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61] 안중근을 노래하다
연말에 의미 있는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안중근을 소재로 한 뮤지컬 영화 ‘영웅’(윤제균 감독)이다. 익히 알려진 내용일지라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감동과 여운이 상당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연기와 대사, 장면이 잘 어우러진 것은 물론이고 적절하게 삽입된 노래들이 영화의 극적 효과를 강화했다.
독립운동 가요로 분류되는 노래 중 안중근과 관련된 노래들이 있는데, 그중 세 곡 정도를 거론할 수 있다. 안중근이 직접 지은 곡으로 알려진 ‘안중근의 노래(일명 장부가)’와 ‘안중근 옥중가’, 그리고 안중근을 도와 하얼빈 의거에 참여했던 우덕순이 지은 ‘우덕순의 노래’다. ‘안중근의 노래’와 ‘우덕순의 노래’는 ‘대한매일신보’ 1910년 2월 18일 자에 처음 실렸다.
안중근과 우덕순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전 김성박의 하얼빈 거처에서 의기가 북받쳐 격렬하고 절실한 마음을 담은 노래를 지어서 주고받았다. ‘대한매일신보’에 소개된 ‘안중근의 노래’가 “대장부 세상에 처함이여, 그 뜻이 크도다/ 시세가 영웅을 만듦이여, 영웅이 시세를 만들도다/ 천하를 웅시(雄視)함이여, 어느 날에 성공할꼬”로 시작해서 “만세 만세여 대한 동포로다”로 끝난다면, ‘우덕순의 노래’는 “만났도다 만났도다 원수 너를 만났도다”로 시작해서 “오늘부터 시작하여 하나둘씩 보는 대로 내 손으로 죽이리라”로 끝난다. 두 노래 모두 일제를 적대시하고 의기충천하여 거사를 이루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안중근의 노래’가 노랫말만 전해지는 것과 달리 ‘우덕순의 노래’는 오늘날 동요 ‘주먹 쥐고 손을 펴서’로 알려진 곡조에 얹어 널리 불렸다. 안중근이 옥중에서 지어 불렀다는 ‘안중근 옥중가’는 그의 고종 6촌 동생 곽희종이 공개한 것을 노동은 교수가 2015년에 소개해서 알려졌다. “적막한 가을 강산 야월 삼경에 슬피 울며 날아가는 저 기러기야”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안중근이 거사 후 붙잡혀 뤼순 감옥에 있을 때의 답답한 심정과 단호한 결의를 드러낸 것이다.
어느새 2022년 세모(歲暮)에 와 있다. 국내외의 정치 경제적 상황이 혼란스럽고 불안해서 안중근이 바라던 평화는 여전히 요원하다. 그가 감옥에서 쓴 미완성의 ‘동양평화론’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청년들을 훈련해 전쟁터로 내몰아 많은 귀중한 생명이 희생당하는 일이 날마다 그치지 않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살기를 원하고 죽기를 싫어하는데, 청명한 세상에 이 무슨 광경이란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몹시 아프다”라고. 그 말이 여전히 유효해서 마음이 아프다. 부디 새해에는 그가 바라던 평화의 기운이 온 세상에 넘실거리면 좋겠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