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읽기] 민간이 주도하는 경제는 중소기업 공동행위 허용이 필수다
(서울=뉴스1) =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민간 주도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작은 정부를 표방하며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겠다는 의지이다. 지난 11월 정부가 국회로 제출한 2023년 정부 예산안을 심사할 때도 민간 중심, 민간 주도라는 표현이 나오면 어김없이 예산은 삭감됐다. 민간이 주도하는 경제가 모두 바람직한 모습일까. 현재는 미래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현재 민간경제 상황을 진단해보면 현 정부가 표방하는 한국경제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겠다.
현재 민간경제의 특징은 양극화와 과도한 부채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월평균 임금은 2배 이상 차이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도 160만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또한, 가계부터 기업까지 빚으로 버틴다고 할 정도로 부채가 많은 상태다. 최근 기사에 따르면 가계부채가 1870조원, 기업대출이 1723조원에 달한다. 민간경제는 환자로 치면 곧바로 응급실로 가야 할 정도로 취약한 상태다. 반면, 우리나라 전체 경제 성과를 나타내는 국내총생산(GDP)은 1조 8102억달러로 세계 10위를 유지하고 있고 정부는 2027년까지 국민 1인당 GDP 4만달러 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겉으로 보이는 전체적인 경제 상황은 크게 걱정할 수준이 아니지만 그 속의 민간경제는 위험한 상태다.
소득 양극화 해소는 중소기업 납품 대금 제값 받기로부터 시작된다. 지난 10월25일 모 대기업 관계사가 협력 중소기업의 양극화 해소를 위해 '대금 제대로 주기 3원칙 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중소기업계는 공공조달 시장에서도 제값 받기가 시급하다며 최저가 낙찰 관행을 폐지하고 적정가격을 보장해 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최근 국회도 원자재값 폭등 부담을 납품 대금에 반영할 수 있도록 납품단가연동제 상생협력법을 통과시켜 내년 하반기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납품 대금 제값 받기는 이제 더 이상 시혜적 조치가 아니라 중소기업 양극화 해소를 위한 중심 전략이 되고 있다.
중소기업의 대등한 거래를 돕는 제도도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그동안 대·중소기업의 격차를 완화하려는 제도적 시도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일명 갑을관계에서 발생하는 ‘갑질’에 대해서 경쟁당국이 행정적 제재를 가하는 데에만 집중했고, 협상력이 약한 중소기업이 단체적 교섭을 통해 대등한 거래관계를 설정할 수 있게 하는 제도 도입은 미흡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일정한 요건에 해당되는 공동행위는 카르텔 금지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공동행위 인가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일정한 요건은 다음의 경우를 모두 충족한 경우다. 1) 공동행위에 따라 중소기업의 품질·기술 향상 등 생산성 향상이나 거래조건에 관한 교섭력 강화가 명백할 것 2) 공동행위에 참가하는 사업자 모두가 중소기업자일 것 3) 공동행위 외의 방법으로는 대기업과 효율적으로 경쟁하거나 대기업에 대항하기 어려운 경우에 해당할 것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지난 10년여간 공정거래위원회의 인가를 받은 공동행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중소기업협동조합의 공동사업에 대해 공동행위를 허용하는 법률도 마련되어 있지만 하위 규정에서 가격 인상과 생산량 조절 행위를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여 소비자 이익을 침해하는 경우로 금지하고 있어 협동조합의 공동행위 허용 사례도 현재까지 전무하다.
중소기업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 단체적 교섭권을 합법화해야 한다. 현행 제도는 중소기업의 단체적 교섭을 과도하게 위축시킨다. 필자가 직접 겪은 사례를 예로 들어보겠다. 2020년 말부터 코로나19 여파로 원자잿값이 폭등하자 해외 원재료를 수입 가공하는 대기업과 이를 공급받는 다수의 중소기업 간 갈등이 심해졌다. 제지 대기업과 인쇄 중소기업, 합성수지 대기업과 플라스틱 중소기업, 철강 대기업과 볼트 너트 중소기업, 시멘트 중견기업과 레미콘 중소기업 등이 이에 해당된다. 제품은 달라도 중소기업계가 원하는 것은 한 가지였다. 원재료를 공급받는 대기업과 거래조건에 대해 정식으로 소통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한 이유도 같았다. 공정거래법상 부당한 담합으로 오해받을까 두렵다는 것이다. 결국 의원실과 관련기관이 공식적으로 참여하니 중소기업계는 부당한 담합의 오해를 덜어낼 수 있었고 그렇게 상생의 물꼬를 튼 대기업과 중소기업계는 단순한 거래관계 협의에서 더 나아가 공동사업을 모색하는 등 상생의 성과를 이어가고 있다.
중소기업의 공동행위에 대한 외국의 특례제도는 어떤지 살펴보자. 독일은 경쟁제한방지법에 중소기업 카르텔 규정을 두고 중소기업 경쟁력 향상 목적 등 일정 요건을 갖춘 경우에는 카르텔 금지규정 적용을 배제하고 있다. 공동행위를 통한 가격통제, 판매할당도 합리성을 갖추면 허용하고 있다. 호주도 중소기업이 단체적으로 거래 상대방과 거래조건을 협상할 수 있는 단체협상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2021년 호주의 경쟁당국은 이 제도를 일괄 면제로 확대하였고 단체협상과 관련하여 거의 대부분 사건에서 이를 허용하고 있다. 한편, 미국은 경쟁법상 중소기업에 대한 특례를 두지 않으며 일본은 일정한 협동조합의 행위에 경쟁법의 적용을 배제하고 거래조건 협의를 위한 단체협약제도도 마련하고 있다.
민간이 주도하는 경제를 위해서는 우리나라 사업체의 9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이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합법적으로 공동행위를 할 수 있게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길을 터줘야 한다. 민간 주도라는 단어만 앞세운 채 정작 중소기업이 필요할 때 경쟁당국의 눈치를 보게 할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 공동행위에 대한 심사 지침을 마련하고 널리 알려서 중소기업이 합법적인 공동행위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우리나라 경제 생태계는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이기 때문이다.
/김경만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미래읽기 칼럼의 내용은 국회미래연구원 원고로 작성됐으며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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