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와 '재벌집', 2022년 휴머니즘 vs 막장의 전례 없는 공방전
[엔터미디어=최영균의 듣보잡('듣'고 '보'고 '잡'담하기)] 드라마 업계도 또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다. 2022년을 마무리하는 현재 드라마 세상은 한 해를 정리하는 대개의 차분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JTBC 금토일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하 <재벌집>)이 26%를 돌파하는 초대박 시청률에 엔딩의 개연성 논란까지 더해진 상황 속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려 그 뜨거운 열기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재벌집>은 흙수저가 죽은 후 재벌로 부활하는 판타지에 기반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스카이캐슬>, <부부의 세계>, <펜트하우스> 등 최근 매년 최고 시청률을 차지한 막장 드라마들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재벌 기업 오너 승계를 두고 창업주 회장의 자식 모질게 키우기, 그리고 그 자식들 간의 세력 다툼을 위한 치열한 모략과 암투는 가족인 상대를 사회적, 경제적 사망 상태 혹은 생물학적 사망까지도 노리는 막장의 연속이었다.
<재벌집>은 보통의 가족 관계에선 상상할 수 없는 마라맛 패륜 혈투가 극의 가장 큰 뼈대인 막장 드라마였고 올해도 시청률 경쟁에서 막장드라마의 해가 되도록 만들었다.
막장은 내용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올해 인기 드라마 중 하나인 SBS <천원짜리 변호사>는 이해할 수 없는 방송 방식으로 시청자들이 막장을 느끼게 했다. 방송 중반 납득되지 않는 편성과 결방이 이어졌고 16회로 예정된 방송 분량이 12회로 축소된 상태로 종영되는 과정에서 극의 개연성이나 캐릭터의 일관성이 흔들렸다. 결국 최고 시청률 15.2%로 마무리되긴 했지만 이 수치에 어울리는 극의 완성도를 갖췄는지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막장의 대세는 최근 몇 년의 지속적 흐름이기는 하지만 올해는 그 반대편에 선 휴머니즘 드라마들이 크게 약진했다. 휴머니즘 드라마라고 하면 자극적 요소를 배제하고 약자에 대한 관심과, 보통 사람들의 일상과 본연에 대한 관찰과 탐구를 담아내 시청자들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고 공감과 위로를 얻게 하는 작품들이다.
휴머니즘 드라마로 분류할 수 있는 작품 중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재벌집> 등장 전 올해의 드라마에 어떤 이견도 없이 등극해 있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다. 자폐 스펙트럼을 지닌 변호사의 이야기를 다룬 이 드라마는 지상파나 종편도 아닌, 갓 출범한 케이블 채널 ENA에서 방송돼 큰 관심을 얻지 못하고 시작됐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인 주인공과, 그가 변론하는 또 다른 사회적 약자들의 스토리를 신들린 연기로 풀어낸 박은빈에 대해 시청자들은 열광해 0.9%로 출발한 시청률이 최종회에서는 17%가 넘는 기적을 이뤄냈다.
자폐 스펙트럼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천재이고 변호사인 우영우가 과연 정말 약자냐는 논쟁도 있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자폐인들에 대한 이해를 유도하고 약자들의 처지에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우영우>는 휴머니즘 드라마로 여겨지고 있다.
<우영우>가 여름에 등장하기 앞서 드라마팬들은 올해 봄날 두 편의 주말 드라마로 위안 받았다. 노희경 작가의 tvN <우리들의 블루스>와 박해영 작가의 JTBC <나의 해방일지>다. 작품성 높은 휴머니즘 드라마의 전설적인 현역 작가 노희경과, <나의 아저씨>로 명품 휴머니즘 드라마 작가로 확고히 자리 잡은 박해영 작가는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일상 속 관계의 대립과 화해 속에 사랑을 회복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삶을 담아내 감동을 주었다. <나의 해방일지>는 평범한 이들의 자존정립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로 최고 시청률은 7% 정도였지만 엄청난 화제성으로 수많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이처럼 한해를 대표하는 드라마들 중에 휴머니즘 드라마들이 굵직하게 새겨져 있는 경우도 매우 드문 일이다. 심지어 막장인 <재벌집>에서조차 카드대란의 서민 챙기기 등 약자에 대한 관심과 존중이 적지 않게 다뤄질 정도로 휴머니즘은 2022년 드라마에서 빼고 논할 수 없는 지배적 키워드가 됐다.
새해에도 이런 분위기가 이어질 가능성은 상당해 보인다. 경기 침체와 물가 폭등 등 심화되는 경제난으로 서민의 삶이 점점 더 팍팍해지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드라마를 통해 자극적 재미보다 위로를 더 많이 필요로 할 듯하기 때문이다.
최영균 칼럼니스트 busylumpen@gmail.com
[사진=ENA, JTBC, SBS,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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