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기프티콘으로, 출근길 3원 벌기…직장인 고물가 생존전략
올해 1~11월 물가상승률 5.1%
내년도 3.6%로 목표(2.0%) 웃돌아
가성비 소비·디지털 폐지 줍기까지
“10~30% 저렴하게 즐길 수 있으니 고물가 시대에 정말 혜자(가성비가 좋다는 뜻의 은어)죠.”
직장인 한모(34)씨는 데이트 약속이 있거나 카페에 갈 때마다 기프티콘을 애용한다. 기프티콘 거래 애플리케이션(앱)으로 1만5,000원인 영화 관람권을 30% 이상 할인된 9,000원대에, 4,500원인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는 21% 싸게 살 수 있어서다. 한씨는 “월급은 제자리인데 물가는 크게 올라 부담이 크다”며 “자주 쓰던 배달 앱을 아예 삭제하는 등 지출을 줄이기 위한 여러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플렉스는 옛말… 슬픈 짠테크
고물가는 ‘짠물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 소비로 자신을 과시하는 ‘플렉스’ 바람이 분 지 불과 1년여 만이다. 특히 내년엔 ‘고물가·저성장’ 충격이 예고된 만큼 불필요하고 과도한 지출을 줄이는 ‘소비 디톡스’가 주름살 깊어진 가구의 생존 전략으로 떠올랐다.
기프티콘 온라인 거래는 고물가 시대를 대처하는 대표적 짠테크(짠돌이+재테크)다. 국내 3대 기프티콘 거래 앱(기프티스타·니콘내콘·팔라고)의 월 이용자 수가 2년도 되지 않아 두 배 이상 늘어났을 정도. 2021년 1월 약 23만 명이던 이용자 수는 지난달 47만 명을 넘겼다.
앱을 통해 처치 곤란한 기프티콘을 팔아 현금을 마련하고, 정가보다 저렴하게 기프티콘을 살 수 있는 판매자와 구매자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영향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기성세대보다 고물가 부담이 큰 젊은 세대가 소비는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지출을 줄이는 방법을 고민한 결과”라고 말했다.
일상이 된 디지털 폐지 줍기
경기 일산에서 서울 직장까지 편도 1시간 남짓 걸리는 직장인 박모(41)씨는 출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스마트폰 앱을 켜 출석 체크를 하고, 설문조사에 참여한다. 설문 주제에 따라 3원에서 1,000원 이상 벌 수 있다. 퇴근 후에는 한 정거장 먼저 내려 집까지 걸어간다. 걸음수를 채우면 출금할 수 있는 포인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출퇴근 시간이나 점심 시간을 활용해 설문조사 참여나 광고 보기 등으로 소액 벌이에 나선 직장 동료가 많다”고 말했다.
박씨 같은 ‘디지털 폐지 줍기’는 소비를 줄이는 짠테크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고물가 생존 전략이다. 디지털 폐지 줍기는 버려진 박스·종이를 모아 돈을 버는 폐지 줍기에 빗댄 표현이다.
디지털 폐지 줍기 방법으로 앱을 통한 △설문조사 참여 △출석 체크 △광고 보기 △걷기 등이 있다. 일례로 KB국민은행 앱(KB스타뱅킹) 내 ‘KB매일걷기’에 가입한 뒤 일주일에 3만5,000보를 걸으면 100포인트, 7만 보는 500포인트를 받을 수 있다. 토스 앱의 ‘만보기’ 서비스도 하루 5,000보에 10원, 1만 보에 20원을 지급한다.
내년에도 고물가…짠물 소비 계속
오프라인에선 불황형 소비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대형마트에선 용량 대비 가격이 낮은 대용량 제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재배 과정에서 흠집이 난 B급 농산물 수요도 급증 추세다.
정해진 기간 동안 돈을 쓰지 않고 생활하겠다는 ‘무지출 챌린지’는 이미 유행 중이다. 장보기를 포기한 ‘장포족’, 냉장고에 남은 재료를 털어먹으며 버티는 ‘냉털’ 등 고물가 부담에 강제로 지갑을 여닫게 된 이들을 표현한 신조어마저 생겨났다.
이런 분위기는 올해 연초부터 11월까지 소비자물가가 5.1% 상승(전년 동기 대비)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올해 연간 물가상승률은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4.7%)을 뛰어넘을 게 확실시된다. 1998년(7.5%) 이후 2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할 수 있다는 얘기다.
향후 흐름이 밝지 않은 점도 짠물 소비를 부추기는 원인이다. 한국은행이 내다본 내년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3.6%로, 물가안정목표(2.0%)를 크게 웃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와 러시아 제재 강화에 따른 국제 유가 상승 가능성, 공공요금 인상 등 물가 급등에 불을 지필 위험요소마저 산적해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리 인상 등 고물가 대응 과정에서 추가적 경기 위축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경기 위축은 기업 활동 위축과 근로소득 감소로 이어진다. 앞서 정부는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5%에서 1.6%까지 낮췄다.
세종= 변태섭 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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