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무생채 빠진 비빔밥" 고물가에 '밥상 차리기' 힘든 무료급식소
"빵이 떨어져서 초코파이 나눠드릴게요."
28일 오전 11시50분 서울 종로구 원각사 무료 급식소. 한 자원봉사자가 무료급식소를 찾은 사람들에게 후식으로 주기 위해 준비한 빵과 가래떡이 다 떨어지자 이같이 말하며 초코파이 상자를 꺼냈다.
푸드뱅크나 빵집, 종교단체 등에서 급식소에 한 달에 서너 번 빵, 떡과 같은 후식 종류를 기부한다. 급식소 총무 강소윤씨는 "기부에 감사하지만, 급식소에 오는 270~300명에게 전부 주긴 어려운 양이다"라고 했다.
취약계층에 음식을 제공하는 무료 급식소가 한 끼 식사를 차리는 데 이중고를 겪고 있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기부금은 줄었지만 각종 재료비와 난방비 등 지출은 늘었기 때문이다.
원각사 무료 급식소는 문을 연 지 올해 30년째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무료급식을 해왔다. 15평 남짓한 무료 급식소 공간에는 총 22명이 들어와 식사한다. 급식이 시작되기 30분 전부터 탑골공원 안에서 원각사 직원들이 사람들에게 번호표를 나눠준다.
오전 11시 탑골공원에는 아직 녹지 않은 눈 옆에서 60명 넘는 사람들이 무료 급식을 기다렸다. 이 시각 날씨는 영하 3도를 기록했다. 대기 줄에 서 있는 사람들은 전부 패딩을 입고, 모자와 장갑으로 추위를 피하고 있었다.
이날 원각사 무료 급식소가 준비한 점심 메뉴는 비빔밥이었다. 그나마 값이 저렴한 재료를 찾아 만든 음식이다. 급식소 측은 원래 김과 김치, 상추, 콩나물만 넣을 예정이었지만 며칠 전 후원받고 남은 불고기를 성인 손가락 두 개 크기로 자르고 잘라 비빔밥에 넣었다.
강씨는 비빔밥 그릇을 보며 "비빔밥에 무 생채랑 표고버섯도 들어갔으면 더 맛있을 텐데 값이 비싸서 그런 재료는 상상도 못 한다"며 "우리가 나이 들어 언젠가 이 급식소를 못하게 되더라도 밥 못 먹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다. 혼자 사는 어르신들한테 꾸준히 밥 잘 드리고 싶은데 경제적 여건이 안 따라준다"고 말했다.
강씨는 "2015년 4월부터 급식소 총무를 맡았는데, 요즘 물가가 많이 올라 힘든 시기"라며 "식사 재료비는 지난해보다 25% 오르면서 무료 급식 한 끼를 차리는데 들어가는 단가도 함께 올랐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16일 기획재정부의 최근 경제동향 12월호에 따르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월부터 11월까지 5%를 넘어 고물가가 계속되고 있다.
물가는 올랐지만 기부금은 감소하고 있다. 급식소에 따르면 수도 요금, 재료비를 포함한 매달 운영비가 지난해보다 500만원 늘은 반면 기부금은 50% 감소했다.
고영배 사무국장은 "식사 한 끼 단가가 지난해 1000원 안쪽이었는데, 올해는 2000원 가까이 올랐다"고 말했다. 강씨는 "경제가 전반적으로 안 좋다 보니 기부 문의 자체도 안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고 사무국장과 강 총무는 마트나 시장에 가면 조금이라도 저렴한 상품이 없나 살피는 게 버릇이 됐다. 강씨는 "고기뿐 아니라 채소도 비싸서 떨이 상품이라도 있으면 산다"며 "값싼 재료들을 모으고 모아 한 끼를 차린다"고 말했다. 고씨는 "작년에는 한 달에 한 번 소고기 반찬이 나갔다면 올해는 돼지고기 반찬을 만들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역에 있는 참좋은친구들 무료 급식소의 사정도 비슷하다. 1989년부터 무료 급식을 해온 참좋은친구들의 신석출 이사장도 물가 상승의 부담을 호소했다. 신씨는 "재료비가 작년보다 한 달에 300~400만원 늘었다"고 말했다.
서울의 아침 기온이 영하 14도를 기록한 지난 23일 참좋은친구들은 급식소를 찾은 사람들에게 핫팩을 나눠줬다. 한 사람당 두 개씩 주려고 했지만 한 개로 줄였다. 신씨는 "핫팩을 많이 주면 좋지만, 기부금이 줄어 아낄 부분은 아껴야 한다"며 "코로나 3년간 기부금이 매년 30~40%씩 계속 줄었다"고 말했다.
이날 무료 급식소에 찾은 이들은 서로의 밥을 나누며 굶주린 배를 채웠다. 한 남성이 자원봉사자에게 밥을 조금 더 달라고 하자 옆에 있던 남성이 본인의 밥을 숟가락으로 덜어주기도 했다.
왕십리에서 탑골공원까지 왔다는 김모씨(89)는 "자식들이랑 따로 살아 혼자 지낸다"며 "반찬이 어떻든 요즘 힘든데 이렇게 먹을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유예림 기자 yesrim@mt.co.kr, 강주헌 기자 zoo@mt.co.kr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 조규성, 친누나와 손잡고 "사랑해♥"…母 문자에도 '애교 만점' - 머니투데이
- 송중기, '여친' 앞에서 '여사친'과 포옹…♥英 애인 반응은? - 머니투데이
- '50억 재력가' 정숙 "스토커에 딸 납치될 뻔, 남친 공개한 이유는…" - 머니투데이
- '조재현 딸' 조혜정 살 빼고 달라진 외모…이병헌 소속사서 본격 활동? - 머니투데이
- 유현주 "이루 음주운전 동승자?…관련 없다, 법적 조치할 것" - 머니투데이
- 미국서 HBM 패키징 공장 짓는 'SK하이닉스' 인디애나주 법인 설립 - 머니투데이
- 인증샷 투명곰에 최현욱 나체가…빛삭했지만 사진 확산 - 머니투데이
- 수능에 '尹 퇴진' 집회 사이트가 왜 나와…논란된 문제들 봤더니 - 머니투데이
- 영국·스페인 일간지, X 사용 중단 선언..."가짜뉴스 확산 플랫폼" - 머니투데이
- 슈주 예성, 김희철 때렸다?…"공연 때문에 다퉈, 눈물 흘린 건 맞다" - 머니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