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유목민

기자 2022. 12. 2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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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 말고 유목민. 집은 텐트여도 만족해. 자녀들 독립시키느라 집 장만에 가난해진 부모들이 많은데, 유목민은 텐트 하나 건네면 끝. 북극권 툰드라 지방에 사는 유목민 ‘네네츠’는 순록을 방목하며 ‘춤’이라는 텐트에 거주한다.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순록 가죽을 뒤집어씌우면 그걸로 건축 끝. 집시나 보헤미안이라 불리는 유목민 ‘롬’은 유럽을 떠도는 친구들. 롬은 마차에서 주로 생활해. 개암나무 휘어진 가지를 마차 위에 고정하고 가죽을 얹으면 ‘바르도’라 불리는 마차집 완성. 동남아시아 바닷가엔 ‘사마바자우’란 유목민이 살아. 목선이자 집인 ‘레파’에서 수상생활. 지붕은 야자수 이파리를 주워다가 엮고, 요샌 해안가에 기둥을 박아 집을 정박해. 나무를 깎아 유리를 넣어 수경을 만드는데, 그걸 안경 삼아 잠수하면 물속도 제 집.

몽골에 가면 둥그렇게 생긴 텐트 ‘게르’에 사는 유목민을 쉽게 볼 수 있어. 자작나무로 만든 뼈대 위에 양털 가죽이나 천을 덮어 완성. 돌을 달궈 ‘허르헉’이란 전통요리를 해 먹을 땐 온 식구가 빙 둘러앉는다.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 가면 ‘투아레그’라는 유목민이 있다. ‘자유로운 자’라는 뜻의 ‘이모하그’라는 별칭으로도 불리지. 염소 가죽을 이어 붙인 지붕에 태양열 전지판을 올려놔 라디오나 전자제품도 사용 가능. 요즘 아이들은 휴대전화 충전에 사활(?)을 걸더구먼.

한 해가 저물어 간다. 다음 해라는 시간 여행을 떠나는 유목민이여. 재벌 집 막내아들이 아닌 당신은 유목민이어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어디라도 맘 편히 드러누워 코를 드르릉 골면 내 집. 온갖 자물쇠와 외워두어야 할 비밀번호, 애지중지 물건들로 머리가 다 복잡해. 날마다 주차하기가 세계전쟁, 차량의 조그만 흠집에도 고성과 멱살잡이. 부디 마음만은 유목민 되어 새해를 맞이하시길.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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