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는 계속 늘어난다...정부가 ‘포획’되기 때문에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정부가 바뀔 때마다 항상 내거는 구호 중 하나가 ‘규제 개혁’이다. 국민의 삶과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규제가 너무 많다는 데 모두가 동의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후생 경제학의 대가 폴 새뮤얼슨은 규제 도입 기준을 효율성과 공정성이란 두 가지 원리로 설명했다. 그는 독점이나 외부 비경제에 따른 자원 배분의 비효율성을 극복하고 소득 분배의 불공정을 해결하기 위한 규제만 정당성을 지닌다고 봤다.
하지만 각 정부가 저마다 ‘전봇대’ ‘손톱 밑 가시’ ‘붉은 깃발’ 같은 요란한 수사를 동원해가며 규제 혁파에 나서는데도 기업의 자유로운 시장 활동을 저해하는 입법은 늘어만 간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설명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탄 조지 스티글러의 ‘포획 이론’이 있다. 정부 정책이나 규제가 정부나 규제 기관 출신 로비스트의 영향을 받아 특정 집단의 이익을 보호해주는 쪽으로 기울어져 결국 공공의 이익을 해치게 된다는 이론이다. 여기서 포획당하는 대상은 규제자인 정부이고, 포획하는 주체는 피규제자인 기업이나 이익집단이다.
실제로 이익집단의 규제 청원 역사는 로비스트의 활동만큼 오래됐다. “태양의 자연광을 차단해 인공조명 수요를 창출하면 프랑스에서 수많은 산업이 발달하게 될 것입니다.” 19세기 프랑스 양초업자가 태양을 가려 달라 한 청원 사례는 쓴웃음을 짓게 한다.
국제 분업의 효율성을 해치는 수입 규제 조치가 미국을 필두로 계속 늘어나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로비 업계의 수퍼스타가 미국 무역 협상의 공격수로 나선 것을 회상해 보자. 당시 주인공은 로버트 라이트하우저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였다. 그는 고객이 너무 많아 가려 받는다고 할 정도로 잘나가는 로비스트였다. US스틸을 비롯해 미국 철강 산업의 메카인 러스트 벨트 지역에 있는 기업들의 이익을 옹호했다. 그런 그가 USTR 대표가 된 후 철강 232조(무역확장법) 분쟁의 주역이 된 것은 그래서 전혀 놀랍지 않다.
포획을 방지하기 위해 여러 국가가 로비스트 등록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이 또한 한계가 있다. 최근 에바 카일리 유럽연합(EU) 의회 부의장이 카타르 정부에서 뇌물을 받았다는 뉴스가 세상을 놀라게 했다. 카타르가 EU 의회 의원을 매수한 배경으로 EU의 구멍 난 로비 문화가 지목됐다. EU는 로비스트 명부인 투명성 등록부를 관리한다. EU와 접촉할 로비스트는 여기에 등록해 감시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유럽 아닌 제3국의 관료는 등록 대상이 아니라는 데 허점이 있었다. 이런 제도조차 없는 한국은 금융감독원 출신이 퇴직 후 금융기관 감사 자리를 꿰차는 일이 여전히 빈번하다.
규제 개혁은 투자 유치와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만 필요한 게 아니다. 정부 보조금, 세제상 우대 조치, 진입 규제로 누군가 시대착오적인 경제적 지대를 누린다면 이 역시 타도해야 한다. 규제 당국의 포획을 막으려면 규제권자가 산하 업계의 뒤를 봐주거나, 퇴직 후 갈 자리를 늘리거나, 뒷배가 되어주는 관행부터 없애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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