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 공장 영화, 복붙 정권 그리고 식상한 칼럼

이용욱 기자 2022. 12. 2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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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영화라는 말이 있다. 전개와 결말이 비슷비슷한 할리우드 장르영화 등을 일컫는다. 고유의 색깔이나 주제의식이 없으니 자극적 내용과 물량공세로 뒤덮인다. 이런 영화들은 두번 세번 보면 질리게 마련이다. 윤석열 대통령을 보면서 공장 영화 감독이 떠올랐다. 운 좋게 입봉은 했지만, 경험도 역량도 부족하다. 사람이라도 잘 써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 실패의 책임이 있는 인사들로 주변을 채웠다. 집권 후엔 박근혜 정부 과오들을 복붙(복사·붙여넣기)하며 ‘국정’ 영화를 만들고 있다. ‘하늘이 낸 사람’을 자처하지만 흥행 실패의 공식을 따라 하고,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는 듯하다.

이용욱 논설위원

이 발상은 국민의힘 윤핵관들에게 빚졌다. 윤핵관들의 무소불위 행태가 친박들의 호가호위를 연상케 했고, 윤석열 정부가 박근혜 정부를 닮아간다는 데 생각이 미친 것이다. 윤 대통령 지시를 받은 윤핵관들이 비판여론을 무시하고 ‘당원투표 100%’ 당헌 개정을 밀어붙인 게 대표적이다. 민심에서 앞서나 윤 대통령이 싫어하는 유승민 전 의원을 배제하기 위해서란다. 화 잘 낸다는 윤 감독이 고함치자, 윤핵관 스태프가 실행하기 급급한 꼴이다. 박근혜 청와대가 2016년 총선 공천에 적극 개입하고, 당시 대표였던 김무성 전 의원을 무력화한 장면이 오버랩됐다.

당직도 없는 ‘윤핵관’ 장제원 의원은 2선 후퇴 선언을 잊은 듯 전당대회 큰손으로 등장했다. 장 의원이 SNS 등에서 던지는 말들은 또 다른 윤핵관 정진석 비대위원장의 공식 석상 발언보다 더 크게 울려 퍼진다. 목소리와 덩치는 비례한다는데, 거구의 정 위원장 목소리를 압살할 만큼 장 의원 목청이 좋은 것은 아닐 터다. 대통령과의 친밀도가 권력으로 여겨지다보니, 이런 비정상적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윤핵관들을 동원해 ‘내부총질하는’ 이준석 전 대표를 몰아낸 행태는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가 ‘배신의 정치’라며 당시 원내대표인 유 전 의원을 쫓아낸 것과 닮았다. 공교롭게도 유 전 의원은 친박에게도, 윤핵관들에게도 찍혔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라지만, 그로선 얄궂은 운명을 탓할 법도 하다. 유 전 의원 처지는 합리적 보수를 받아들이지 않고, 탄핵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여당의 한심함을 보여주는 증거일지 모른다.

재난에 대한 책임회피도 두 정권은 닮았다. 이태원 참사로 158명이 죽었지만, 윤 대통령은 사과하지 않았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여권은 맘대로 애도기간을 정하고 침묵을 강요하더니, 맘대로 추모를 끝내려 한다. 몇몇 윤핵관들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한다는 망언을 했다. 세월호는 교통사고이며, 유족들이 떼를 써 국정에 방해가 된다고 했던 박근혜 정부 인사들이 떠오른다.

여권 관계자들은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반면교사 삼아, 윤석열 정부는 강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49일 추모제에 불참하고 중소기업 관련 행사를 찾아 술잔을 사고 농담까지 건넨 것을 보면 윤 대통령 생각도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세월호가 박근혜 정부 몰락의 단초가 된 것은 책임을 뒤집어써서가 아니다. 책임을 피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태원과 세월호를 연결짓지 않으려 했던 사람들도 ‘세월호 때처럼 당하지 않겠다’는 여권의 악다구니를 보면서 오히려 세월호를 떠올리고 집권세력의 자격 없음을 실감하게 됐다. 이런 걸 자승자박이라고 한다.

비선, 권력사유화 논란도 그대로다. 박근혜 정부 최순실이 대통령 연설문 작성, 내각·청와대 인사에 개입한 사실 등이 밝혀지면서 국민들은 아연실색했다. 윤석열 정부에선 김건희 여사와 인연 있는 특정 업체가 수의계약으로 관저공사를 수주했다는 의혹 등이 제기됐다. 후배, 친구 부인 등을 거리낌 없이 장관 등 고위공직자로 임명하는 대통령 인사 스타일도 권력사유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두 정권이 닮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창의력도 공감능력도 없는 감독, 감독 눈치나 살피는 스태프가 존재하는 한 뻔한 영화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잠시 지지율 올랐다고 기세등등할 때가 아니다. 실패한 정권에서도 지지율 반등은 있었으나, 그것이 교만과 오판을 강화하는 독이 됐다. 관객과 교감하지 못한 영화가 망하듯 경청, 소통 없이 성공할 수 있는 정권은 없다. 그나저나, 식상한 영화를 평가하다보니 식상한 칼럼이 된 듯하다. 명필이 붓 가리냐는 말도 있지만, 영화의 질이 너무 낮았다.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이용욱 논설위원 wood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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