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명의 작가, 48번의 위로…'3650 스토리지-인터뷰'展
(서울=뉴스1) 김일창 기자 = 끝날 거 같으면서도 끝나지 않는 코로나19 팬데믹. 모두가 힘든 시기, 그 힘듦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직업군에 미술작가가 있다. 작품과 관객과의 대면이 절대적인 작가들에 지난 2년은 어땠을까. 고통으로 점철된 시간 속에 그들을 구원한 건 결국 자기 자신, 그리고 작품 활동이다.
코로나19라는 긴터널을 지나고 있는 미술작가 48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한 서울미술관은 개관 10주년을 기념하는 두 번째 전시 '3650 스토리지(storage) - 인터뷰'를 29일부터 2023년 4월16일까지 개최한다고 밝혔다.
2층부터 시작하는 전시를 3층에서 마무리하면 어느새 따뜻한 위로가 온몸을 휘감는다. 전시명에서 드러난 것처럼 이번 전시는 작가 48명의 인터뷰를 읽어야 그 위로가 배가 된다. 작업실에 종일, 그 시간이 하루, 이틀, 일주일, 한달이 되고, 기약이 없음을 받아들이면서 작업에 열중하는 작가들의 고뇌가 고스란히 인터뷰에서 드러난다. 인터뷰를 읽다 보면 우리와 다르지 않은, 어쩌면 더 힘들었을 그들의 삶이 고스란히 전달되며 공감이 위로로 전이된다.
액자까지 모두 작품인 감성빈 작가는 "포기하고 싶었던 과거를 회상해보니 분노, 열등감, 성취감, 연민, 신앙, 에로스, 욕망, 시기, 질투, 동료, 술, 담배, 핫식스, 가족, 칭찬, 책, 음악...등을 에너지로 삼았다"고 고백한다.
소통의 부재에 관한 경험을 작품으로 승화하는 강소선 작가는 "결승선이 보이지 않는 마라톤을 하는 기분이 들 때 가장 힘들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내 자신을 항상 잘 다독여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버티기 힘들어졌을 땐 그 좋아하는 작업이 너무 밉고 보기가 싫어졌다"고, 하지만 "결국 돌고 돌아 또다시 작업의 길을 가고 있다"고 털어놨다.
'유리드로잉'으로 유명한 황선태 작가는 "공부를 마치고 생활고에 시달릴 때 지금까지 해왔던 일을 멈추고 다른 것을 해야겠구나 생각했던 적이 있다"고 진솔하게 말한다.
다른 45명의 작가들도 이들과 다르지 않다. 뜻대로 되지 않는 작업, 어려운 경제적 상황 등이 자신을 휘감을 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지만 그들은 결국 작품 앞에 섰다. 내면의 고통을 작품으로 승화하는 그들의 헌신이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이유다.
장연호 작가의 '자장가'(lullaby) 미디어 작품은 검은색 옷을 엄마가 검은색 옷을 입은 아기를 안고 있는 장면을 저속으로 촬영해 보여준다. '자장가'란 작품명이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관객은 엄마와 아기의 표정과 몸짓에 온전히 집중한다.
작가의 다른 작품에는 나이 지긋하신 우리네 '아버지'가 등장한다. 흑백화면에 옅은 미소로 눈만 껌벅껌벅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데, 멍하니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얼어붙은 마음이 눈 녹듯 녹아내린다.
전시 포스터의 배경으로도 쓰인 이고은 작가의 작품은 '수채화'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몸을 웅크린 한 여성의 신체 일부를 확대해 보여준다. 감정이 메마른 듯한 표정, 그러나 몸 위에는 청개구리, 달팽이가 놓여 있다. 고독하고 힘든 삶 속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건 '청개구리'와 '달팽이' 때문이 아닐까.
사진작가 안준은 코로나19로 할머니를 잃었다. 코로나19로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세상에 없는 할머니는 그래서 세상에 있었다. 작가는 할머니댁 정원에 서서, 할머니의 유품을 태울 때 비로소 '부재'를 실감했다. 그 과정이 고스란히 작품으로 남았다. 작가는 "계절은 돌고 도는 것이라고 하지만 사진 속의 그 겨울은 함께했던 모든 계절의 끝이었고, 그 너머에 있는 봄, 나무를 심은 이가 떠난 후 처음 맞을 봄을 생각하며 작업했다"고 말한다.
3층에 도착하면 옛 다이얼 전화기 6대와 검은색 공중전화박스가 눈에 들어온다. 설은아 작가의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라는 작품인데, 다이얼 전화기의 수화기를 들면 '공중전화박스'에서 누군가가 남긴 '부재중 메시지'가 흘러나온다. 누구에게도 전하지 못한 속마음, 기자가 수화기를 들었을 때는 한 여성이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었어, 당신한테도 괜찮다는 말을 하고 싶어'라는 말이 읊조리듯 전해 온다. 작가는 전시가 끝나면 수신된 목소리들을 모아 해외 낯선 곳에 놓아주고 오는 퍼포먼스에 나선다.
전시는 호주의 극사실주의 조각가 샘 징크(Sam Jinks)의 작품을 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갓 태어난 아기 둘이 엎어져 마주 보는 모습의 작품에서 생명의 귀함이 다가온다. 몸을 돌리면 어두운 공간 속 갓 태어난 아기를 포근하게 안고 있는 백발의 여성이 고요하게 서 있다. 작가는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데 구상하는 시간을 포함해 최소 5~6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작품도 노인 수백장의 사진을 매일같이 보고 탄생했다.
3층 전시장을 나서면 관객들이 카메라와 화면을 통해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체험 공간이 있다. 이시연 큐레이터는 "의자에 앉게 되면 마치 인터뷰의 한 장면 속에 등장하는 자기 모습을 볼 수 있다"며 "프리뷰 기간에 보니 가만히 앉아서 화면 속 모습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는 분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매일 오후 2시 정규 도슨트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이다. 입장료는 1만5000원, 초중고 학생은 1만2000원, 36개월 이상 미취학 아동은 9000원이다.
ickim@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 "바람난 아내 따귀 때렸더니,이혼 요구하며 문중 땅 절반 달라네요"
- 고현정 "연하 킬러? 남자 배우 막 사귄다?"…연예계 루머에 입 열었다
- "'난 여자 생식기 감별사, 넌 중3때 첫경험' 남편 말에 화내자 예민하다고"
- "평생 모은 4억, 아내가 주식으로 날려 공황장애 와…이혼 사유 되나요"
- "성관계하듯 해 봐"…안산 사이비 목사, 의사 꿈꾸던 13세 감금 '음란죄 상담'
- "마약 자수합니다" 횡설수설…김나정, 결국 경찰 고발당했다
- 12억 핑크 롤스로이스에 트럭 '쾅'…범퍼 나갔는데 "그냥 가세요" 왜?
- 김혜수, 가려도 가려지지 않는 미모…세월은 역행 중 [N샷]
- 동덕여대 강의실 '알몸남' 음란행위 재소환…"공학되면 이런 일 많을 것"
- "'난 여자 생식기 감별사, 넌 중3때 첫경험' 남편 말에 화내자 예민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