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 무렵 서해 바닷가에 섰다. 수평선을 따라 길게 드리우기 시작하는 태양의 붉은 기운. 바다와 가까워질수록 또렷한 동그라미를 그리더니 충분히 감상할 틈도 없이 바다는 거대한 해를 순식간에 집어삼키고 만다. 눈물 나도록 장엄하고 아름다운 순간. 하지만 저녁노을은 아주 짧다. 우리 인생처럼. 그래, 이렇게 올해도 가는구나. 돌아보면 늘 아쉬운 발걸음들. 내년에는 올해보다는 조금이라도 후회 없는 시간을 살기를. 꼭 그렇게 되기를 소망한다.
◆자연 닮은 부석사에서 정리하는 한 해
충남 서산시 부석면 부석사로 들어서자 도비산 자락에 아담하게 들어앉은 사찰 풍경이 고즈넉하다. 금강역사가 지키는 금강문 너머로는 시간이 그대로 정지된 듯하다. 한자리에서 모진 풍파를 모두 버틴 거대한 몸통의 느티나무와 벚나무 고목들. 닳고 닳아 윤기가 도는 돌계단. 그리고 가파른 언덕 위에 단아한 모습으로 여행자를 맞는 극락전 지붕에도 수백년 세월이 켜켜이 쌓여있다. 화려한 단청 하나 없지만 그래서 더 자연을 닮고자 하는 진심이 가슴 깊이 다가온다.
극락전 옆은 심검당(尋劒堂). 지혜의 칼을 찾는 곳이란 뜻이다. 심검당 툇마루에 앉아 눈을 감고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올해 과연 지혜롭게 살았을까. 우둔한 언행으로 주위를 다치게 만들고 게으른 삶으로 인생을 허비하지는 않았는지. 차근차근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마주하니 한 해도 자연스럽게 정리되는 기분이다. 내년은 올해보다 더 지혜롭고 현명하게 살아야겠다. 심검당 돌계단 바로 아래쪽에서는 청명한 물줄기가 흐르는 약수를 만난다. 스님이 작은 바가지로 정성스레 떠 주는 약수를 벌컥벌컥 들이켜니 목젖을 따라 한 해 동안 쌓인 응어리가 모두 씻겨 내려간다. 물맛이 다르다. 명당의 기운 때문일까. 부석사 도량 자체가 퍼질러 누운 소의 형상으로 지어졌는데 풍수적으로 약수터는 소의 젖가슴에 해당한단다.
극락전에는 목조 아미타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1689년(숙종 15년)에 왕자(경종)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불상으로 원래 용봉사라는 절에 있었는데 1905년 이곳으로 옮겼다. 규모는 아담하지만 이처럼 부석사는 역사가 깊은 천년고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의 말사로 677년(문무왕 17년) 신라 고승 의상대사가 창건한 이후 조선의 무학대사가 중창한 것으로 전해진다. 극락전은 고려시대의 건축 양식에 따라 정면 3칸, 측면 3칸에 맞배지붕으로 지어졌다.
극락전을 나서 뒤쪽으로 돌아들면 다시 언덕을 따라 돌계단이 이어진다. 부석사에서 가장 빼어난 자연미를 지닌 산신각으로 오르는 길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찰을 다녀봤지만 건물이 돌과 나무와 한 몸이 된 풍경은 이곳이 유일할 것 같다. 마음을 닦으며 수행하기 좋아 보인다. 산신각 왼쪽은 용왕각, 오른쪽엔 선묘각이란 현판이 걸렸다. 일반 사찰에서는 잘 볼 수 없는 배치로 부석사 창건 설화가 담겼다.
의상이 당나라에서 유학하던 시절 기거하던 집에 선묘라는 낭자가 살았는데 그녀는 의상을 연모해 마음을 얻기 애썼지만 의상은 수행에만 전념하다 귀국길에 나섰다. 이 소식을 듣고 슬퍼한 선묘는 바다에 몸을 던졌고 죽어서 용이 돼 의상의 귀국길을 수호했다. 선묘의 도움으로 무사히 서해안에 도착한 의상은 그녀의 넋을 위로하려고 도비산에 절을 지으려 했다. 하지만 백제 멸망 후 민심이 흉흉하던 시절이라 극렬한 반대에 부딪혔는데 용이 된 선묘가 커다란 바위를 띄워 이들을 물리친 덕분에 부석사를 지을 수 있었단다. 이 돌은 부석사에서 10㎞ 앞 바다의 섬이 됐는데 지금의 ‘검은여’다. 이런 창건 설화 때문에 ‘떠 있는 바위’란 뜻을 담은 부석사(浮石寺)가 절의 이름이 됐다. 설화를 듣고 보니 숲속에 보일 듯 말 듯 지어진 산신각이 마치 공중에 붕 떠 있는 것 같다.
