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무생채 빠진 비빔밥" 고물가에 '밥상 차리기' 힘든 무료급식소

유예림 기자, 강주헌 기자 2022. 12. 29.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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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원각사 무료 급식소. 이곳은 벽에 붙어 있는 달력에 매일 무료 급식을 먹은 사람의 숫자를 적어둔다. /사진=유예림 기자


"빵이 떨어져서 초코파이 나눠드릴게요."

28일 오전 11시50분 서울 종로구 원각사 무료 급식소. 한 자원봉사자가 무료급식소를 찾은 사람들에게 후식으로 주기 위해 준비한 빵과 가래떡이 다 떨어지자 이같이 말하며 초코파이 상자를 꺼냈다.

푸드뱅크나 빵집, 종교단체 등에서 급식소에 한 달에 서너 번 빵, 떡과 같은 후식 종류를 기부한다. 급식소 총무 강소윤씨는 "기부에 감사하지만, 급식소에 오는 270~300명에게 전부 주긴 어려운 양이다"라고 했다.

취약계층에 음식을 제공하는 무료 급식소가 한 끼 식사를 차리는 데 이중고를 겪고 있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기부금은 줄었지만 각종 재료비와 난방비 등 지출은 늘었기 때문이다.

원각사 무료 급식소는 문을 연 지 올해 30년째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무료급식을 해왔다. 15평 남짓한 무료 급식소 공간에는 총 22명이 들어와 식사한다. 급식이 시작되기 30분 전부터 탑골공원 안에서 원각사 직원들이 사람들에게 번호표를 나눠준다.

오전 11시 탑골공원에는 아직 녹지 않은 눈 옆에서 60명 넘는 사람들이 무료 급식을 기다렸다. 이 시각 날씨는 영하 3도를 기록했다. 대기 줄에 서 있는 사람들은 전부 패딩을 입고, 모자와 장갑으로 추위를 피하고 있었다.

28일 오전 11시20분쯤 서울 종로구 원각사 무료 급식소에서 급식 메뉴인 비빔밥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유예림 기자

이날 원각사 무료 급식소가 준비한 점심 메뉴는 비빔밥이었다. 그나마 값이 저렴한 재료를 찾아 만든 음식이다. 급식소 측은 원래 김과 김치, 상추, 콩나물만 넣을 예정이었지만 며칠 전 후원받고 남은 불고기를 성인 손가락 두 개 크기로 자르고 잘라 비빔밥에 넣었다.

강씨는 비빔밥 그릇을 보며 "비빔밥에 무 생채랑 표고버섯도 들어갔으면 더 맛있을 텐데 값이 비싸서 그런 재료는 상상도 못 한다"며 "우리가 나이 들어 언젠가 이 급식소를 못하게 되더라도 밥 못 먹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다. 혼자 사는 어르신들한테 꾸준히 밥 잘 드리고 싶은데 경제적 여건이 안 따라준다"고 말했다.

강씨는 "2015년 4월부터 급식소 총무를 맡았는데, 요즘 물가가 많이 올라 힘든 시기"라며 "식사 재료비는 지난해보다 25% 오르면서 무료 급식 한 끼를 차리는데 들어가는 단가도 함께 올랐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16일 기획재정부의 최근 경제동향 12월호에 따르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월부터 11월까지 5%를 넘어 고물가가 계속되고 있다.

28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종로구 원각사 무료 급식소에서 사람들이 식사하고 있다. /사진=유예림 기자

물가는 올랐지만 기부금은 감소하고 있다. 급식소에 따르면 수도 요금, 재료비를 포함한 매달 운영비가 지난해보다 500만원 늘은 반면 기부금은 50% 감소했다.

고영배 사무국장은 "식사 한 끼 단가가 지난해 1000원 안쪽이었는데, 올해는 2000원 가까이 올랐다"고 말했다. 강씨는 "경제가 전반적으로 안 좋다 보니 기부 문의 자체도 안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고 사무국장과 강 총무는 마트나 시장에 가면 조금이라도 저렴한 상품이 없나 살피는 게 버릇이 됐다. 강씨는 "고기뿐 아니라 채소도 비싸서 떨이 상품이라도 있으면 산다"며 "값싼 재료들을 모으고 모아 한 끼를 차린다"고 말했다. 고씨는 "작년에는 한 달에 한 번 소고기 반찬이 나갔다면 올해는 돼지고기 반찬을 만들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역에 있는 참좋은친구들 무료 급식소의 사정도 비슷하다. 1989년부터 무료 급식을 해온 참좋은친구들의 신석출 이사장도 물가 상승의 부담을 호소했다. 신씨는 "재료비가 작년보다 한 달에 300~400만원 늘었다"고 말했다.

서울의 아침 기온이 영하 14도를 기록한 지난 23일 참좋은친구들은 급식소를 찾은 사람들에게 핫팩을 나눠줬다. 한 사람당 두 개씩 주려고 했지만 한 개로 줄였다. 신씨는 "핫팩을 많이 주면 좋지만, 기부금이 줄어 아낄 부분은 아껴야 한다"며 "코로나 3년간 기부금이 매년 30~40%씩 계속 줄었다"고 말했다.

이날 무료 급식소에 찾은 이들은 서로의 밥을 나누며 굶주린 배를 채웠다. 한 남성이 자원봉사자에게 밥을 조금 더 달라고 하자 옆에 있던 남성이 본인의 밥을 숟가락으로 덜어주기도 했다.

왕십리에서 탑골공원까지 왔다는 김모씨(89)는 "자식들이랑 따로 살아 혼자 지낸다"며 "반찬이 어떻든 요즘 힘든데 이렇게 먹을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유예림 기자 yesrim@mt.co.kr, 강주헌 기자 z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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