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산의 시선] 내 집으로의 귀환

조은산·'시무 7조' 청원 필자 2022. 12. 29.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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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 살기 위해 국밥을 끓이던 아버지… 밤늦게야 오시던 어머니
이제 아내의 밥이 더 맛있어 진 건 아내도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일까

결혼이 곧 최고의 행복은 아니겠지만, 그 나름의 가치와 삶의 영위라는 기쁨은 분명 존재하기 마련이다. 늦은 퇴근을 마치고 현관 앞에 섰을 때, 내 부재의 틈새로 흘러나오는 그리운 이들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것. 그리고 문을 열었을 때, 그 조그만 머리를 대롱거리며 쏟아져 나오는 어린 것들을 품에 안는 것. 그러한 일상 속 작은 행복이 나의 귀환을 인도하고 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안정감에 젖어 든 나는 희망을 안고, 겨우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가 잠을 청할 수 있던 것이다.

그러나 가끔, 아주 가끔은―반복되는 일상 속의 이 모든 것이 버겁게만 느껴지는 출근길 아침이거나, 그렇게 나고 살다 죽는 게 곧 인생이냐는 실존적 허무에 휩싸이게 된 어느 무력한 날의 오후라든가, 썰물이 휩쓸고 간 바다처럼 황량해진 급여 계좌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짓고 마는 매월 25일의 빈곤한 저녁이라든가 그런 날에는 꼭 한번―왠지 모를 고독과 삶에 대한 중압감에 빠져들게 되어 나는 다시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고 마는 것이다. 이제는 사진 속에만 존재하게 된 그 낡고 좁은 벽돌집, 생계 수단이었던 조촐한 식당, 그리고 그 안의 삶에서 각자 기쁨과 슬픔을 간직하게 된 네 식구의 아련했던 겨울을 말이다.

나는 그려 넣고 있었다. 모든 게 불편하기만 했던 그러나 모든 게 가능하기도 했던 가난의 백지 위에, 햇살로 가득했던 작은 마당과 그 위로 빛나고 있던 모든 것을. 살기 위해 온종일 국밥을 끓여야 했던 아버지의 땀 구슬, 거인의 한숨처럼 쏟아지는 입김과 흩어지던 당신의 꿈. 크게 다투시는 날에, 어머니의 눈 밑으로 돋아나던 맑은 고드름과 작고 어린 나의 소망까지도.

그리고 그날 밤에는 소리 없이 내린 눈이 마침내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밤늦도록 오지 않는 어머니를 찾아 마당을 가로질러 달려 나갔던 것이다. 가게 일을 모두 마치고 겨우 집에 올 수 있었던 어머니는 그 길에서 만난 나를 꼬옥 안아 주었던 것이다. 아들, 하고 어머니가 말했을 때, 심장으로 전해지는 또 다른 심장의 기쁨과 슬픔의 말들을 나는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연이었을까. 다시 오른 퇴근길에서, 이러한 생각에 젖어 멍하니 앞차의 미등만 바라보던 내게 아내의 전화가 걸려온 것은. 깜빡 잊었다는 투의 그녀가 ‘어머님이 무말랭이 담그셨나 봐. 아이들 주시려고 장조림도 하셨다는데, 오는 길에 들러서 받아 와요’라고 말했던 것은. 그리하여 나는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원래 내가 있던 곳으로.

다시 눈이 내리고 있다. 세상 모든 풍경을 지워낼 것처럼 쏟아지는 눈은 시간마저 거꾸로 되돌리는 듯하다. 나는 다시 어머니에게 달려가려 한다. 그 길 위에는 국솥을 젓고 있는 아버지도 있을 것이다. 내 나이의 아버지가 나를 보며 이렇게 말하겠지. ‘먹고산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더냐. 가라. 넌 아직 멀었으니.’ 나는 아버지에게 술을 줄이라는 당부만을 남겨놓겠다. 이제 저 모퉁이를 돌면 헐거워진 경첩의 삐걱대는 문이 나올 것이다. 저 문 너머에서 어머니가 환히 웃으며 서 있을 것이다. 문이 열린다. 세월의 눈이 내려앉은 어머니의 머리칼이 새하얗다.

아들…. 이제 온 거여…? 밥 줘…? 그려….

그러나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겨울의 기억이 선명해지는 만큼, 내가 있어야 할 곳에서 나를 기다리는 이들의 모습 또한 선명해졌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잖니. 어머니가 식사를 마친 아들의 등을 애써 밀쳐낸다. 작은 반찬통이 손에 들렸다. 무말랭이는 아내가, 장조림은 아이들이 좋아할 것이다. 이제야 들리는 듯하다. 그 겨울의 어머니는 그래도 우리 살자고 말하고 있었다. 이제야 알 것 같다. 아버지는 국솥과 싸우는 게 아니라 세상과 싸우고 있었음을. 그래, 내 생의 전초기지는 삶의 후방이 아닌 전방에 있다.

그렇게 나는 다시 귀환하였다. 첫째 녀석은 어머니의 장조림이 맛있다고 난리다. 둘째 딸아이는 ‘맛이가 엄따’며 퉤퉤 뱉고 있다. 무말랭이를 씹던 아내의 눈이 커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아내에게―어머니 집에 다녀왔다고, 어머니가 차려준 밥을 먹고 왔다고, 그러나 이제는 당신이 해준 밥이 더 입맛에 맞게 되었는데, 그것은 당신 또한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이겠지, 라는 마음속의 어리숙한 말들을―내 가슴과 어깨 위로 뛰어오르는 아이들을 안고 달래려는 바람에 차마 꺼내놓지도 못했던 것이다.

다시 눈이 올까? 나는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창가에 비친 내 머리에도 어느덧 새치가 듬성듬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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