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조세희 연말

기자 2022. 12. 2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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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2022년 크리스마스날 우주로 떠나신 조세희 선생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20세기 한국문학사가 산출한 위대한 작품이다. 이 기묘하고 아름다운 소설은 아시다시피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탁마된 한국어 문장으로 짜여 있다. 흔히 철거민촌에 산 장애인 빈민 가족의 고난을 쓴 우화로 읽히지만, 그보다 훨씬 큰 현실의 주제를 담았다.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적대와 그 지양의 방법에 대해 쓴 것이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숭배 애도 적대> 저자

특히 <난쏘공>의 후반부는 1970년대에 본격화되던 한국식 재벌-자본주의와 그에 대한 ‘노동’의 저항에 대한 것이다. 재벌과 그 2세로 표상되는 새로운 종류의 ‘경제동물’(호모이쿠노미쿠스)이 노동자와 인간의 모든 것, 영혼과 존엄까지 짓밟자 세상에 대해 깊이 고뇌하던 난장이의 아들/ 노동자는 칼을 들고 가 재벌을 찌른다. 작가는 이런 행위의 맥락과 결과에 대해 깊고도 아프게 검토한다. 그의 세계관이 여실히 담긴 이는 계급적대와 비인간화를 종식시킬 해방과 사랑의 아이러니컬한 방법이다.

이 현대의 고전이 앞으로도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교실에서 계속 읽히기를 바란다. 예술적 상징화와 현실의 복잡한 관계를 사유할 수 있는 수준 높은 교재로서, 또 한국이란 나라의 현실과 한국어 문장쓰기의 궁극에 대해 익히는 텍스트로서 말이다. 아, 그렇다면 젊은사람들뿐 아니라 한국의 성인들도 둔해진 마음과 정신을 갈기 위해 <난쏘공>의 한 문단 한 문단을 다시 읽을 필요가 있겠다.

신중한 완벽주의자의 태도를 갖고 있었던 조세희 선생은 ‘과작 작가’로 유명할 정도로 작품이 많지 않았지만, 시간을 초월해서 통용될 핵심을 찔렀다. 27일자 <김용민의 그림마당>에도 인용된 <난쏘공>의 한 구절을 나도 새겨보고 싶다. “이 시간부터 우리 가슴에 철기둥 하나씩을 심어넣자. 무슨 일이 있어도 쓰러지지 않을 철기둥을 박아두고 어떤 어려움이 와도 버텨내면서 빛이 보이는 곳으로 달려가야 한다.”

10·29 이태원 참사 뒤에는 지하철을 탈 때마다 사람들의 동작, 호흡, 부대낌이 모두 새삼스럽고도 힘겹게 느껴진다. 여전히 얼굴을 가린 마스크와 껴입은 겨울옷 때문에 더 그렇다. 보통의 사람들은 하루하루의 힘겨운 노동과 모욕을 견디며 살아간다. 10월29일 이후의 세상은 좀 더 어둡고 기괴해진 듯하다. 나도 너도, 또는 20년 남짓밖에 살지 않은 젊은 자식들도, 멀쩡하게 ‘다녀올게요’ 하고 나갔던 일터에서 또는 거리 축제에 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 또 혹 그런 일을 당하고도 억울하고 절통한 마음을 말 못하고 감추어야 하며, 참사의 책임을 묻거나 인간으로서 슬픔을 나누고 이야기하는 일이 공권력과 대통령 심기 경호부대의 공격을 받고, ‘시체 팔이’ ‘참사 영업’ 같은 무참한 비난을 감당해야 한다.

‘국민통합’의 이름으로 이명박, 김기춘, 남재준 등등이 풀려나 ‘자유’를 얻고 수십 억원의 벌금도 탕감 받았다. 민주노총 화물연대 노동자들은 생존권을 주장하고 정부가 지키지 않은 약속에 항의했다는 이유로 수십명이 구속되거나 수사를 받고 있다.

지난여름 거제 옥포조선소에서 철제 감옥을 스스로 만들어 자기를 가두고 31일을 굶고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 외쳤던 비정규직 용접 노동자 유최안은, 12월27일 또 단식농성을 하다가 쓰러졌다. 이번에는 더불어민주당 당사에서였고 노조법 2·3조 개정을 호소하던 중이었다. 정권과 가진 자들은 법의 이름으로 또 이 시대 난장이들의 입을 틀어막아 가두고 죽게 하고 있다.

선생이 이를 보았으면 뭐라고 했을까? 오늘날 한국의 현실과 그 안에 쭈그린 우리의 비루함의 원인에 대해 <난쏘공> 개정판 서문에 있는 문장을 또 떠올릴 수밖에 없다. “혁명이 필요할 때 우리는 혁명을 겪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자라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조세희 선생이 남기고 간 글과 말들은 시민사회단체에서 일하는 이들과 읽고 쓰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아픈 죽비가 된다. 우리가 <난쏘공> 연작 <칼날>에 나오는 평범한 주부 신애나 고뇌하던 난장이의 아들처럼 작은 이웃과 노동자 동료들을 위해 칼을 들고 나설 수는 없다 해도, 우리의 내공이 조세희의 글과 카메라의 경지에 전혀 이를 수 없다 해도, 그 스승은 글과 정신의 어떤 명확한 기준을 유산으로 남겼다.

그것만이라도 소중히 생각한다면 이 혼세(混世)에서 다행이 아닐까. 모두 올 한 해 수고 많으셨지만 내년에도 정성을 기울여 같이 어두움을 버텨야겠다. 서로 격려하며 조금이라도 나아져야겠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숭배 애도 적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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