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가족국가와 어른의 어리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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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이 특이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국가를 이렇게 큰 가족처럼 상상하면서 일부 시민은 국가나 통치자를 아버지나 어머니처럼 여기며 자신은 어린아이로 남으려 한다.
스스로 어른이 돼 자신의 가족을 챙기기보다 국가와 가족의 보호 속에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리며 인생을 보내고자 한다.
수많은 형과 누나, 수많은 전문가, 멘토, 점술가가 지도하고 보살펴주는 상상의 '가족국가' 속에서 살면서 사람들은 '어리광'이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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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이 특이했는지 모르겠다. 그곳에선 아이들이 나이 많은 사람에게 그냥 이름만 불렀다. 형이니 누나니 오빠니 하는 경우가 없었다. 아저씨니 아주머니니 하는 말도 친척에게만 사용했다. 이후 서울로 이사를 왔더니 초등학교의 상급생들이 내가 형이라고 안 부른다고 야단쳤다. "내 형도 아닌데 왜 너를 형이라고 부르라는 거야?" 난 나대로 화가 났다. 몇 년 뒤 고향에 내려가니 거기서도 이제 "형"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게 됐다.
나는 이러한 변화가 한국 사회가 추구한 '혈연민족주의'의 결과가 아닐까 의심한다. 특히 제국주의 일본으로부터 배운 '가족국가' 이념 때문이 아닐까 추측한다. 일본의 '가족국가'는 쉽게 말해 한 나라에 살고 있는 시민들은 모두 같은 조상을 둔 큰 가족이라는 상상이다. 그들 일본인은 모두 아마테라스 여신의 몸에서 나온 피를 나눈 혈족으로 종가인 '천황가'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야 한다는 것이다. 19세기 말 이후 일본은 '가족국가'라는 이념 아래 나라 전체를 하나의 큰 가족으로 상상했고 그 결과 타인을 형, 누나, 아저씨, 아주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심지어 아버지, 어머니로 부르게 됐다.
한국에선 민족주의 성향의 좌파 정치가들이 이런 '가족국가' 상상을 좋아한다. "국가는 어머니처럼 포근해야 하고 나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아버지 같아야 한다"는 말을 하거나 지지자들을 '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우파 정치가들도 다르지 않다. 서로 '우리는 형제'라고도 하고 과거 박근혜 의원은 자신이 결혼을 안 하고 자식도 없어서 '국민이 가족'이라면서 국민 챙기는 데 전념하겠다고도 했다. 자애로운 어머니를 자처한 것이다.
그런데 국가를 이렇게 큰 가족처럼 상상하면서 일부 시민은 국가나 통치자를 아버지나 어머니처럼 여기며 자신은 어린아이로 남으려 한다. 스스로 어른이 돼 자신의 가족을 챙기기보다 국가와 가족의 보호 속에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리며 인생을 보내고자 한다. 어른이 되기를 포기하면 큰 사업을 펼치는 것에도 관심이 없고 스스로 지식과 지혜를 쌓으려는 노력도 게을리한다. 그건 어버이나 형이 대신 해줄 것이고 우리는 그들의 조언이나 지시를 따르면 될 일이다. 그래서 '형'을 찾고 '멘토'를 찾고 점술가를 찾는다. 최근에는 방송에서 신변문제에 대해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나와 '즉문즉답'을 해주는 코너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모든 것을 아는 듯한 태도로 전문가는 문제에 시원하게 해답을 주고 사람들은 짧은 시간에 내린 해법에 좋아라 박수를 친다. 공사를 막론하고 세상은 복잡하며 많은 문제는 당사자와 주변 사람들이 여러 각도로 고민을 해봐야 겨우 해법을 알까 말까 한다. 그런데도 문제를 '전문가'라는 사람에게 묻고는 그 '전문가'가 즉석에서 내린 답변을 금과옥조로 여긴다. 이것은 어른들의 태도가 아니라 미성숙한 '어리광'이다. 수많은 형과 누나, 수많은 전문가, 멘토, 점술가가 지도하고 보살펴주는 상상의 '가족국가' 속에서 살면서 사람들은 '어리광'이 늘어간다. 그것이 결국 노예의 길이라는 것을 망각한 채.
김동규 21세기공화주의클럽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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