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고랑포에 화신백화점이 있었다고?

이제훈 2022. 12. 2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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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화신백화점이 있었어. 백화점 꼭대기에 올라가니까 영화관이 있더라고. 아버지하고 영화 구경하고 나와서 그 밑에 식당에서 밥도 먹고. 내가 열한살인가 열살인가 하던 때야."

지금은 사라진 '화신백화점 분점이 있던 포구 마을 고랑포'의 옛 영화는 <나의 살던 고향은 '비무장지대 사라진 마을' 이야기> (통일부·비매품)와 '디엠지 메타버스'(universe.go.kr)에 재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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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나의 살던 고향은 DMZ 사라진 마을’ 공개
비무장지대 400여 마을 중 일부 우선 조사
통일부 ‘디엠지 메타버스’로 재현
비무장지대 마을 출신 할아버지 면담 장면. 통일부 제공

“여기도 화신백화점이 있었어. 백화점 꼭대기에 올라가니까 영화관이 있더라고. 아버지하고 영화 구경하고 나와서 그 밑에 식당에서 밥도 먹고. 내가 열한살인가 열살인가 하던 때야.”

최병희 할머니(93)는 어릴 적 당신이 살던 고향 마을에 화신백화점이 있었다고 기말했다. 화신백화점은 일본 제국주의 강점기인 1931년 조선인 최고 갑부이자 자본가인 박흥식이 세운 5층짜리 백화점으로, 서울 종각 사거리 지금의 종로타워 자리에 있었다. 조선 경성부 5대 백화점 가운데 유일한 조선인 소유 백화점으로, 일제 때 ‘신문물’의 상징이었다.

최 할머니는 그 화신백화점의 분점이 당신의 고향인 경기도 연천군 고랑포리에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마을 출신인 조성제 할아버지(89)도 고랑포리에 화신백화점이 있었다고 기억했다.

고랑포리는 임진강변 시골 포구인데, 1909년 상설시장이 들어선 일제 강점기 경기 북부의 물류 거점이었다. 하지만 지금 고랑포리엔 사람이 살지 않는다. 한국전쟁 정전협정에 따라 휴전선 남과 북에 각 2km씩의 ‘비무장지대’(DMZ·디엠지)가 설정됐는데, 고랑포리가 그 안에 있던 탓이다. 고랑포 읍내는 한국전쟁 때 미군부대가 주둔한다며 불도저로 밀어버려 사라졌다.

지금은 사라진 ‘화신백화점 분점이 있던 포구 마을 고랑포’의 옛 영화는 <나의 살던 고향은 ‘비무장지대 사라진 마을’ 이야기>(통일부·비매품)와 ‘디엠지 메타버스’(universe.go.kr)에 재현됐다.

메타버스로 재현한 강원도 양구군 수입면 문등리 일원 테마 공간. 통일부 제공

통일부가 강원대 ‘디엠지 헬프 센터’(센터장 김창환, 강원대 지리교육과 교수)에 용역을 줘 진행한 ‘디엠지 남북공동 종합조사’ 결과를 28일 공개했다. 비무장지대에는 400여곳의 크고작은 마을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연천군 고랑포리 △철원군 월하리·율이리·중세리, 철원읍 구시가지 △양구군 문등리 △고성군 대강리·사비리 등 일부 마을에 대한 문헌·구술·현지조사 결과가 담겼다. 어릴 적 기억을 되살린 구술자는 모두 24명인데, 대부분 구순을 넘겼다.

연구팀은 “고랑포의 ‘화신백화점’은 연쇄점인지 백화점인지 판단하기 어렵지만, 주민들은 ‘화신백화점’으로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강원도 양구군 사비리는 한국전쟁 이후 마을이 두 동강 났다. 마을 사람들이 ‘새비리’라 부르는 사비리는 ‘북강’을 경계로 서쪽에 ‘응달말’(또는 ‘음짓말’)이, 동쪽에 ‘양짓말’이 있었다. 전쟁 전엔 38선 이북이라 북한 땅이었는데, 전쟁 이후 ‘응달말’은 북쪽에 ‘양짓말’은 남쪽에 남았다. 양짓말 출신인 이보영 할아버지(85)는 “응달말에 40호, 양짓말에 70호 정도가 살았다”고 기억했다.

통일부는 “내년에도 비무장지대와 관련된 소중한 기억을 계속 발굴해 재현하는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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