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산업 정부 독점’ 한국이 유일…‘고인물’ 탓 천문학적 적자

이진한 기자(mystic2j@mk.co.kr), 송광섭 기자(opess122@mk.co.kr) 2022. 12. 29.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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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獨·佛은 시장 개방했는데
韓은 발전 외엔 여전히 독점
송배전·판매 독점 한전
누적적자 30조에 시설고도화 한계
[사진 = 이충우 기자]
주요 선진국 가운데 전력산업을 정부가 독점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이 사실상 유일하다. 전력산업을 구성하는 △발전(생산) △송·배전(전달) △소매(판매) 3개 부문에서 발전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국전력이 독점하고 있다.

발전 부문도 한전의 자회사들이 시장의 70%를 차지할 정도다. 전문가들은 세계적 흐름에 맞지 않는 비효율적이고 경직된 전력산업의 독점 구조가 지금의 한전 재정위기를 초래한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꼬집고 있다.

28일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영국·독일·프랑스·일본 등의 전력산업은 발전과 소매 부문에서 경쟁 체제를 갖추고 있다. 자본력과 기술력을 갖춘 민영 기업들이 얼마든지 전기 생산과 판매 시장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발전사들은 최대한 연료비를 줄여 수익성을 확보하고, 판매사들은 고객 유치를 위해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전기를 제공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다만 이들도 송·배전 부문은 효율성 제고를 위해 독립성을 갖춘 단일 기업이 담당하는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주요국 중 전력산업 시장자유화 모델을 가장 먼저 도입한 나라는 영국이다. 영국은 1990년 국영 독점회사에 대한 수직분리, 수평분할을 시작으로 1999년 소매 부문에 대한 시장경쟁 체제를 도입했다. 그 결과 과점 상태였던 소매시장에 소규모 사업자들의 진출이 활발해졌고 ‘오보 에너지(OVO energy)’ 등과 같은 에너지 기업이 등장해 고객들에게 신기술 기반의 저렴한 요금제를 제공하고 있다.

독일은 2012년에 시장자유화 모델을 완성했다. 유럽연합(EU) 전력시장 자유화 지침에 따라 4대 독점 회사의 송전망을 분리 독립시켜 지역 기반의 소규모 사업자를 활성화했다. 또 태양광, 풍력 등 분산 전원을 확대해 에너지 효율 제고와 소매 부문에서의 다양한 신산업 추진을 유도했다.

한국과 전력산업 구조가 가장 유사한 프랑스의 경우 공기업인 프랑스전력공사(EDF)가 전력산업 전반에 지배력을 갖고 있지만, 소매 부문을 민간에 개방하고 송·배전 부문을 별도 법인으로 분사하는 방식으로 EU의 전력시장 자유화 지침에 맞췄다. 프랑스는 2019년부터 구조개혁 프로젝트인 ‘헤라클래스 프로젝트’를 추진해 EDF를 규제 부문과 경쟁 부문으로 분할하고 ‘에너지 안보 확보’와 ‘시장경쟁 활성화’를 동시 추진했다.

이들과 비교하면 한국의 전력산업은 훨씬 폐쇄적이다. 한국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에 3단계 전력산업 구조개편 계획을 수립했다. 그러나 노조 파업 등 관련 업계의 반발로 발전 부문에만 부분적으로 경쟁 체제를 도입하는 데 그쳤다. 이마저도 완전한 경쟁 체제는 아니다. 한전 발전자회사들이 발전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전기를 만들 때 사용하는 연료 대부분도 한국가스공사 등에서 동일한 가격에 일괄 구입하고 있다.

여기에 송·배전과 소매 부문의 독점 구조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신재생에너지(태양광·풍력 등)가 확대될수록 한전의 판매 수익은 줄게 된다. 그러나 전국 각지에 흩어져있는 신재생에너지를 전력 수요가 많은 지역으로 끌어오려면 전력망 투자는 더 늘려야 한다. 사실상 이해상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최근 급등한 국제 에너지 가격이 안정화된다 해도 이러한 구조에서는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실제 한전은 재무구조가 악화되자 지난 8월 자구노력을 담은 재정건전화 계획안을 발표했다. 이 계획안에는 2026년까지 송변전 분야의 공사 착공을 연기해 5년간 5270억원을 절감하고, 신규 건설 물량을 조정해 배전 분야에서도 5년간 4440억원을 줄인다는 내용이 담겼다. 전기요금 억제로 판매 수익이 줄어드니 전력망 투자를 늦추거나 줄이겠다는 것이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유럽의 에너지 위기는 시장 개방에 따른 여파가 아닌 ‘친환경’이라는 가치에 치우쳐저 경제성을 담보하지 못한 무리한 에너지 전환 정책을 추진한 여파”라며 “이전까지 유럽 시장은 신산업 개발과 소비자 편익 효과를 얻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한국의 전력 시장은 ‘고인 물’ 형태”라며 “시장 개방을 통해 둑을 터줘야 전력 분야는 물론 통신·가스·데이터 분야를 아우르는 혁신의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도 “전력산업을 국가가 소유하는 일을 그만하고 경쟁 체제가 돼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기술이 들어오거나 시장이 변화할 때 적응을 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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