산신각 왼쪽으로 더 오르면 일제강점기 한국 불교를 일본화하려는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을 펼치던 만공의 토굴도 만난다. 사람 한 명 겨우 기어들어가 앉을 수 있는 공간이다. 토굴 아래에는 절벽 바위에 새긴 마애석불도 있다. 여행자들이 한 해를 돌아보고 두 손 모아 새해 소원을 기도하는 곳이다. 바로 옆 길쭉하게 솟은 ‘소원바위’ 틈에는 저마다 소원을 담은 동전이 끼워져 있다. 내년에는 후회 없는 시간만 쌓을 수 있게 해달라고 작은 소원 하나 얹어본다. 내려가는 길에 도비산다원과 ‘구름이 머무는 누각’ 운거루에도 꼭 들러보길.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뜨거운 꽃차 한잔 들고 운거루에 오르니 겨울정취가 가득하다.
◆웅도 유두교 인생샷 찍고 간월암 일몰보며 “아듀! 2022년”
요즘 서산여행에서 아주 핫한 대산읍 웅도로 향한다. 간조 때는 유두교로 육지와 연결돼 있지만 만조 때면 다리가 잠겨 섬이 되는 곳이다. 물이 찰랑거리며 다리가 잠기기 시작할 때 맨발로 거닐며 웅도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인생샷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추억에 남는 사진을 건지려면 물때를 꼭 확인하고 여행해야 한다.
만조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다리를 건너 웅도로 들어선다. 면적 1.58㎢의 작은 섬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곰이 웅크리고 앉은 형태와 비슷해 웅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당산의 제단 주위에 수백 그루 아름드리 노송들이 있어 먼 곳에서 바라보면 마치 섬의 배꼽처럼 보이기에 주민들은 ‘배꼽섬’으로도 부른다. 마을로 들어서 해안데크길을 따라 걷는다. 마침 물이 멀리까지 빠져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인 가로림만이 광활하게 펼쳐진 풍경이 가슴을 시원하게 열어준다. 간조 때면 웅도에서 1㎞ 앞의 더 작은 섬, 매섬까지 걸어갈 수 있다. 갖가지 바다 생물이 살아 숨 쉬는 갯벌은 자연 학습장이자 생태계의 보고로 바지락, 굴, 홍합 등 어패류와 낙지, 주꾸미, 미역 등을 길러내는 서해안 최대의 황금 어장이다.
마을회관을 지나 섬 가운데로 깊숙하게 들어가자 마을 보호수인 반송이 손님을 맞는다. 밑동은 하나지만 가지가 아홉 개로 갈라진 모습이 마치 쟁반 같아 반송이란 이름을 얻었다. 400년 나이를 보여주듯 웅장한 반송은 소원을 들어준다는 전설이 깃들어 연말연시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다. 웅도 선착장에서 북서쪽으로 30m가량 떨어진 지점에서는 선캄브리아 시대 규암층도 만난다. 12억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지질학 교과서다. 다시 유두교를 건너자 서서히 차오른 바닷물이 다리 위로 넘실거리기 시작한다. 친구와 여행온 20대 여성, 3살쯤 돼 보이는 꼬마 아가씨와 갓난아기를 안은 단란한 가족까지 다양한 포즈로 2022년 끝자락을 추억에 남긴다.
올해의 마지막 여행지 부석면 간월도리의 작은 암자이자 섬, 간월암으로 향한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왕사인 무학대사가 창건했고 송만공 대사가 중건했다고 전해진다. 무학이 이곳에서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간월암이라 불린다. 1980년대 진행된 천수만 간척사업으로 육지와 연결됐지만 간월암은 지금도 하루에 두 차례 만조 때 섬이 되고 간조 때는 뭍이 되는 신비로움을 지녔다. 특히 만조 때 밀물이 들어오면 물 위에 떠 있는 연꽃을 닮아 연화대(蓮花臺)로 불린다. 간월암은 손을 내밀면 닿을 듯 가까운 거리지만 물이 가득차 갈 수 없다. 마치 우리 인생 같다. 코앞에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지만 쉽게 닿을 듯하면서도 좀처럼 얻어지지 않으니.
이제 장엄한 일몰과 함께 2022년을 떠나보낼 시간. 서서히떨어지는 해는 하늘과 바다를 온통 붉게 물들여 버리며 아름다운 수채화로 채색한다. 그리고 마지막을 빨갛게 불사르며 바다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태양. 안녕 2022년. 내년엔 좋은 일만 가득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