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이제 좀 멋스레 진중하면

구영기 전 생명그물 대표 2022. 12. 2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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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영기 전 생명그물 대표

사람들이 너무 가볍다. 생각이 너무 가볍고 너무 가벼이 움직인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판단과 행동이 늘 옳다는 생각에는 또 단호하다.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없다. 나이가 들수록 더 딱딱하게 굳는 사고는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너무 이른 노화가 심각하다.

자갈치 패션으로만 여겼던 고무장화를 어느 날 젊은 멋쟁이들이 뜬금없이 신고 다닌다. 발이 빗물에 젖지는 않겠지만 당연 땀 차고 고무 냄새가 밸 거다. 걸음걸음 불편할 텐데도 잘들 신고 다니더니 금방 시들해진 것 같다. 또 내 눈에는 암만 봐도 내복 차림으로만 보이는 좀 민망한 옷으로 몸매를 드러내며 아무렇지 않게 입고 다니더니 이제는 자다가 바로 뛰쳐나온 듯한 헐렁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있다.

자본은 그지없이 다정한 표정으로 다가와 잠시도 쉬지 않고 속삭인다. 자본은 옷이 낡아서 버릴 때까지 기다리지 못한다. 깃을 좁혔다 넓혔다 옷 뒤를 텄다 옆을 텄다 가랑이를 넓혔다 좁혔다 해 가며 새 옷을 기어코 사지 않고는 못 배기도록 만든다. 집단 마법에 걸려 동참할 때까지 위안하며 끈질기게 꼬드긴다. 자신의 주의가 단단하지 않으면 여지없이 유행에 휩쓸려 나부끼게 된다.

그 마을 사람 아니면 몰랐을 팽나무가 단지 드라마에 등장했다는 이유로 조용한 시골에 난리가 났다. 어마어마한 구경꾼들이 몰려 그 마을뿐만 아니라 주변 도로까지 몸살을 앓는다. 벽화가 등장하고 안내판이 붙고 마을 사람들이 나서 주차 정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곤혹 상태다. 가족 단위로, 또 단체로 안 가본 사람이 드물 지경이다. 그걸 보러 왜들 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 말고도 우리나라에 멋진 나무는 천지다.

무슨 무슨 영화를 찍은 세트장이라고 사람들이 부러 찾아가고 인증샷을 찍어댄다. 그런 영화가 있는지도 모르는 나로서는 그게 뭐 대단한 사건인가 싶은데도 오히려 지자체가 나서서 안내판을 걸고 홍보를 한다. 그러나 그 약발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금방 망가지고 구질구질 낡다가 폐물로 전락하고 만다. 자랑할 거리가 그리 없는가?

유명 배우가 왔다고 군중으로 인산인해다. 사실 배우는 영화 속에서 맡은 배역을 천연덕스레 연기할 뿐 더도 덜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 배우를 우상처럼 여기고 추종하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영화에서 본 그이는 꼭 그 공간과 시점일 뿐 현실에서는 다른 사람이다. 영화에서 한 멋있는 역을 열연했다 해서 늘 그런 사람인 것은 아니다. 안 그런가?

어느 배우가 이런 말을 하고 철학이 저러하며 성품까지 훌륭하다고 추앙하는 글들이 SNS에 떠돌아다니는데, 굳이 연예인 아니라도 존경할만한 사람들은 그만큼 있다. 또 사람이란 게 늘 훌륭할 수만은 없어 가끔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너무 환장하다 보면 실망할 일이 꼭 생긴다. 그냥 고만고만한 사람으로 이리 사는 일이 나는 좋다.

잘 알려진 연기자가 소개하는 상품은 무턱대고 믿어도 되나? 그 사람은 대가를 받고 그 제품을 광고하는 역을 연기할 뿐이다. 그런데도 누구누구가 선전하는 물건이라며 아무런 의심 없이 구매한다. 제품 성능과 연기자 유명세는 어디에도 상관관계가 없다. 그런데도 맹목적이다.

인기라는 것은 마치 바람에 날리는 검불과도 같아서 알고 보면 실로 허망하기 짝이 없는 허상이다. 한때 손오공처럼 머리카락으로 요술 부리나 싶을 정도로 이 방송 저 방송 도배를 하던 연예인도 어느 날 한순간 만인의 시선에서 지워진다. 세상은 생각보다 냉정하다. 산더미 같던 거품도 꺼지면 한 줌 액체였을 뿐이다. 인기 절정을 구가하던 연예인 심정이야 얼마나 기가 찰 것인가. 마음 아프다.

광고라는 것도 그렇다. 지금 좀 인기 있는 연예인은 값비싼 물건을 팔고 또 금방 돌아서서 다른 고급품을 바꿔가면서 파는데 잊힌 옛 연예인은 아주 가끔 뭣한 것을 달여 짠 건강보조식품이나 할인해서 들고 올 뿐이다. 마음이 짠하다.


뭐 그게 당연한 세상 이치 아닌가 하겠지만 쉬이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이 모든 사달에는 자본의 농간이 숨어 있다. 곧 해가 바뀐다. 내년에는 다들 생각이 깊어지고 진중해 마냥 휘둘리지 않고 더 멋스러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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