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휘의 서울 오디세이] 北이 쏘아올린 작은 공/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南 징검다리 아닌 인질 삼자는 것
주민 행복 대신 金체제 유지 목적
무인기 이후 더 도발적 행태 우려
‘서울시 낙원구 행복동’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행복동’ 주민이 행복하기를 바라셨던 작가 조세희 선생이 지난 크리스마스 날 유명을 달리하셨다. 행복동이 등장한 ‘난쏘공’이 연작소설 형식으로 처음 출간된 게 1978년, 산업화의 그림자가 서울 구석구석에 짙게 드리워져 있을 때다. 부(富)와 행복은 이분법적으로 작동하지 않지만, 당시 국가 주도의 강력한 성장 드라이브는 많은 문제점을 낳았다. 누군가의 부는 누군가의 가난을 의미했고, 누군가의 행복은 다른 누군가의 불행과 맞닿아 있었다. 조세희 작가에게 평화와 행복은 행복동 주민들의 일상에 맞춰져 있었던 것이다.
44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그제 서울 하늘에 북한 무인기가 날아들었다. 군당국은 북한 무인기가 은평·성북·강북구 일대를 1시간가량 활보했을 것으로 봤고, 우리의 정찰감시 역량으로는 3미터 미만의 작은 기종을 조기에 탐지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조세희 작가께서 44년 전 행복동 주민의 행복에 접근했던 관점과 달리 오늘날 수도 서울의 에너지원(源)인 MZ세대에게 행복은 ‘자유, 공정, 다양성’이다. 북한 무인기가 아직은 조악한 정찰 능력에 그치고 있다고 평가되지만, 불법적이고 악의적인 서울 상공 침입 자체로 우리 젊은이들이 ‘불행’을 생각하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물론 필자는 ‘난쏘공’의 문제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고,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왜곡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올 들어 북한은 가히 전대미문의 미사일 실험에 여념이 없다. 오늘까지 최대 38차례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9월 ‘9ㆍ8 핵법제화’ 발표를 통해 핵무기 사용 원칙을 스스로 설정했다. 이를 두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핵무력 고도화’라는 점에 공감하고 있다. 세 가지 목표가 순차적으로 결합한 상황인데, 핵무기 사용 정당성을 위한 법제화를 마쳤고, 미사일 포함 다양한 투발수단을 개발해 결과적으로 주변이 우려할 ‘핵무력 고도화’를 이룩하겠다는 전략이다.
오랜 기간 북한에게 남한은 ‘미국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였다. 철 지난 용어지만 ‘통미봉남’(通美封南)에서 알 수 있듯이 본인들이 절실히 바라는 안보를 제공해 줄 수 있는 미국과의 담판을 위해 남한이 필요했던 것이다. 지난 정부 5년 동안의 남북 관계가 이를 설명하는 측면이 있다. ‘핵사용 법제화’를 통해 북한은 이제 전략을 수정했다. ‘징검다리’가 아닌 ‘인질’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남북 간 정치체제의 차이가 얼마나 심한지를 잘 아는 북한은 한국의 국가안보는 대다수 일반 국민들의 안녕과 행복에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고, 핵능력 고도화는 북한의 체제 보장이라는 목표에 가장 효과적으로 부합한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 사회의 보편적인 국가안보는 북한 대중들의 안녕과 행복보다는 집권세력의 권력 유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 사회 일각에서 제기하는 자체 핵개발 주장은 설득력이 크지 않다. 오히려 워싱턴 정가에서 제기하는 ‘왜 확장억지력을 의심하는가’라는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1978년의 ‘난쏘공’ 소설집에는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는 연작 단편소설이 있다. ‘은강’이라는 회사에 다니는 영희 가족의 안타까운 곤경을 감동적으로 전하고 있다. 1993년 북한의 NPT 탈퇴 선언 이후 한국과 국제사회가 물론 ‘신’은 아니지만, 지난 30년 동안 북핵 문제에 더 근본적으로 접근하지 못한 우리의 책임도 작지 않다. 서울 상공으로 무인기를 보낸 북한의 다음 선택은 더욱 도발적일 수밖에 없고, 북한 대외전략의 마지막 카드들도 서서히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끝으로 평생 약자들 편에서 인간의 진정한 자유의지와 행복을 기록하신 조세희 선생님의 큰 발자취에 깊은 존경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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