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후회의 문법
한 해의 끝자락에 설 때마다 시간의 오묘함을 새삼 느낀다.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가는데 한 해는 어김없이 다시 시작된다. 그 불가역성과 순환성의 교차점에서 우리는 삶의 한 매듭을 지을 수 있다. 이 무렵 마음의 풍경은 어떤 모양과 색채로 그려지는가. 뿌듯함보다는 아쉬움이, 감사보다는 원망이 짙게 배어난다면 왜 그런가.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쇼핑을 권유하는 상투어 가운데 하나다. 그 말을 믿고 카드를 긁었는데 곧 충동 구매였음이 드러나기 일쑤다. 상품의 선택이라면 비교적 간단하게 털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주식이나 가상통화 투자, 주택 구매, 학과나 직장 선택 등의 경우에는 탄식이 깊다. 미련과 집착에 시달리고 이불킥으로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손실을 만회하거나 진로를 바꾸는 데 시간과 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훨씬 더 뼈저린 회한이 있다. 사람들이 죽기 전에 후회하는 것들이다.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 것, 몸을 돌보지 않은 것, 여행을 많이 하지 못한 것, 도전적으로 살지 않은 것,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것, 일에 몰두하느라 가족들을 소홀히 대한 것, 친구들과 자주 연락하지 못한 것, 누군가와 화해하지 않은 것…. 무엇인가를 ‘해서’가 아니라 ‘하지 않아서’ 후회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삶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과 우애를 나누지 않은 것을 애석하게 여기는 것이다.
인간이 후회할 수 있는 것은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고 거기에서 스토리를 창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허구를 지어내는 능력은 인간에게 주어진 고유한 능력이다. 그 상상력이 과거에 발목 잡히지 않고 미래를 창조하는 원천이 되면 좋겠다. 다니엘 핑크는 <후회의 재발견>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후회를 경험하는 능력은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가 사건을 다시 쓰고, 원래보다 더 행복한 결말을 만들어내는 상상력에 달려 있다. 후회에 반응하고 그것을 좋게 활용하는 능력은 우리의 내러티브 기술에 달려 있다.”
후회는 ‘정확하게’ 그리고 ‘짧게’ 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자신의 불찰을 명료하고 정직하게 인식하되, 부정적 감정은 빨리 털어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지인들과 함께 성찰하면 효과적인데, ‘실패 박람회’의 형식이 유용하다. 회사에서 정기적으로 모든 임직원이 그동안 실수했던 사례들을 하나씩 진열해보자. 가정에서도 부모와 자녀가 함께해보면 새로운 말문이 트일 수 있다. 저마다 경험을 나누다 보면, 감추고 싶은 시행착오들이 오히려 배움의 선물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아울러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으면서, 실패와 평가에 대한 두려움을 줄일 수 있다. 휴지통에 넣고 싶은 기억들이 가득 떠오르는 연말, 슬기로운 송구영신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허상에 도취되어 우쭐대거나 정반대로 상투적 자기 비하에 빠지는 마음의 습관과 헤어지기로 결심하자. 괜찮은 것과 괜찮지 않은 것을 제대로 분별하고, 내가 책임질 것과 세상을 탓할 것 사이의 경계를 긋자. 스스로를 엄격하게 대하면서도 너그럽게 보듬어주자. 삶의 안과 밖이 연결되는 통로, 온전한 자아에 이르는 입구가 거기에서 열린다.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이해하는 것이 지혜라면, 내가 전부임을 깨닫는 것이 사랑이다. 그리고 그 둘 사이를 오가며 내 삶은 나아간다.”(니사르가닷따 마하라지)
김찬호 성공회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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