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목동신시가지 2회 유찰돼 '14.5억' 낙찰… "내년 최악의 한파"

정영희 기자 2022. 12. 29.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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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1일 방문한 서울 양천구 신정동 서울남부지방법원 전경. /사진=정영희 기자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 위해 틈틈이 경매를 공부하고 있어요. 오늘은 참관하러 왔습니다." (서울남부지방법원 경매법정에서 만난 50대 여성 A씨)

지난 21일 서울은 이른 새벽부터 눈이 펑펑 쏟아졌다. 꽁꽁 언 영하 날씨에 길가는 한산했지만 서울남부지방법원 본관 1층의 경매법정 112호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지난해 하반기 시작된 기준금리 인상으로 최근 경매시장에 등장하는 물건들이 많아지면서 좋은 매물을 보다 저렴하게 구하려는 입찰자들의 열기가 뜨겁게 느껴졌다.

법정 개정 시간인 10시부터 기일 입찰표와 매수신청보증 봉투를 챙기려는 사람들이 앞다퉈 줄을 섰다. 남부지법은 영등포·강서·양천·구로·금천구의 매물들이 입찰된다. 이날 경매5계와 경매11계에 나온 물건은 총 95건. 대지부터 아파트, 다세대주택(빌라), 근린생활시설(상가) 등 각종 부동산과 승용차까지 입찰에 부쳐졌다. 한정승인을 받은 상속인이 상속재산을 청산하기 위해 신청한 형식적 경매도 1건 진행됐다.

경매법정 앞 대기 공간은 M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 초반 출생자)로 불리는 20·30부터 50·60세대로 보이는 이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참여자들로 가득 찼다. 30대 남성 B씨는 "관심이 가는 물건이 있어 입찰하러 왔다. 결혼한 지 꽤 돼서 이제라도 내 명의의 집을 사볼까 한다"며 "최근 재태크에 빠진 또래들이 경매에 관심이 많은데 분양이나 일반 매매보다 경매는 목돈이 덜 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눈치싸움도 치열했다. '무슨 매물을 보러 왔냐'는 기자의 질문에 답을 해주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자신이 노리는 매물 정보를 타인에게 알리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였다. 영등포여성인력개발센터의 '법원경매와 재태크' 프로그램 수강생 10여명은 강사와 함께 경매법정 현장방문을 왔다. 해당 프로그램 강사는 "수강생이 매우 다양하다"면서 "실제 낙찰을 받기 위해 실전 경험을 쌓고자 오신 분들, 재테크에 문외한이라 공부를 위해 찾으신 분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경매 참가자들이 입찰 서류를 작성할 수 있도록 경매법정 한켠에는 투표소와 유사한 모양의 부스가 6동 설치돼 있었다. 사진은 입찰표 작성 시 유의사항. /사진=정영희 기자

이날 경매 물건 중 눈에 띄는 것이 있냐는 물음엔 "작년까지만 해도 드물던 아파트가 요즘 경매시장에 쏟아지고 있다"면서 "요즘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는 추세에다 대출 이자까지 오르면서 앞으로 더 좋은 물건이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대리인으로 온 이들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입찰에 당사자가 직접 참여하지 못할 경우 대리인이 경매에 참여할 수 있다. 대리인에게 본인 인감도장이 날인된 위임장과 인감증명서, 대리인의 신분증과 도장이 있으면 낙찰도 가능하다. 현장에서 만난 한 30대 남성은 "지인 부탁으로 대리 입찰을 하러 왔다"며 "경매법정은 처음이라 낯설다"고 말했다.

12월 21일 찾은 서울남부지법 경매법정 112호 내부. 참가자들이 입찰표를 작성하기 위해 뿔뿔이 흩어지면서 개찰 전 법정 안은 다소 한산한 분위기였다./사진=정영희 기자


목동 아파트에 응찰자 6명 몰려… 14억원대 낙찰


개찰은 11시10분 시작됐다. 약 150명 정도가 모인 경매법정 내 대기석은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가득 찼다. 일부 참여자들은 대기석 뒤쪽에 서서 개찰을 기다렸다.

이날 낙찰된 물건은 총 18건이다. 경매5계에선 ▲상업시설 1개 ▲아파트 3개 ▲연립·다세대 2개 ▲오피스텔 1개 ▲자동차 2대, 11계에선 ▲아파트 1개 ▲연립·다세대 5개 ▲근린시설 1개 ▲자동차 1개가 각각 새 주인을 찾아갔다. 낙찰률로 보면 약 19% 정도다.

이날 응찰자가 가장 많았던 매물은 영등포구 문래동 '문래현대5차아파트' 전용 84㎡에는 총 7명이 응찰했다. 최초 감정가 7억2900만원에서 1회 유찰돼 최저 입찰가 5억8320만원으로 떨어졌다. 낙찰가는 6억5489만9999원으로 89%의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을 보였다.

양천구 목동 '목동신시가지14단지' 아파트 전용 108㎡에도 6명의 응찰자가 몰렸다. 최초 감정평가액 19억7000만원으로 경매시장에 나왔던 이 아파트는 9월, 11월의 두 차례 유찰 끝에 14억5789만9000원에 낙찰됐다. 13억6116만원을 적은 탓에 2위가 된 응찰자는 차순위 매수신고를 했다. 낙찰자가 대금지급기한까지 돈을 내지 않으면 제출한 신고가로 매각할 수 있도록 집행관에게 신청하는 절차다.

영등포구 당산동 '쌍용예가클래식아파트' 전용 88㎡도 2회 유찰을 겪고 8억9999만9999원에 매각됐다. 최초 감정평가액이었던 12억5000만원에 비해 3억5000여만원 낮아진 금액이다.

지난 21일 찾은 서울 양천 목동 서울남부지방법원 안내판. 경매법정은 본관에 위치한다./사진=정영희 기자


경매시장 포화상태… "내년까지 이어질 것"


경매시장에 물건이 쏟아지는 것은 대출금리 상승으로 채무불이행이 늘어난 탓이다. 법원경매정보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 11월 전국 아파트 경매 건수는 1904건으로 전달(1472건)보다 29% 늘었다. 지난해 3월(2029건) 이후 1년 8개월 만에 가장 많은 매물이 쌓였다.

강은현 EH경매연구소 대표는 "경매시장은 통상 일반 부동산시장의 흐름에 반비례한다. 집값이 오르고 매매거래가 원활하면 물건 수는 줄어들지만 올해처럼 일반 부동산이 부진한 탓에 집값이 떨어지고 경매 물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면서 "이는 낙찰가 하락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달의 전국 아파트 경매 낙찰률은 33%를 기록해 13년여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낙찰가율 또한 79%로 2013년 5월 이후 처음으로 80%선이 붕괴했다.

강 대표는 "이런 흐름이 내년 하반기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올해보단 2023년 상반기에, 상반기보단 하반기에 더 많은 매물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하며 "일반 부동산에 금리 여파가 바로 미치는 반면 경매는 10개월~1년의 시차가 적용된다. 현재 경매 매물은 올해 7월 한국은행의 빅스텝 여파"라고 분석했다.

정영희 기자 chulsoofrie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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