 때문에 몽족이 미국을 도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돌아갈 곳이 없게 된 몽족 난민들이 미국 이주를 선택했다. 몽족은 다른 아시아계 미국인들보다 결속력이 강하다.

1991년 추아 리가 미네소타 세인트폴의 교육위원에 당선해 첫 몽족 출신 공직자가 됐다. 2000년 몽족들은 미군을 도운 몽족에게 미 시민권을 더 쉽게 내주도록 로비했다. 2019년 현재 해외에서 태어난 몽족의 81%에게 미국 시민권이 주어진다. 이는 아시아계 미국인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이다. 미네소타주를 중심으로 몽족 2세대들이 2000년대 초부터 공직 진출이 늘어나고 있다.

MIT대 아시아계 미국인 연구소 연구원인 캐롤린 웡은 “초기에 몽족들은 정당이 뭔지, 정당 후보가 뭔지도 몰라서 시행착오를 통해 배워야 했지만 빠르게 적응했다”고 말했다.

미국에 사는 몽족은 대략 30만 명 정도며 대부분 캘리포니아, 미네소타, 위스콘신에 모여 살고 있다. 이중 가장 많은 3분의 1 가량이 캘리포니아에 살지만 대부분 초기 정착지인 새크라멘토나 프레스노에 거주하며 샌프란시스코 베이나 로스앤젤레스에는 상대적으로 적다. 일부가 캘리포니아 북부로 이주해 마리화나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타오가 시장에 당선한 오클랜드가 속한 알라메다 카운티에는 몽족 주민이 1000명도 안 된다. 그럼에도 타오는 미국 전역의 몽족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당선할 수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 당선한 몽족 공직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몽족은 같은 성을 사용하는 18개 씨족으로 구성돼 있으며 미국에서도 이런 구분이 유지되고 있다. 이렇게 유지되는 동질성이 정치적 자원이 되고 있는 것이다.

타오 시장이 2018년 오클랜드 시의원에 출마했을 당시 그의 아버지가 타오 씨족 지도자들에게 지원을 요청했었다.

타오는 캘리포니아 스톡턴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몽족 커뮤니티와 관계가 깊지 않았다. 당시 몽족 커뮤니티에서 횡행했던 몽족 갱에 아들이 휩쓸릴 것을 우려한 부모가 이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오는 여전히 몽족 언어를 사용하고 샤마니즘 풍습을 유지한다.

자칭 “저항하는” 청소년이던 타오는 17살에 집을 떠나 고생을 했다. 20살이 된 타오는 몇 달 동안을 젖먹이 아들과 함께 차에서 자거나 다른 집의 소파를 빌려 자면서 전전했다. 이후 정규 매니저 일자리를 얻은 타오는 지방대학에 진학했다가 버클리대로 전학했다. 대학 졸업 뒤 오클랜드 지역 정계에서 활동해왔다.

타오가 오클랜드 시의원에 출마하자 그의 씨족 지도자들이 나서서 주 전체의 몽족을 동원해 선거자금을 마련하고 선거 자원봉사를 하도록 했다. 타오가 당선하자 타오 씨족 500명이 캘리포니아 머세드에 모여 타오에게 행운을 기원하는 팔찌를 두르는 몽족 전통 바시 의식을 가졌다.

올해 오클랜드 시장 선거에서도 타오 씨족이 적극 나섰다. 타오의 선거 참모인 루잔시 무아는 “몽족 커뮤니티는 끈끈하다. 타오와 우리는 하나이므로 당연히 타오를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타오의 당선에는 민주당 지지가 강력한 지역 정서, 진보적 공약과 노동조합의 기부 및 지원이 크게 작용했지만 몽족 커뮤니티의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미국 전역의 몽족 노인들, 아줌마들, 삼촌들, 형제들, 자매들의 지원 말이다.

타오는 “몽족이 공직에 활발히 진출하는 데는 몽족 커뮤니티의 적극적 지원이 큰 역할을 한다. 도움을 요청하면 모두가 나서서 자기 일처럼 돕는다”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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