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를 ‘사업자단체’ 잣대로 제재…공정위, 도넘은 노동탄압
1인 자영자에 ‘경쟁법 적용’ 않는 게 국제 기준
공정거래위원회가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고용 요구 행위를 ‘사업자단체 금지행위’로 보고 과징금 1억원을 부과했다. 공정위가 전원회의를 통해 특수고용노동자들로 구성된 노동조합을 제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제재를 통해 정부의 특고 노조 탄압 기조가 더욱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공정위는 민주노총 전국건설노조 부산건설기계지부가 다른 사업자단체를 현장에서 배제하라고 건설사에 요구하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레미콘 운송 중단 등 압력을 가했다며 시정명령과 과징금 1억원을 부과하기로 했다고 28일 밝혔다. 건설노조는 고용노동부의 노조 설립필증도 발급받은 합법 노조인데도 공정거래법(제23조 불공정거래행위의 금지)을 적용한 것이다.
공정위는 건설노조의 구성원을 “자기 계산하에 자기 이름으로 건설사와 건설기계 임대차계약을 체결해 임대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대료를 받는 공정거래법상 사업자”라며 이들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 인정된 특수고용노동자이지만 사업자의 지위는 달라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건설노조 행위가 노조법상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정당한 행위가 아닌 한 공정거래법으로 제재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법은 사업자단체가 다른 법률에 따라 행하는 정당한 행위에 대해서는 적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한 공정거래법 제116조가 그 근거로 제시됐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공정위 논리대로라면, 특고 노조의 활동 과정에서 법이나 절차 위반이 하나라도 있을 경우 임금·단체협약 체결도 파업도 모두 공정거래법상 담합이 된다는 의미”라며 “명백한 노조 탄압”이라고 비판했다.
이는 우리 정부가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의 협약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다. 국제노동기구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2012년부터 한국 정부에 “건설 부문에서 특히 취약한 일용노동자들의 고용 조건에 대해 자유롭고 자발적인 단체교섭을 촉진하기 위한 추가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을 권고해왔다.
주요국들도 특고 등 ‘1인 자영노동자’의 노동3권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아무리 법적으로 자영업자 지위에 있더라도 실질적으로 노동자로 판단되는 경우 경쟁법(공정거래법)을 적용해선 안 된다는 것이 국제노동기구와 주요 선진국들의 일관된 견해다. 지난 9월 유럽연합도 1인 자영노동자에 경쟁법을 적용하지 말라는 권고문을 발표한 바 있다.
공정위가 이렇게 무리한 제재를 내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과거 건설노조 시위 과정에서 나타난 각종 ‘불법 행위’가 있다. 우리 법원이 ‘고용 요구’를 단체교섭이 가능한 사안으로 보지 않는 탓에 고용을 요구하며 사측을 압박해온 건설노조의 활동은 줄곧 강요죄, 업무방해죄 등 불법으로 낙인 찍혀왔다.
이 과정에서 이따금 폭력 사태가 발생한 적도 있었지만, 이는 형법을 적용하는 것이 맞다는게 노조 쪽 견해다. 조은석 건설노조 정책국장은 “고용 요구에 대한 교섭이 제도화되어 있지 않다 보니 시위 중 일탈적 행동이 생겼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사건은 고발 건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며 “건설노조 부산지부가 지역 내 레미콘 노동자를 대부분 조직화해 교섭력이 커진 데다, 강요·업무방해·폭력 등 형사적으로도 문제 삼을 것이 없자 정부가 공정거래법까지 꺼내 노조를 압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단기 고용과 실업 상태가 반복될 수 있는 건설노동자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윤애림 서울대 법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우리 법원은 노동자가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사안을 굉장히 좁게 해석하고 있지만, 국제노동기구와 주요 선진국들은 고용 요구 활동도 정당한 조합활동으로 본다”며 “우리나라 건설노동자는 대부분이 일용직이나 계약직이라 극도로 고용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고용 안정은 굉장히 중요한 노동 조건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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