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예술은 ‘시대’를 잊어선 안 된다
영국의 현대미술 전문지 ‘아트리뷰(ArtReview)’는 매해 12월쯤 ‘파워 100’ 명단을 선정·공개한다. 작가와 큐레이터, 갤러리스트 등 미술 관련 모든 분야를 아우른다. ‘파워 100’은 2002년 시작되었으며 전 세계 문화예술계 인물들, 그들의 활동과 영향력 등을 평가해 순위를 매긴다.
눈에 띄는 건 서열처럼 비치는 순위가 아니라 ‘파워 100’의 선정 기준이다. 권위와 역사를 자랑하지만 작가의 평판 정도로 봐도 무방한 여타 매체들과 달랐던 때문이다. 일단 ‘아트리뷰’는 예술활동의 지속성을 토대로 1년간 국내외 미술계 가교 역할 및 작가 발굴·지원 등에 힘쓴 글로벌 예술인에 주목한다. 작품의 미학적 성과와 미술사적 비중도 무게 있는 척도다. 한국처럼 미술시장에서 작품이 얼마나 팔렸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가장 눈여겨볼 잣대는 예술의 존재 이유를 비롯해 사회와 예술, 예술과 권력 등의 본질적 질문에 응답하는 예술인(작품)을 선정한다는 점이다. 권력은 도전받을 때 실체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 루앙루파(ruangrupa)가 한 예이다. 이들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기반 비영리 예술가 그룹으로 올해 ‘파워 100’ 1위에 올랐다. 얼마 전 막을 내린 ‘카셀도큐멘타15(Kassel Documenta15·6월18일~9월25일·사진)’ 총감독을 맡은 경력이 큰 영향을 미쳤다.
루앙루파가 기획한 ‘카셀도큐멘타15’는 균등한 분배, 공존, 참여를 내건 ‘룸붕(lumbung)’을 주제로 했다. 공동체 및 집단에 의한 합작 생산과 관계자들 간의 수평 및 공통의 구조 건설을 전시로 풀어내 호평을 받았다. 전쟁, 난민, 차별, 소수자, 장애, 환경오염 등 결코 가볍지 않은 사회·정치적 의제를 다루면서도 각각의 주체 간 평등과 상호성이라는 민주적 태도를 중시했다는 게 특징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살아 있는 권력’의 자기 선택 편향성에 의한 억압을 경험해야 했다. 개막과 동시에 ‘반유대주의’ 논란이 불거지자 카셀 안팎의 권력층이 권력 유지를 위한 위계와 강제라는 속성을 고스란히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는 당대 권력이 특정한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정치, 종교, 인종, 국가, 예술 관련 문제가 복잡하게 얽힌 ‘논쟁의 장’이 되었어야 할 도큐멘타는 반유대주의 논란 이후 이데올로기를 덧씌운 통제와 검열의 장으로 변질됐다. 루앙루파 입장에선 이런 현실이 썩 달가울 리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배타적이고 보수적인 권력행태에 도전했다. 덕분에 문화이국주의에 편승한 담론의 편중성에서 벗어난 ‘주변의 주체화’와 더불어 도큐멘타를 기성 권력에 저항하는 사회적·정치적 글로벌 투쟁의 무대로 이끈 기록을 남기게 됐다.
작금 한국 사회에도 정치권력의 강제성, 부조리, 권력의 회활(獪猾), 지배의 욕망 등이 부유한다. 구조적 권력으로 인해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마저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럴 때일수록 예술은 다중지성의 참여와 논의의 필요성, 대중의 목소리를 산포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누구보다 앞서 어떤 사안에 서로 의견을 내어 토의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옳다. 그게 예술이고, 예술은 ‘시대’를 잊어서는 안 된다. 예술은 내가 발 딛고 살아가는 사회를 제대로 반영하고 발언할 때 보다 더 가치 있다.
홍경한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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