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칼럼] ‘나쁜 임대인’ 공개로 전세사기 막을 수 있을까

이미호 기자 2022. 12. 2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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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호

타깃은 신축빌라 세입자다. 전월세 보증금은 반드시 매매대금보다 높은 가격으로 책정한다.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받으면 매매대금은 건축주에게 준다. 차액은 내가 갖는다. 그리고 신축빌라는 내 이름 앞으로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한다. 공모한 분양대행업자가 있으면 차액을 나눠 준다.

어떻게 시세를 모를 수가 있냐고? 신축빌라는 거래 사례가 없다. 요즘 같은 부동산 침체기에는 인근 빌라 거래도 적어 비교가 어렵다. 또 신축이다 보니 언뜻 보기에 깔끔하고 살기에 나빠 보이진 않는다. 부동산 거래 경험이 적은 2030세대 등 사회초년생들에겐 더욱 그래 보인다.

이른바 ‘세 모녀 전세사기’의 전말이다. 모친이 무자본으로 500여채의 집을 구입해 딸 명의로 ‘소유권 이전’했다. 검찰 수사 결과, 피해자는 219명 피해액은 497억원에 달했다. 계약 만료된 일부 세입자에게는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겠다며 집을 사라고 제안하는 대범함(?)까지 보였다.

수도권에서 1139채의 빌라·오피스텔을 임대해 속칭 ‘빌라왕’으로 불리던 임대업자 김모씨의 사기 행각을 보면서 떠오른 단상이다. 그가 주목 받은 계기는 다름 아닌 ‘급사’였다. 구상권을 청구할 대상이 사라지면서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대위 변제 작업에 착수하지 못하게 됐다. 인천 소재 수십채의 빌라와 오피스텔을 보유한 20대 집주인 송모씨도 사망하면서 전국 곳곳에서 피해자들이 불어나고 있다.

정부는 전담 조직을 구성해 피해자 지원에 나서겠다고 했다. 하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대응이다. 비슷한 사건은 과거에도 수없이 많았다. 세 모녀가 사기 행각을 벌인 시기는 2017년부터 2020년까지였다. 집값이 조금씩 오르다가 시장의 풍부한 유동성과 초저금리가 만나면서 주식과 가상화폐 열풍이 불었고 부동산 폭등까지 이어지면서 ‘한탕주의’가 확산됐다. 이러한 심리는 ‘갭 투자’라는 투자 방식과 만나면서 ‘무자본 갭투자’라는 범죄를 부추겼다.

그동안 정부는 전세 사기를 단순한 ‘범죄 행위’로만 봤다. 그저 검경 등 수사기관이 단죄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전세 사기는 어렵게 모은 종잣돈을 편법으로 갈취한다는 점에서 민생경제의 근간을 갉아먹는 ‘악성 범죄’이자, 세입자 보호라는 부동산 정책의 대원칙에 정면으로 반하는 사회적 문제다.

부동산은 여전히 ‘정보의 비대칭성’이 강한 시장이다. 그만큼 속임수가 끼어들 여지가 크다. 문외한인 젊은 세입자들에겐 불리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또 제도 공백이 많아서 마음만 먹으면 법망을 피해갈 수 있다. 사망한 20대 송모씨는 등록임대사업자임에도 불구, 보증보험에 가입한 주택이 44채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지만, 상시 단속이 이뤄지고 있지는 않다.

어떻게 전세 사기를 막을 수 있을까. 국회가 이제서야 법을 고쳐 ‘나쁜 임대인’ 인적사항을 공개하겠다고 했지만, 과연 사기를 예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보증기관의 보증심사 요건을 강화하는 것도 결국 임차인에게 손해라는 점에서 적절치 않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집주인의 ‘세금 체납’ 여부를 임차인이 계약 전에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는 계약 후에만 확인 가능한데 (물건이 부실할 경우) 계약금을 날리라는 얘기 밖엔 안 된다.

따라서 정부에서 촉탁 등기를 통해 임대인의 체납 정보를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등기부등본에 기재하는 방안이 해결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마치 국세청이 고액체납자 명단을 공개하는 것처럼 말이다. 세금 체납을 했다는 것은 결국 ‘변제 능력’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임차인이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보 비대칭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공인중개사에게 의뢰한 물건에 한해 확인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등본에만 공개되면 임대인이 직접 확인하면 된다는 점에서 “가장 깔끔한 방법(서진형 경인여대 MD비즈니스학과 교수)”이다.

다가구 주택의 경우, 선순위 임대보증금 현황을 확인할 수 있는 권한을 공인중개사에게 주는 것도 방법이다. 법무부와 국토교통부는 이 같은 내용의 주택임대차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 및 동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 중이다. 다만 등기부등본에 기재하는 내용이 아니라 임차인이 요구할 경우를 전제로 한다.

신축빌라 입주를 고려하고 있는 임차인도 스스로 전세가율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는 등 ‘주의 의무’를 기울여야 한다. 사고가 났을 때 경매를 통해 돌려받을 수 있는지 여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다른 지역보다 싸다는 이유로 무턱대고 들어가는 것은 금물이다.

이미호 부동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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